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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위원회의 회의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게시물ID : sisa_60165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한조각의추억
추천 : 5
조회수 : 451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07/08 00:41:40

지금 이 순간에도 최저임금위원회 제11차 전원회의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노사 양측의 2차 수정안 제출 이후에 정회와 속개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사용자위원 측의 어처구니없는 '35원 추가인상안' 제출 이후 노동자위원들을 강하게 항의하며 퇴장했습니다.

어렵게 다시 진행된 회의에서도 간격이 좁혀지지 않는 가운데 김민수 위원이 발언을 요청하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외딴 세종시의 어느 회의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삶을 두고 치열한 싸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끝까지 함께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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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위원 김민수입니다. 제게는 여동생이 한 명 있습니다. 얘가 지금 스물두 살입니다.

대학에서 청소년아동복지학과를 전공했습니다.

현장실습 나가서는 맨날 애들 인형 만들어 준다고 집에서 뜨개질 하고 있습니다.

방학이라고 집에 돈 좀 보태겠다며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습니다.


제게는 아버지도 계시는데요. 제가 아주 어렸을 때로 기억합니다.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대기업은 아니지만, 번듯한 기업에 다니시다가 해고되셨습니다.

해고 이후 2년 동안 쉬시고 나서는 자동차 선팅 필름 파는 일을 거쳐 모래내 시장에서 철물점 공구상가를 하셨습니다.

오래 가지 않아 그만두셨습니다. 제가 정말 어렸을 때는 당구장도 하셨다는데 잘 됐었는지 기억이 나진 않습니다.


제게는 외할머니가 계십니다. 저희 어머니의 어머니입니다.

저희 어머니가 아주 어렸을 때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외할아버지의 얼굴을 본 적이 없습니다.

외할머니께서는 부군을 일찍 잃으시고, 저희 어머니 3남매를 키우기 위해 70~80년대 갖은 수모를 겪으시며 온갖 일을 하셨다고 합니다.


제게는 할아버지도 계십니다. 저희 아버지의 아버지입니다.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엄지손가락 하나를 잃으셨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한테 ‘할아버지는 왜 엄지손가락이 없어요?’라고 물었더니, 젊어서 일하다가 다치는 바람에 손가락이 하나 없어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 집안 형편이 녹녹치 않아진 이후로 할아버지에게 용돈을 드리지 못하게 되자, 저희 할아버지는 애들 용돈은 줘야하지 않겠냐면서 공공근로를 시작하셨습니다.


조봉현 위원님(사용자)께서 지난 회의와 이번 회의에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격증이 없는 사람들, 방학 때 잠깐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런 사람들에게까지 최저임금을 맞춰 주는 것이 맞느냐고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건 제 형제의 노동입니다.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하는 형제의 노동입니다.

제 여동생은 조만간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딸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장담하는데, 이 친구가 2년 뒤에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딴다고 하더라도, 그 친구가 하게 될 노동은 장담컨대 최저임금을 받는 일일 것입니다.


최금주 위원님(사용자)께서는 주유소에 갔다가 어르신들이 일하면 답답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답답한 노동이, 저희 할아버지가 노구를 이끌고 손주새끼들 용돈 좀 주겠다고, 용돈 좀 주겠다고 잡초 뽑아가며 만드는 그 노동입니다.


김대준 위원님(사용자)께서는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이해한다면서 최저임금을 인상해야 된다는 저를 두고, 얄궂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정정하겠습니다. 그것은 얄궂은 것이 아니라 비극입니다. 영세한 업체의 여러 사장님들께서 겪고 있다는 어려움은 저희 아버지가 10년 전에 이미 다 겪은 일들입니다.


김동욱 위원님(사용자)께서 말씀하시는 용돈벌이, 부차적인 노동. 그거 저희 아버지께서 나이 오십에 공사장에서 하시는 그 노동입니다.


저는 제 가족들의 삶에서부터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봅니다. 저희 외할머니가, 어머니가, 아버지가, 할아버지가 저한테 하셨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힘들지만 왜 그렇게까지 했겠냐. 왜 그렇게 살았겠냐, 왜 그렇게 살아왔겠냐. 다 내 아들, 손주 조금 더 나은 세상 만들어주겠다고 애써왔다.”

저는 그분들의 애씀이 지금 2015년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살펴보니까 이제 내후년이면, 지금 속도로 계속 갔을 때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불이더라고요.

저희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가 자식과 손주들한테 물려주고자 했던 그 숫자. 그 꿈의 숫자가 이제 내후년이면 달성됩니다.

그런데 정말 속상한 것은 그 분들께서 그토록 물려주고자 했던 더 나은 삶, 희망적인 삶을 물려주는 것에는 그렇게 성공하지 못하신 것 같습니다.


제가 최저임금위원회에 처음 들어간다고 하니까, 많은 분들이 그러셨습니다.

“거기 뭐 하려고 들어 가냐? 어차피 그거 다 높으신 분들이 정해놓고 과정만 만드는 거 아니냐. 가서 그냥 병풍처럼 앉아 있지 말고, 가서 마음 고생하지 말고, 그냥 가지 마라.”


그래도 저는 한 마디 했습니다.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냐. 이 자리에 27명의 위원들이 모여가지고 회의를 하는데 그런 게 어디 있냐.

 그래도 애를 쓰고 안에서 최선을 다 하면, 돌아가서 뭔가 떳떳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런 과정은 만들 수 있지 않겠냐.”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제 솔직한 심경은, 잘 모르겠습니다.

최저임금위원회 경험이 많으신 분들께서 이 과정을 어떻게 평가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 과정을 보면서, 제가 적어도 집에 돌아가서 여동생에게, 제 어머니에게, 그리고 청년유니온의 몫으로 저를 기다리고 있는 1,500명의 조합원들에게 이 안에서 최선을 다 했다, 그러니까 이해해달라고 말할 자신이 없습니다.


이병균 위원님, 김종인 위원님(노동자)께서 제게 이 자리에 돌아와야 한다고 설득하셨습니다.

저는 솔직한 마음으로 들어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가 27명 위원 중의 한 명, 노동자위원으로서 냉정을 되찾고, 합리적으로 이 토론에 임해야 하는데, 지금 당장은 자신이 없습니다.

양해를 해주신다면 잠시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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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위원회 제11차 전원회의 중에 노사 양측의 2차 수정안이 제출되었습니다.

- 노동자위원 : 8,200원 (*1차 수정안 8,400원 대비 - 200원)
- 사용자위원 : 5,645원 (*1차 수정안 5,610원 대비 + 35원)

사용자위원안에 항의하며 김민수 위원장을 비롯한 노동자위원들이 회의장에서 퇴장하였고 회의는 중단되었습니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y.union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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