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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논객 한윤형,박가분의 데이트폭력(전여친 폭행) 논란
게시물ID : sisa_59898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곰지ⓥ
추천 : 7
조회수 : 15741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5/06/21 09: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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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윤형

1983년 대구에서 태어나 초중고 시절을 대전에서 보낸 뒤 서울로 왔다. 고등학생 시절 진중권과 강준만의 책을 읽으며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어 인터넷에 접속했고 1999년 시작된 안티조선 운동의 원년 맴버가 되었다. 서울대와 조선일보 주최의 논술경시대회를 나갔다가 대상을 받았고 당시 안티조선 운동의 참여자임을 밝히며 조선일보의 인터뷰를 거부해 화제가 되었다. 2001년에 대학생이 되었고 그해 말엔 민주노동당원이 되어 인터넷에 참여정부에 비판적인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강원도 화천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2007년부터는 먹고살기 위해 잡지에 글을 실으려고 노렸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미디어와 정치 사회 비평, 세대론 칼럼 등의 활발한 집필활동을 해왔다. ‘20대 논객’으로 알려졌으나 한국일보, 한겨레, 한겨레21, 경향신문, 주간경향, 시사인,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등에 다양한 칼럼을 연재했다. 현재는 매체 비평지 미디어스에서 정치부 기자로 일하며 집필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뉴라이트 사용후기』, 『안티조선 운동사』를 저술했고 『당신들의 대통령』, 『리영희 프리즘』, 『진보의 재탄생』,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 『20대 오늘, 한국 사회의 최전선』을 쓰는 데 힘을 보탰다.


- 한윤형의 데이트폭력에 관하여 고백한 전여친(논객으로 활동중인 전계린)

http://mydefinition.tistory.com/65

저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지속된 한윤형씨와의 관계에서 지속적인 데이트 폭력을 당해왔습니다. 주된 폭행 장소는 한윤형씨의 자취방이었습니다.

....

최초의 징조는 2009년 이맘때쯤, 한윤형씨가 저와 언쟁하던 중 휴대전화를 길거리에 집어던지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내가 이 습관을 S씨 만나며 고쳤었는데, 네가 다시 시작하게 했다. 이건 네가 나를 화나게 해서 그런 것이니 너의 책임이다.' 라고 말했지만 저는 그 때 도망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괜찮을 거라 여겼습니다.다음 날 그는 자신이 보인 폭력적인 언행에 대해 사과하였습니다만 그런 일은 여러 번 일어났습니다. 이윽고 그는 술을 많이 마시고 저에게 폭행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야구였는지 스타리그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자신이 즐겨 보는 스포츠 게임에서 자신이 응원하는 편이 졌다는 이유로 계속 짜증을 내고 있길래 '그만 좀 해라' 라는 제지를 할 때였습니다. 그는 제 제지에 굉장히 화가 나 있었고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저와 한윤형씨는 언쟁을 시작했고, 짧은 언쟁 끝에 한윤형씨는 저를 한윤형씨 자취방 행거에 밀친 뒤 제 몸을 발로 여러 차례 가격했습니다. 한윤형씨로 인해 처음 멍이 들었던 것도 그 때였습니다

.....

한윤형씨와는 합의 하에 헤어졌습니다만 우리는 그 뒤로도 친구로 지냈습니다. 제가 한윤형씨의 친구에게 강간당했다는 사실을 한윤형씨에게 알렸는데 한윤형씨가 거기에 조금도 심각해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 전까지는요. 그는 '헐 정말 안타깝다' 정도의 반응만 보였고, 저는 그렇게 반응하는 사람과 더 이상 관계를 지속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강간 사건에 대한 법적 조치는 끝났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한윤형씨와 왜 관계를 끝내게 되었는지 기술하는 이유는 제가 그와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 이유가 '왜 헤어지지 않았나?'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한윤형씨가 저를 강간했다고 오해하는 분이 계시기에 덧대어 적습니다.


- 한윤형의 사과 및 사실관계 해명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1684452091787928&id=100006694609111


1. 데이트폭력에 대한 사과 및 사실관계 해명

결론적으로 말하면 저는 피해자와 연애를 할 당시에 데이트 폭력을 행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과거에도 몇 번이고 사과를 했지만 다시 한 번 피해자에게 사과를 드립니다.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격차가 엄연히 존재하며, 제 생각엔 별 것 아닌 액션이 피해자에겐 공포로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 당시에 저는 그런 행동을 하였습니다. 피해자의 입장을 존중하며 그 부분에 대해 이렇다 할 해결이 없었던 부분에 대해 매우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저에 대해 쏟아지는 많은 비난들은 온당합니다.

하지만 피해자가 서술한 맥락과 사실관계는 제가 기억하는 것과 전혀 다릅니다. 사실 서로의 재구성된 기억은 다를 수 있고, 웹상에서 진실공방을 벌이는 것은 이런 사건에서 현명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종류의 사건에서 가해자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대응을 할 경우 피해자의 기억이 진실로 확정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그렇기에 저 자신의 행동을 해명하는 최소한의 맥락만을 기술하고자 합니다.

피해자는 연애시기에 저에게 데이트폭력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 피해자가 적은 바 저와 같이 살던 여동생이 개입한 사건입니다. “어느 날 저는 또 그의 행거에 머리를 박으며 맞고 있었고, 제 나름의 저항을 했습니다만 먹히지 않았습니다. 다행히도 당시 그와 함께 살고 있던 그의 여동생이 저를 자기 방에 가서 재우며, '오빠는 엄마가 맞았던 걸 기억하고 자기도 맞았으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평했지요”라고 기술한 사건입니다. 이 부분의 사실관계는 제 기억과 다릅니다. 제 기억에 따르면 당시 매우 우울했고 술에 적당히 취한 제가 잠을 청하고 있었는데 피해자가 지속적으로 방해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피해자를 저의 잠자리영역에서 몰아내기 위해 발길질을 하였습니다. 피해자는 비명을 질렀고 다른 방에 있던 여동생이 찾아와 피해자를 데려갔습니다. 다시 말해 여동생은 때리는 것을 봤다기 보다는 비명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피해자가 기억한 발언은 여동생의 것이 맞습니다. 다음날 저는 이 사건에 대해 ‘폭력’이라고 인지를 했고 피해자에게 사과 및 재발방지 약속을 했습니다.

그 전의 맥락을 살피자면 이렇습니다. 피해자는 기분이 좋아질 경우(주로 술에 취했을 때였습니다) 저에게 신체적 투닥거림을 시도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타격일 때도 있고 레슬링일 때도 있었습니다. 물론 장난이었습니다. 하지만 토닥토닥에 비해서는 수위가 높았습니다. 저는 남자형제와 자라지 않았고, 그 외의 영역에선 주로 맞는 쪽이었습니다. 신체적 투닥거림에 대한 스트레스가 강했습니다. 제발 그러지 말라고 여러차례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체로 제가 함께 투닥거리다가 피해자 자신이 아픔을 느껴야 끝났습니다. ‘구타유발자’란 표현을 제가 취했을 때 쓴 것을 기억하고 매우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런 맥락에서 나왔습니다. 당연히 제가 수위조절을 잘못했던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경우엔 제 잘못입니다. 다만 피해자가 서술한 방식은 아닙니다. 앞서 제가 ‘폭력’이라 인지한 사건에 대해 저를 비난할 때 피해자는 “몇 번 전조가 있었는데 그럴 줄 알았다”는 식으로 평을 했습니다. 저는 그게 다소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때는 제가 잘못을 저지른 직후였기 때문에 반박할 수 없었습니다.

피해자와 연애를 한 건 2008년 말에서 2012년 초까지입니다. 문제의 사건은 아마도 2009년 혹은 2010년에 제가 사당에서 살 때 발생했습니다. 또 피해자의 서술에서도 일부 나오듯, 당시 제가 분노했을 때의 습관은 소리를 지르거나 휴대폰을 방바닥 내지 길바닥에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물리적인 폭력이 아닐지라도 이 역시 데이트폭력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반성합니다. 더불어 저에게는 연인에게 애정표현을 이마 등을 가볍게 치는 행동으로 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이 역시 데이트폭력의 범주에 들어가거나, 좀더 심한 데이트폭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전조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을 지난 세월 동안 복수의 사람들에게 들었습니다. 이 부분도 고쳐나가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저 사건 이후의 상황을 서술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이 얘기를 해야겠습니다. 2010년 말에 한 번 헤어진 일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의 제 상황은 만일 남녀성역할을 바꿔서 본다면 ‘안전이별’이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구체적 상황은 서로를 위해 상술하지 않습니다. 그 상황에서 상호폭력이 있었습니다. 이 폭력에 대해서도 제가 도의적 책임을 느껴야 하지만, ‘데이트폭력’의 범주에 들어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서로가 기억하는 것도 많이 다를 것입니다. 가령 제가 기억하는 피해자가 ‘맞았다’고 느낄 한 순간은, 제 입장에선 피해자가 부엌 바로 앞에 있었기에 식칼이라도 꺼내 들까봐 겁이 나서였습니다. 저는 이 설명을 사후에 했습니다만 피해자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후 다시 시작한 연애에서는 저는 폭력을 행사한 기억이 없습니다. 저는 두 번째 이별에서는 상대적으로 우호적으로 헤어졌습니다.

2011년에 저를 정신과에 보낸 상황도 피해자의 기억과 저의 기억이 배치됩니다. 당시 피해자가 제게 정신과를 갈 것을 거듭 권유한 이유는 데이트폭력 때문이 아니라 자살충동 때문이었습니다. ‘죽겠다’는 말은 2010년에도 입에 붙어 있었는데, 2011년엔 실행방법을 생각하는 단계에까지 갔습니다. 우울증 환자 중 일부가 그렇듯, 저는 병원에 가는 것도 싫어했습니다. 2011년의 저는 2010년에 비해서도 훨씬 더 우울했고, 친한 친구들도 만나지 않고 집에서 있는 처지였습니다. 저는 일이 전혀 안 되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저는 피해자에 대해 어린 나이에 빈곤하고 우울한 저를 만나 겪지 않아도 될 심적 고생을 했다고 여겨 미안한 마음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헤어진 후에도 관계적인 면에서나 물질적인 면에서나 도움을 주려고 애썼습니다. 둘이 만나서 술을 마신 적이 종종 있었고 그때 과거의 데이트폭력에 대해서 피해자가 언급을 하는 경우 “그 시기가 내 인생에서 가장 우울한 시기였던 것 같다.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식으로 거듭 사과했습니다.

2. 성폭력 사건에 대해

제 지인이 피해자(여기서의 ‘피해’는 지금까지 말한 ‘피해’와 다릅니다)에 대해 성폭력을 행사한 맥락에 대해 말했기에 저도 최소한의 부분만 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사건은 2013년 말에 일어났습니다. 그전까지 저는 피해자와 우호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사건 다음날 아침 저는 피해자에게 카톡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차마 물어보지 않았지만 아마도 사건에 대해 처음으로 들은 몇몇 중 하나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최초의 메시지는 그렇게까지 심각한 상황 같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헐?” 정도의 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후 피해자가 아침에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펑펑 울었다고 제게 다시 메시지를 보냈을 때에야 ‘성폭력 사건’이란 인지가 생겼고 “내가 다 미안하다”는 식으로 보냈습니다. 이에 대해 피해자는 “그래야 니가 인간이지”라는 식으로 답했습니다.

가해자의 지인이며 남성이기 때문이기도 했겠으나, 그후로도 저는 피해자에게 사태의 개략을 들은 바가 없습니다. 가해자 역시 저에게 사태의 개략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피해자는 상황은 설명하지 않았지만 가끔 저에게 자신의 안부를 카톡으로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 와중에 가해자로부터 경찰로부터 연락이 왔다는 소식을 들었고, 가해자가 저에게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든 사과할 테니 고발을 취소해달라는 의사를 전해달라고 하였고 제가 함부로 나설 일이 아니라 생각하여 침묵하고 있던 저는 그때 피해자에게 한 번 접촉을 시도했습니다. 피해자는 이때 제게 카카오톡으로 가해자가 쓴 사과문을 캡쳐해서 보냈습니다. 거기엔 피해자가 요구한 사건의 전말이 적혀 있었고 저는 경악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때 피해자에게 카카오톡으로 사과를 하며 ‘나는 이 사건에 개입하지 않겠다’라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후 저는 이 사건의 결말이 날 때까지 피해자와 연락을 한 일이 없습니다. 피해자는 대리인을 선정하였는데, 사실 저는 대리인과도 이 건에 대해선 별로 얘기를 나누지 않았습니다.

제 서술에서도 잘못 처신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사태를 돌이켜봤을 때, 사건이 터졌을 때 ‘가해자 주변인 행동 매뉴얼’이라도 찾아 읽고 숙지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한 번 밖에 연락을 취하지 않았습니다만 피해자에게 상처를 줬을 수 있습니다. 공포에 질렸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사건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는 피해자의 추측은 사실이 아닙니다.

3. 책임을 지는 방식

지나고 나니 데이트폭력 문제는 두 사람 사이에서 해결하고 말 문제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각자의 지인 몇 명에게, 그러니까 특정소수에게라도 공론화했다면 가해자에게도 더 확실한 제어장치가 되었을 테고, 피해자의 자존감도 좀 더 온전했을 것입니다. 서로가 기억을 재구성했을 때 이렇게나 차이가 나는 상황도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껏 고통을 느껴왔고 사건이 일어난 지 오랜 시일이 지나도록 잊지 못하고 있다가 이제야 폭로라는 방식을 통해서 공표를 결정했을 피해자의 아픔에 다시 한 번 진심으로 반성과 사죄를 전합니다. 피해자가 제 말에 반론할 수도 있겠지만 이후로는 웹에서 진실공방을 하지 않을 것이며, 피해자가 납득하지 못할 경우 피해자가 원하는 다른 방법을 강구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만 제가 먼저 피해자에게 접촉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사실 제가 이 건에 대해 어떤 식으로 책임을 질 수 있을지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직 잘 모르겠고 고민 중입니다. 치료나 교육 같은 것이 먼저 떠오릅니다만, 각 사건이 발생시간이 지나서 그게 올바른 방식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 외 제가 책임을 질 수 있는 방식에 대해 의논하고 고민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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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분

1980년대 후반생으로 전라도와 경상도 집안이 만난 동서화합의 가문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다. 서울 모처에 있는 대학의 경제학과에 재학 중이다. 학생자치 인문사회과학 도서관 ‘생활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했다. 약관의 나이에 2006년부터 시작했던 네이버 블로그 ‘붉은서재’에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인문/철학 서적에 대한 서평과 이런저런 개인적인 썰을 올리며 ‘청년논객’이라는 허명(虛名)을 얻었으며 2010년 블로그의 포스팅들을 묶어서 《부르주아를 위한 인문학은 없다》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이후 마이클 샌댈 열풍에 대한 비판적 논평인 《무엇이 정의인가》(2011)의 공저자로 참여. 2012년과 2013년 사이에 한겨레의 ‘2030 잠금해제’ 칼럼의 필진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환멸을 느끼다가 결국 개인적인 진로 모색과 취미생활(덕질)에 매진하고 있던 중 세간에 논란과 화제를 불러일으킨 ‘일베’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결국 일게이들의 사상에 대한 책을 쓰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번 책에서는 문체를 바꾸느라 머리털이 조금 빠졌지만, 일베는 그렇다 치고 일베 신드롬을 통해서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어서 보람 있었다고 한다. 자주 눈팅하는 사이트는 루리웹 유머 게시판이고 반 다크 홈과 마이 리틀 포니를 좋아한다. 좌우명은 ‘딥 다크 판타지’와 ‘프렌드십 이즈 매직’이다. 일베에 전하고 싶은 말로는 ‘일게이들아 이 정도면 ㅍㅌㅊ?’라고 한다.  


-박가분의 데이트폭력에 대한 전 여친의 폭로문

http://zeeeing.egloos.com/553946

어차피 지금 활동하고 있는 것도 없으니 내가 책임질 것도 없고, 누구 눈치 볼 것도 없고, 더 이상 이 판에서 데이트 폭력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리고 데이트 폭력을 저지른 인간들이 이 자리 저 자리 차지하며 아무 문제없이 글쓰고 활동하는 꼬라지를 더 이상 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제 경험도 올립니다. 알 사람은 알겠지만 이건 또 한 명의 유명한 진보논객 박가분의 데이트 폭력에 대한 얘기입니다.

박가분과는 아마 12년 중반정도에 몇 달 간 연애를 했었는데, 사실 그와의 연애는 제게 있어 치가 떨리게 괴로운 나날이었습니다. 애초에 시작부터, 박가분은 5년 사귄 애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게 자기와 만나지 않으면 당장 활동을 접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뭐 감정적으로 활동 접지 않겠냐고 말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제게는 그게 협박으로 들렸습니다. 당시는 제가 내부 성폭력 피해를 공론화하면서 제가 속해있던 청학위라는 조직 자체가 와해될 위기를 겪었던 시기였고, 저는 이에 대해 굉장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핵심 활동가인 박가분이 제가 자신과 만나지 않으면 활동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지속적으로 말해왔고 저로서는 그 상황에서 도저히 그를 계속 만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멍청한 일이지만요. 그는 심지어 자신은 그 애인과 계속 만날 예정이고 결혼할 생각이라고 제게 당당히 말하면서 그런 요구를 했었습니다.

아무튼 다시 얘기로 돌아가서, 그렇게 해서 결국 사귀게 되면서(사귀기 전에 결국 그는 이전 애인과 헤어졌습니다.), 그래도 저는 이왕 사귀는 거 그를 좋아해보려고 많은 노력을 했었습니다. 사실 그의 재능이나 생각에 대해서는 아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잘 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기분에 따라 남들에 대한 고려 없이 과격해지는 언행과, 화가 나면 주위에 있는 물건을 집어던지는 등의 폭력적인 행동들, 욕설이나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는 폭력성과 어떤 이유로 화가 나는지도 추측이 불가능한 부분 등 그는 제가 감당하기엔 너무 폭력적이었고 저는 제가 그간 사귀었던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그와의 관계에서 공포를 많이 느꼈습니다. 그는 화가 나면 갑자기 괴성을 지르는가하면 물건을 집어던지기도 하고 주먹으로 책상이나 벽 등을 수 차례 치기도 했습니다. 저는 도저히 그가 화를 내는 이유를 모르겠었던 적도 많았고 그래서 그런 상황을 방지하는 게 너무 어려워서 힘들었고요. 한 번은 "너가 화를 낼 때 나는 너무 무섭다"고 조심스레 얘기를 꺼냈더니 다짜고짜 소리지르고 화를 내며 "나는 안 그런 줄 아느냐, 나도 너가 화 낼 때 무섭다"고 답하더군요. 아니 저는 화를 낼 때 물건을 집어던져 본 적도 없을 뿐더러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사람, 그것도 남성에게서 문제를 지적했더니 저런 대꾸를 듣는다는 사실이 너무 기가 막혔습니다.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라고 느껴졌고요.

아무튼 마음 같아서는 더 일찍 헤어지고 싶었으나 헤어지고 나서 어떤 짓을 할 지 몰라 무서워서 헤어지자고도 못했습니다. 그는 한 번 화가 나면 어떻게 돌변할 지 도저히 예측이 불가능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저는그가 사람들 앞에서 sns를 통해 자신이 기분나빠하는 상대를 가차없이 욕하는 모습을 많이 봐왔고, 그가 헤어지고 나면 나에 대해서도 그러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많이 두려웠습니다. 그러다 결국 헤어지자고 하고 나서는 온갖 욕설에 저주를 퍼부어가며 며칠간을 정신적으로 괴롭혔고, 심지어는 집 앞으로 찾아오겠다고 협박까지 했습니다. 이전 글에 썼던 대로 저는 제발 이러지 말라며 빌어도 보고 신고하겠다고도 해봤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고, 이런 식으로 나오면 다른 남성 활동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겠다고 했더니 그제서야 그런 행동을 멈췄습니다.

그 뒤로 그는 바로 활동을 접고 자신이 보수로 전향했다고 말하고 다니는 한 편, 역시나 몇 천명의 팔로우를 가진 sns를 통해 절 비난했습니다. 저는 그가 무섭고 진흙탕 싸움에 뛰어들고 싶지 않은 마음에 단 한마디도 공개적으로 대응하지 않았었고요. 

아무튼 헤어지고 나서는 그가 너무 무서워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가며 한참을 피했습니다만, 안녕들 활동할 때 어쩔 수 없이 다시 그를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가 제게 원한을 가지고 있다는 상황이 너무 무서웠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한 편으로는 그의 재능을 아꼈기 때문에 감정적인 문제들을 풀어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박가분은 몇 차례 제게 성추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키스하거나 만지거나 하는 등으로요. 그래서 이래도 되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제가 자신에게 보복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안다고 답하더군요.

그 뒤로도 활동을 하면서 한동안 마주쳤고, 그와 친구로라도 무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에 관계를 끊진 않았었습니다만, 여러 차례 원치 않는 방식으로 대해지는 걸 접한 이후 저는 그와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더 이상 사적으로 연락하지 말라는 얘기를 몇 차례 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그와 더 이상 연락하거나 만나지 않습니다.

이런 얘기를 그간 공개적으로 하지 못했던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저는 제가 그보다 여러 면에서(신체적으로나 권력적으로나 인지도 면에서나) 약하다고 생각했고, 그가 한 번 화나면 어떻게 돌변하는지 아는 저로서는 이런 얘기를 풀어놨다가 어떤 보복과 공격을 당할 지가 너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러느니 차라리 표피적으로라도 기분을 풀어주고 좋은 친구 관계로 남고 싶었던 것이고요. 

지금은 그가 어떻게 살든 별로 관심도 없고 솔직히 사과도 받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건 그냥 사적인 관계에서 데이트 폭력을 휘두르며 성차에서 오는 권력을 남용하는 인간이 공적인 영역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활동하고 발언하는 모습들이 이 판에서 사라져야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문계린 씨의 용기에 힘입어 저도 폭로합니다.



+
현재 트위터와 페북 상으로 꽤 퍼진 사건인데 오유에는 글이 없길래 퍼와 봅니다.
박가분씨의 해명글은 http://m.blog.naver.com/paxwonik/220396500982 여기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출처 베스티즈 게스트천국
http://hgc.bestiz.net/zboard/view.php?id=ghm2&page=1&sn1=&divpage=26&sn=off&ss=on&sc=off&keyword=%C6%F8%B7%C2&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65094

http://hgc.bestiz.net/zboard/view.php?id=ghm2&page=1&sn1=&divpage=26&sn=off&ss=on&sc=off&keyword=%C6%F8%B7%C2&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65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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