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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주의) ‘내 옆에 아무도 없(어야 한)다’
게시물ID : sisa_60116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크테릭
추천 : 2
조회수 : 52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7/04 2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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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박 전 대통령 죽음 뒤
인간에 대한 ‘불신’ 각인
개인적인 트라우마를
공적 영역인 정치에 투영
국가·국민에 ‘왜곡된 결과’

박근혜 대통령은 1974년부터 1993년까지 쓴 일기를 발췌해 1998년 <고난을 벗삼아 진실을 등대삼아>라는 책을 냈다. 1979년 10월26일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을 흉탄에 보내고 그 한을 가슴 한편에 한 땀 한 땀 새겨놓은 기록들이다. 박정희 정권의 ‘공주’에서 ‘은둔자’로 보낸 폭풍 같은 20년의 시간과 생각들이 그 속에 담겨 있다.

박 대통령은 열두 살 때 청와대에 들어가 18년간 ‘대통령의 영애(令愛)’로 살았다. 5년간 퍼스트레이디 역할까지 했다. 박 대통령은 “아버지는 훌륭한 선생님이고, 나는 착실한 학생이었다”(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고 했다. ‘대통령의 딸’은 박 대통령 개인의 삶은 물론, 인격과 정치관·세계관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조건이다. ‘박근혜식 통치 스타일’을 읽는 코드도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장면 1. “드물게 사심(私心)이 없는 분”

박 대통령은 지난 1월1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경질 여론이 높던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을 이 한마디로 옹호했다. 아버지 때부터 따라붙어온 ‘배신 트라우마’가 상징적으로 표출된 장면이다.

박 대통령이 사람을 쓸 때 신뢰를 가장 중시하는 게 배신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아버지의 죽음과 이후 자신을 배신한 주변 사람들로 인해 인간에 대한 불신이 생겼다는 내용은 자서전에도 등장한다.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을 통해 사람의 욕망과 권력에 대한 집착을 똑똑히 보았다”고 한다.


#장면 2. “자기 정치적 논리에 이용”

박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를 ‘찍어내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유는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닌 ‘자기 정치’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인식에선 ‘사심’에 대한 거부감이 짙게 배어나온다. ‘자기 정치=사심=배신의 정치’로 이어지는 인식 회로다.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 박 대통령 측 한 인사는 “박 후보를 해석하는 코드는 ‘역린’이다. 역린을 건드리면 그날로 아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2인자를 두지 않는 것도 아버지로부터 배운 용인술과 배신 트라우마가 작용한 것이란 분석이 많다.

박 전 대통령은 1971년 공화당 ‘실세 4인방’이 주도한 ‘10·2 항명 파동’을 중앙정보부를 동원해 철저히 진압했다. 권력에 도전하는 2인자는 싹을 잘라낸 것이다. ‘유승민 찍어내기’도 이와 닿아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당이나 청와대 쇄신 요구에 대해 늑장·모르쇠 대응으로 일관한 것도 이런 요구들을 사심이 담긴 권력투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라는 풀이도 있다.


#장면 3. “당사자에겐 감옥이 될 수도”

박 대통령은 18년간 청와대에서 생활했다. 청와대를 떠나선 1998년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 당선까지 18년 동안 정치적 은둔기를 보냈다. “‘대통령의 딸’이란 남들 눈에 공주처럼 보이겠지만, 정작 당사자에게는 감옥이 될 수도 있는 일”(자서전)이라고도 했다.

18년간의 ‘감옥’ 생활, 그리고 청와대를 쫓겨나듯 떠난 뒤 “세상의 외면 속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 같았던 또 다른 18년. 인간의 반생(半生)에 해당하는 이 기간이 박 대통령에게 여러모로 영향을 미쳤음은 분명해 보인다.

박 대통령이 일반 정서와는 동떨어진 모습을 보일 때가 왕왕 있는 원인을 여기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박 대통령에겐 의원 시절부터 공감 능력과 소통 부재에 대한 지적이 잇따랐다. 대선 후보 시절 ‘발신번호표시 제한’으로 전화를 하곤 했다는 증언은 세상과 자신 사이에 벽을 두는 ‘신비주의’의 상징처럼 회자되곤 한다.

대선 캠프에 참여했던 한 새누리당 의원은 “뜻을 같이한다는 게 서로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하고 때론 싸우고, 때론 동의하고 그런 거 아니냐. 그런데 박 후보는 그런 게 없다”고 했다.

 
#장면 4. 다시, 아버지 집권기의 추억
박 대통령은 1998년 초선 국회의원에 당선되자마자 비서실장을 두기도 했다.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지난 대선 캠프 인사들은 당시 박 대통령이 인혁당 사건과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해 일반 여론과는 어긋나는 대응을 했던 일을 입에 올린다. 박 대통령이 아버지 집권기 때의 인식 수준에 좌우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여옥 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은 “박근혜에게 대한민국은 우리 아버지가 만든 ‘나의 나라’, 이 나라 국민은 아버지가 긍휼히 여긴 ‘나의 국민’이었다. 그리고 대통령은 바로 ‘가업’이었다”(<i 전여옥>)고 주장했다.
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7032259475&code=91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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