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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자라서 해고하고 집에 찾아와 '네 엄마도 알아야 한다'"
게시물ID : sisa_59511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사닥호
추천 : 13
조회수 : 1289회
댓글수 : 134개
등록시간 : 2015/05/31 14:47:50

30일 새벽 4시 30분, 대구알바노조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한 분이 잘 곳이 없는데, 오늘 하루 잠깐 신세 질 만한 곳을 아시나요”. 이 모(23)씨가 집을 나온 지 7일째, 이 씨는 여전히 이렇다 할 거처를 구하지 못하고 떠돌 수밖에 없었다.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가족은 평생 몰랐었다. 신학교에 들어가 목사를 준비한다는 대구시 한 식당의 사장 아들이 꼭두새벽 그의 집을 찾아와 어머니에게 털어놓기 전까지는. 사장 아들은 가끔 사장 대신 알바노동자의 새벽 귀가를 도왔기 때문에 그의 집 위치를 알았다고 한다. 그는 당장 집에서 쫓겨났다.

“24일 새벽에 사장님 아들이 집에 찾아왔어요. 왜 왔느냐고 했더니 다짜고짜 우리 엄마한테 할 말 있다면서 집에 들어왔어요. 그러고는 제가 동성애자인 걸 시작으로 퀴어축제에 참가한 이야기, 서울에서 열린 아이다호 데이(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IDAHO)에 참여한 이야기를 전부 다 이야기했어요. 지금 뭐하느냐고, 그만하라고 필사적으로 말렸는데, 그 형이 ‘네 엄마도 이제는 알아야 한다’고 하면서···엄마 표정이 굳기 시작하더니, 당장에 나가라고 했어요. 호적에서 지우겠다고 했어요···지금은 당장 갈 곳이 없어요”

이 씨의 주장에 따르면, 사장 일가의 차별과 폭력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6월 이 씨는 대구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했었다. 주말은 알바를 쉬는 날이었고, 이 씨는 축제 참가 이후 아무 문제 없이 일상을 살았다. 그러던 중 10월, 식당 직원의 전체 회식이 있던 날, 다른 알바노동자가 이 씨가 동성애자이고, 퀴어문화축제에도 참여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악의였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그 자리에는 사장과 사모, 목사를 준비하는 사장 아들도 있었다. 이들은 그 자리에서 이 씨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당장 이튿날부터 일을 나가지 못했다. 사장 집 일가가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라고 했다.

▲화면 캡쳐: omhksea.org

당장 수입이 끊겼을뿐더러, 5개월 간의 임금도 체불된 상태였다. 다른 알바노동자에게도 체불된 임금이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씨를 제외하고 모두 지급 받았다고 한다. 이 씨는 주변에 이 사실을 알렸고, 서울의 성소수자 단체에서도 알게 돼 노무사를 소개받기도 했다. 그러던 중 12월 말, 사장이 연락해 임금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밀린 5개월 치가 아닌 1개월 치 50만 원이었다. 우선은 돈이 급했던 그는 1개월 치라도 받아야만 했다.

이후로도 이 씨에 대한 소문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처음 사장에게 아웃팅했던 알바노동자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는 ‘이 씨 때문에 에이즈에 걸린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단골손님도 있는 자리였다. 2015년 1월경 그가 동성로를 지나갈 때, 그 단골손님들이 ‘에이즈 걸린 사람’이라며 손에 쥐고 있던 물건을 던졌다고 했다. 그는 그들에게 피해를 준 적이 없었다.

“왜 그런 소리를 단골손님한테까지 들어야 했을까요?” 억울했다. 말을 해도 힘들고, 다시 아웃팅 될 수 있기에 참으려고도 해 봤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이 이어지자 이 씨는 참을 수가 없었다. SNS를 통해서 상황을 알리기 시작했고, 법적 대응도 준비를 시작했다. 그 소문이 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장이 식당을 매매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사장은 식당 매매 전 문제를 정리하고 싶었던 것인지, 5개월 치 체불 임금에 못 미치는 200만 원을 지급한다고 했다. 더 문제 일으키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라고 하면서, 그 자리에서도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적인 말들을 이 씨에게 쏟아 냈다. 그는 눈물이 났다. 펑펑 울면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까지 살아야 하는가 하고 생각했다. 그는 사과를 요구했지만, 끝까지 사과를 받지는 못했다. 2015년 4월까지의 이야기다.

5월 사장 아들이 어머니에게 아웃팅 한 이후, 이 씨는 이 사람들이 이제 더 무엇을 할지 두려워졌다. 원수도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곳이 교회로 알고 있었는데, 이 씨는 그들에게 원수보다도 더했던 것일까. 

▲2014년 진행된 대구퀴어문화축제에서 기독교 단체들이 퍼레이드 행렬을 막고 있다.

“저도 그만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사과받는 걸 다 포기하고 싶기도 해요. 돈만 받으면. 교회 다니는 그런 사람들한테 진정한 사과를 받는 게 쉽지는 않겠지요. 그런데 가면 갈수록 하는 일들이, 집에 찾아오는 걸 포함해서 정말 가관이지 않나요? 성소수자라도 일 할 수 있어요. 그걸 보여주고 싶고, 그리고 꼭 사과를 받아내야겠어요. 교회에서는 원수도 사랑하라고 가르치지 않나요. 내가 원수라고 해도 이러면 안 되는 거예요. 그 모든 것보다도 힘들었던 것이 나를 위한다면서 집에 찾아와서 부모님에게 알린 거거든요. 이 사람들이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그게 두렵기도 해요. 아일랜드는 동성 간 결혼도 합법화가 됐다는데,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려 하다 보면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요? 다양한 성을 가진 사람이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더 이상 벽장 안에 가두지 말고.”

이 씨는 사장의 소재를 파악할 수 없지만, 이후 소재를 파악하거나 같은 일이 반복되면 고소 등의 조치를 할 계획이다. <뉴스민>도 해명을 듣기 위해 사장의 연락처를 수소문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출처 http://newsmin.co.kr/detail.php?number=4975&thread=22r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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