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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변화는 경향성의 변화다 - 김규항
게시물ID : sisa_73721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전람회
추천 : 5
조회수 : 550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6/05/23 23:22:18

최근 김규항 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깊게 생각해 보셨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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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변화는 경향성의 변화다

2000년 초, 한 노동운동 단체에서 일련의 성추행/성폭행 사건으로 소란스러웠다. 송년회 술자리에서 1차만 마치고 일어나려던 여자 후배에게 더 놀자며 손을 붙들었던 남자 활동가가 중앙위에 성추행으로 제소되었다. 그는 징계 처분과 성평등 교육 명령을 받았다. 그는 조직의 결정을 따르면서도 짐짓 억울해했다. 제딴엔 호의에서였고 '고작 손을 잡았을 뿐’이니 말이다. 또 하나는 만취한 남녀 활동가가 모텔에서 함께 잤는데 다음날 여자 활동가가 남자를 성폭행으로 제소한 사건이었다. 그는 조직에서 제명되었고 결국 운동을 떠났다. 그런데 그 일에 대해 정황상 성폭행이라 보긴 어렵지 않은가, 의문을 제기하는 몇몇 남자 활동가들이 2차 가해로 제소되었다. 그 중 하나는 결국 운동을 그만 두었다.

일련의 일들을 겪으며 큰 변화가 일어났다. 남자 활동가들은 술자리뿐 아니라 어디서든 여성에게 신체접촉하는 걸 주의하게 되었다. 같이 자는 걸 섹스를 허락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생각도 바꾸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변화가 다 순조롭게, 자발적으로 일어난 건 아니다. 이를테면 남자 선배 활동가가 여성과 신체 접촉에 주의를 하게 된 건 처음에는 성추행이라는 걸 인정해서가 아니라 ‘자칫하면 큰 일 난다'는 경계심에서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행동이 익숙해지고 조금씩 생각이 진전되면서 '여성 쪽에선 성추행 맞구나'라고 각성하게 되었다.

변화는 다른 단체에도 전파되고, 또다른 단체에서도 비슷한 상황과 변화가 일어나면서 결국 전체 노동운동, 진보운동 진영의 변화로 이어졌다. 성폭행 사건이 일어났을 때, 운동의 대의를 앞세워 혹은 조직 보위의 이름으로 피해자의 침묵을 강요하는 야만적 상황도 쉽게 찾아보기 어려워졌다.(그런 의미에서 2008년 민주노총 성폭력/전교조 은폐 사건은 매우 악질적인 경우다.)

사회 변화는 다 그런 과정을 거친다. 특히 변화가 본격화하는 시기엔 낱개로 살펴 봤을 땐 억울하거나 무리한 상황이 일어나기도 한다. 오랜 시간 동안 묻혀 왔던 피해자들의 분노가 폭발하면서 최선의 이성적인 상황을 벗어나는 경우가 생겨나기도 한다. 물론 그런 일들이 변화의 대의 앞아서 무시되어선 안된다. 그건 운동의 대의와 조직 보위 명분으로 성추행/성폭행 피해자를 억압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 변화의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미리 생각하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건 보다 성숙한 태도다.

사회 변화는 ‘경향성’의 변화다. 어떤 사회 변화도 100퍼센트의 변화는 없다. 이를테면 세월호 사건 이후 '아이들이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많아졌는데, 아이들이 100퍼센트 안전한 사회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아이들이 안전한 사회도 아이들이 몸을 움직여 살아가는 한 사고는 있기 마련이다. '아이들이 안전한 사회'란 한 아이도 사고를 당하지 않는 사회가 아니라, 아이들이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사고를 당할 가능성이 매우 적고, 혹시 사고 상황에 처하더라도 최선의 조처를 기대할 수 있는 사회다. '노동자가 행복한 세상'도 '여성이 안전한 사회'도 마찬가지다.

강남역 사건으로 여험 논의가 본격화했다. 성추행, 성폭행 체험을 털어놓는 여성이 줄을 잇는다. 그런 상황에 대하여 '모든 남자가 그런 건 아니다'라 항변하거나, '여험이 사건의 주 원인이 아니다' 논평하는 건 핀트를 벗어난 이야기다. 여험을 말하는 사람들은 이 사건에 여험 외엔 다른 원인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모든 남자가 한명도 빠짐없이 그렇다는 걸 증명하려는 것도 아니다. 현재로선 남자 일반이 그런 경향성을 갖는다는 사실과 그런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이 갖는 일반적 위험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사회는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런 남자에 해당하진 않더라도 충분히 존중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그런 남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허점은 없는지 살펴보는 학습 기회로 삼을 수 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강남역 사건의 피해자 여성을 추모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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