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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도 뿌리깊은 수구세력의 우민화 정책.
게시물ID : sisa_61985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클라우디아
추천 : 7
조회수 : 41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10/27 23:24:01
우민화 정책 이란 권력자 집단이 권력을 영원히 세습

하기 위해 백성들의 눈과 귀를 가려서 바보로

만들고 자신들의 악행을 정당화 하면서 세뇌시켜서 

백성들이 자신들에게 대항하지 못하게 하려는

아주 더럽고 치졸한 행위이다

고려사를 보면 수구세력들이 토지를 독점하며

일도 안하고 소작농으로 먹고사는데 그 이율이

정작 농사지은 백성들보다 더 높았다 백성들은

아무리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나라에 세금을 바치고

소작료를 지불하면 남는게 없었다.

수구세력은 평생놀아도 잘살고 백성들은

뼈빠지게 농사지어도 입에 풀칠하기도 빠듯했다.

이러한 부패한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나라를

만들겠다는 명분으로 이성계가 역성혁명을

일으켰으나 조선도 다를게 없었다.

수구세력이라는 집단은 당파가 바뀔지라도

결국 국익과 백성은 안중에도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본인들의 권력과 재산 유지가 우선이다.

그러한 불합리한 점을 개혁하려 노력한 지도자들이

몇 있긴 있었다. 그러나 수구세력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왕에게 까지 격렬히 저항했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보급해서

문맹률을 줄이는게 국익에도 이득이란 생각이었

으나 수구세력은 백성들이 문자를 알고 똑똑해지면

자신들이 부리기 힘들어질거라는 생각에 격렬히

저항했다. 우여곡절 끝에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했으나 결국 양반들의 저항 때문에 백성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못해 쓰이지 않았다.

문맹률이 거의 해소되지 못했던 것이다.

이는 국익에도 관계된 일이지만 수구세력은

국익에는 안중에도 없었다.
 
광해군은 백성들을 위해 개혁을 하려 노력한

왕이었다. 대동법을 만들어 백성들의 조세부담을

덜어주려 했다. 하지만 수구세력은 이것을 용인하지

않았다.폐모살제나 명나라를 배반했다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정작 역모를 일으켜 광해군을 몰아낸

근본적 원인은 광해군이 수구세력의 이익에 해가 되는

개혁군주였기 때문이다.

다까까마사오가 권력욕에 미쳐서 집권한지 1년도

채 안된 장면 정권을 역모를 일으켜 몰아내고

제일 먼저 한것이 언론장악이다.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려서 바보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국민들이 실상을 알았다면

다까끼마사오가 집권할수 있었겠는가?

역적 다까끼마사오는 영구집권을 하겠다는

탐욕에 사로잡혀 유신개헌이라는 제2의 역모를

일으킨다.

초등학생들에게 까지 유신의 정당성을 세뇌시키며

우민화 정책에 온힘을 기울였다.

그결과 오늘날까지 역적의 후예인 똥누리당이

집권하고 있다.

국정교과서를 왜 하려는가?

다까끼 시절부터 세뇌되서 수구세력에 충성하던

노친네들 수명이 얼마 안남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다 죽고나면 수구세력은 더이상 정권을

잡을수가 없다. 그래서 새로운 세대들에게도

더러운 역사를 미화하며 우민화 시킬 필요가

있는것이다.

바로 시것이 국정교과서를 하려는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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