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모든 내용들은 조선왕조실록에서 검색해 보실 수 있습니다.
조선 초기
1. 백정의 아내를 발로 차 죽인 자를 교수형에 처함 ;
세종 33권 8년 8월 2일 (계해) 5번째기사
2. 백정 살인범을 아버지를 봉양하도록 형을 감함 ;
세종 34권 8년 12월 15일 (갑술) 5번째기사
3. 관군을 향해 활을 쏜 백정들을 치죄하되, 그 처자들에게 연좌하지 않음 ;
세조 5권 2년 8월 12일 (기유) 3번째기사
4. 백정을 구타하여 죽인 현감을 벌함 ;
세조 37권 11년 12월 28일 (신축) 2번째기사
5. 무고한 백정을 강도라며 억지로 취조한 현감을 벌함 ;
세조 45권 14년 3월 7일 (정묘) 7번째기사
- 조선 초기에는 백정에 대한 기사가 많습니다. 특히 강도, 도적행위를 한 백정을 처벌한 기사도 많죠.
- 반면, 위와 같이 나름 [신분제 질서의 밑바닥] 이지만서도, 최소한의 인간적 권리를 보장한 내용들도 있습니다.
조선 중기
1. 백정을 고문,구타한 승려들을 사면함 ;
명종 31권 20년 5월 20일 (을묘) 3번째기사
사면한 사건이긴 하나, 백정을 구타/고문한 건을 경기 감사가 직접 챙기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 공을 세운 백정에게 관직을 줄 것에 대해 논함 ;
선조 44권 26년 11월 5일 (을묘) 1번째기사
천인이 군공으로 높은 관직에 오르는 것에 대해 논함 ;
선조 51권 27년 5월 8일 (을유) 7번째기사
왜란 중의 일이란 점을 감안할 필요는 있습니다만, 백정 등의 천인이 관직에도 오릅니다.
- 슬슬 신분제 사회가 고착되어서일까요, 백정에 대한 기사가 매우 적습니다.
- 1번 항과 같이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경기 감사가 사건을 다룰 정도의 일로 여겨졌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 후기
1. 혼인식에 관복을 입고 일산을 받친 백정을 가벼이 처벌하여 백성들이 관부(개성부)에 돌을 던짐 ;
순조 12권 9년 6월 5일 (갑오) 1번째기사
- 신분질서를 어지럽힌 나름 엄청난 사건입니다.
백성들이 관복을 빌려준 사람을 구타하고 백정의 집을 철거하였으나
개성부에서 그 죄를 엄히 다스리지 않는다고 시위를 벌인 점을 고려하면
해당 백정을 죽이는 등의 행패는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결론.
백정각시타기와 같은 끔찍한 [관습]이
100% 있었다, 없었다 라고는 주장하지 못하겠습니다.
해당 행위에 대한 사료는 찾지 못했으며
그런 행위가 '절대적으로 불가능할 만큼'의 근거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읽어낼 만큼 역사에 정통하지도 못합니다.
다만, 관련 내용은 소설/위키/드라마 등에서나 살펴볼 수 있고
사료에서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반면, 위 자료들을 토대로 '판단'은 누구나 가능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