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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다시보는 세월호와 한성호 사건
게시물ID : sisa_6508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진실의저울
추천 : 11
조회수 : 5237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1/16 08: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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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그 동안 음모론이라 불리던 사건이 김감독과 김어준씨 덕분에 수면위로 올라오고 있네요. 

이미 아시는 분들은 아실 내용이지만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인듯 해서 올립니다. 

사건을 텍스트로 추려보면


1. 한성호 사건과 세월호 사건때 이슈화 되었던것은 무엇인가?

-1973년 1월, 유신 독재 체제가 막 들어서고 시국이 시끄러웠음. 

 이때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납치, 동해바다 수장하려는 계획을 세웠던 시절

- 2014년 4월, 부정선거와 국정원장 남재준의 간첩조작 사과발표가 이슈화 되고 있었음.

2. 침몰 사고는 어디서?

- 세월호는 진도 앞바다 관매도와 병풍도 사이에서 침몰

- 한성호는 세월호 침몰 장소 북동쪽 18km 떨어진 지점으로 

  둘다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 

3. 구조자와 사망자

- 세월호는 어민들이 그나마 구조했거나 배에서 뛰어내린 사람들을 구조. 212명 사망 90명 실종 상태.

- 한성호는 구조선에 스스로 올라타거나 바다로 뛰어내린 사람들을 구조. 18명 사망 43명 실종 상태.

   두 사건 다 "가만히 있으라" 방송을 했고 사망자의 경우 선실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사망.

4. 선원들의 행보

- 세월호는 입사한지 4개월 된 신입항해사가 키를 잡았다고 함. 

- 한성호는 무자격 항해사

- 두 사건 다 승객들 버리고 선원들만 탈출

5. 누가 책임을 졌는가

- 세월호 선장 선원 

- 한성호 선주 2명 선장 선원 

6. 침몰 이유

- 세월호 과적 화물 500톤 차량 30대 초과
(현재 과적이 문제가 아님이 밝혀지고 있는 상태 이건 파파이스 81회를 참조하세요. 유튜브에서 검색하시면 나와요) 

- 한성호 50명 정원 초과

7. 당시 마사오와 근혜의 행적

- 마사오의 경우 베트남 전쟁 종전 기본 대비책 보고를 받았다는 사실외 한성호 관련된 일지나 보고가 전혀 없음.

- 근혜의 경우 7시간 행적을 아무도 모름.

8. 출항 당시 상황

-  한성호는 출항 이틀 전 폭풍주의보로 인해 연안 여객선들의 운항이 정지 됏지만, 한성호 선장이 항로를 

   조정한다는 각서를 쓰는 조건으로 출항 강행

- 세월호는 출항 전 짙은 안개로 시정주의보가 내려진 상태, 가시거리 1km 미만일 때 출항 금지됨에도

  불구하고 가시거리 500m에 불과한 상황에서 시정주의보가 해제됐고 세월호는 출항 강행




평행이론을 주장하자는게 아닙니다. 세월호 사건은 처음 겪어 보는 사건이 아니었음을 밝히고 싶었을 뿐입니다.

한성호 사건이 있은 후, 세월호 사건을 다시 겪었는데 대처방법이 기이하게 닮았긴 했지만, 절대로 평행이론 

따위를 이야기 하려 함은 아닙니다. 판단은 개인이 하는거죠. 그저 과거의 잘못을 현재도 그대로 하고 있다는

자료로 봐주시면 됩니다. 똑같은 사건을 겪으면서 똑같이 대처했던 2014년을 원망하는 겁니다.


기가 막히게 닮은 사건이고 기가막힌 우연이라 생각합니다. 이걸로 평행이론 음모론 지적은 정중히 사절합니다.
출처 출처 국민TV

http://news.kukmin.tv/news/articleView.html?idxno=6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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