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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아이들을 마주하며 느끼는 것
게시물ID : sisa_7576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joeto1oo4
추천 : 8
조회수 : 588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6/08/30 22: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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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마주하면서 느끼는 것들이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몇 가지를 나누고자한다. 
내가 가진 생각들을 사람들과 나누고, 그 생각들이 보다 더 공유되어진다면, 뭐 거창하게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세상에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오늘 비장애학생을 만나면서, 그 학생의 꿈은 무엇인지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지 그냥 던진 물음에 그 학생이 가졌던 고민이랄까, 
한국의 교육은 왜 그리 지식집약적이고 학생들의 근본적인 행복이랄까, 삶을 어떻게하면 행복하게 살아갈 것인가에 관한 물음에 대해선 이다지도  헛물켜는 것 같을까.

특수교사로 6개월을 머물면서 내가 느꼈던 건. 
아이들이 생각보다(필자는 일반학교의 특수학급에서 기간제 교원으로 제직하고 있었습니다.) 동기랄까, 삶을 행복으로 채워가는 삶이 아니라, 성적과 대학을 위해 노력을 강요받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 조금도 내 고등학생시절과 다름이 없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 한창 행복이 뭔지, 왜 교육을 받아야하는지 그런 근본적인 물음이 없이 무조건적으로 지식 담습을 위해 살아야하는 삶이랄까.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북유럽 아이들에 비해 조금은 가혹하게, 잔혹하게, 조금 어긋난 방향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나 하는 마음이다. 

그냥 이런 저런 생각을 표현하고 나눠야, 사회적 문제라던가 발전적인 대안들이 제시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발칙한 시점으로 두 가지 교육의 큰 획에 대해 태클을 걸어보고자 한다.


우리나라의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

경쟁 주의
그 근거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경쟁주의적 측면에서 교육을 바라보는 것은, 그 효용과 효과적인 측면에서 극히 미흡하다. 인간은 기계적인 존재라기보다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흔히 인간은 그저 지식을 주입만 해주면 그 모든 것을 다 담습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구시대적 관점으로 교육을 바라보는 것이고, 개개인들이 느끼겠지만, 영감이라던가 사람이 갖는 잠재력, 본인의 흥미도라는 것은, 누군가 기계적으로 주입하다고해서 없던 것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본인이 태어나면서 갖고 있는 기질적인 측면과 결합하여, 본인이 가슴이 뛰는 일이 무엇인지 살아가면서 알게되는 것처럼, 단순하게 흥미과 적성이라는 것이 기계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뭐 기계적인 관점으로 인간을 보는데서 오는 부작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지만, 동기와 본인의 흥미/적성도가 높지 않은 상태에서는, 기계적인 주입식 교육이 의미가 없다.
되려 본인 스스로가 명상이라던가, 이완된 상태를 통해 내가 원하는 것, 진정으로 바라는 것, 가슴안에 울리는 영감이라던가 그런 것에서 분별되는 것이기에, 인간은 기계적인 존재가 아니라 영적인 존재라고 주장을 펼치는 것이 보다 더 합리적이라는 사실에는 반박하기 힘들다.
물론 최근들어, 경쟁 의식을 부추기는, 상대평가를 접고, 절대평가 위주의 평가 방식으로 넘어가고 있긴 하나, 여전히 경쟁을 부추기며, 기업체에서 사용하던 성과주의 모델을 교육에도 적용한 덕분에 OECD 학생 행복도 순위가 뒤에서 1-2위를 앞다투게 되지 않나 싶다. 안타깝게도. (덕분에 한국 직장인들의 행복도 역시 꽤나 참혹한 수준이다.)
그리고 개인의 지성보다는, 집단 지성과 협력이 전체적인 생산성 측면에서 더 월등하다.
아인슈타인이라는 위대한 위인도, 혼자서 천재가 된 것이 아니라, 주변의 지식과 사람들로부터(집단)으로부터의 지식을 배우고 익혀 위대한 업적과 지식을 남긴 위인이 된 것이지, 혼자서 천재가 된 것이 아님. 다시 말해, 거대한 업적(아인슈타인)이라는 것도 결국 집단의 노력과 지성에 의해 만들어진 것. 수많은 토론과 토의를 통해 아인슈타인의 지성이 나타난 것이지, 개인 혼자만의 독립적인 결과물이 아니다.
그러므로 집단 지성, 협력을 통해 사고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워야한다. 물론, 최근 예비군 훈련상황에서, 예비군들이 토의를 하고 모의 상황 속에 집단지성을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려하는, 실제 적용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으나, 이 집단 지성에 관한 의식도가 대중적인 수준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극히 사회 일부에 나타난 모습일 뿐(긍정적으로 치부하자면, 그래도 조금이나마 집단 지성이나 토의 토론 문화에 대한 인식이 생겨나고 있는 듯해 다행스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모든 사람들이 다양성을 존중하는 풍토를 조성하고, 다름을 이해하며, 나와 다른 의견을 제시할 때에도 존중하고 나와 다른 시각에서 본다는 점을 이해하고 모두가 공생하는 방향으로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토론과 토의 풍토를 만들어야한다.

사회주의에서 자란 사람들과 기타 다른 타국에서 자란 학생들을 보며 느끼는 것은, 우리나라처럼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공익을 훼손하는 사람이 굉장히 좀 드물다는 것  이로인해 남들과는 나누려는 문화가 조금 없다보니, 간혹 어글리 코리안이라는 말을 듣기도.
먹을게 콩 한쪽밖에 남은게 없을 때에, 콩한쪽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콩한쪽을 혼자서 먹으려는 이기적인 마음, 그런 마음들은, 실제적인 사회 생활에 있어서, 서로 나누고, 윈윈과 공생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해야되는 생태계에서는 살아남기가 힘들다.

근본적이지 못한 교육 : 교육의 방향이였던 행복, 이 행복은 지금 어디로 상실했을까?

교육의 근본, 다시 말해 교육을 하는 이유는 학생들이 행복지고 행복한 사회구성원을 지속적으로 배출시켜,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에 있다.
헌데 학생들이 스트레스와 폭력에 노출되고, 진정으로 본인을 행복하게 만드는 분야로서의 진출보다는, 너무 과중한 학업 비중이 문제라는 것, 그리고 또래와 협력하고 모두와 상생하는 방안이 아니라, 본인의 행복을 위해 타인을 짓밟는 방식에 길들여져간다는 것.
근본에서 떨어진 이 교육은, 반드시 학생과 이 사회구성원들의 행복을 위해 그 내용과 과정상의 방법이 과연 타당한가를 근본적으로 짚어야되지 않을까 싶다.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독일이 축구 강국인 브라질을 상당한 점수차로(시쳇말로 발라버린) 이겨내며 우승을 거머쥔 것과, 독일의 공동체 교육을 짚어낸 '진중권 교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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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독일 축구를 언급했는데, 필자도 대학시절 축구를 취미삼아 그 시절을 누볐기에 조금 느끼지만, 축구라는 종목 자체가 혼자서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상대팀 11명을 이길 순 없고, 혼자서 다 재치거나 결정적으로 골을 넣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력해야지, 골욕심을 경쟁하는 마인드로는 팀이 우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참 매력적인 스포츠) 다시 말해, 독일 우승의 저력과 에너지는 어렸을 때부터 공동체와 협력을 중시해낸 교육의 끝에 가시적으로 나타난 결과물 중 하나라는 생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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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한 개인적인 대안을 이야기해보자면
꼭 대학을 가지 않으면 직장의 구하지 못해 불행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근시안적인 관점이 아니라, 이제는 국적을 선택하고, 내가 원하는 곳으로 나라를 옮겨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왔는데, 미술을 전공하면, 꼭 한국에서만 살 것이 아니고, 입시미술에 치여 정말 본인이 사랑했던 미술에서의 열정과 동기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존중해주는 나라로의 진로를 설계하고, 어학을 준비하며 공부하는 것이, 한국에서만의 진로 설계보다는 부담이 적고, 더 좋은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텐데
아무래도 이런 해외로의 선택, 대안적인 정보에 대해 많이들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도 국내에서만의 진로랄까 입시에 맞춘 교육들이 유일한 길이라고 여기는 안타까운 인식들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대중적으로, 꼭 대입과 입시를 위한 공부만이 옳은 것이 아님을, 그리고 대안적인 방법들이 많이 있음을, 국제적인 안목으로 바라본다면 훨씬 좋지 않을까

사람의 흥미라던가 적성을 인위적으로 고치거나 바꿀 수 없고, 그런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희생하고 저당 잡아놓는 삶의 행태는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조금 일찍, 서둘러서 변화가 이루어져야하지 않을까 싶다. 한 나라의 청년들이 백수로 지낸다던가, 자살을 한다던가, 우울증이 지수가 무지막지하게 높다거나, 꿈이 없다거나, 열정이 없다는 사실은, 한 나라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너무도 암담하지 않을까 싶다. 

십대라는 나이, 진로를 설계해도 늦지않고, 실패를 해도 늦지 않고, 다 자산으로 쌓이고 남을 시기, 진정으로 가슴이 뛰는 일을 일찍이 찾고, 쉰이 넘고 마흔이 넘어 ' 아 내가 여태 뭘하고 살았던가'하며 회한에 찬, 인생을 낭비했다고 느낄 그런 사람들이 적어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리고 하루 빨리 본인들의 가슴을 뛰게하는 일을 찾아 세상에 역량을 펼쳐야할 많은 잠재된 한국의 학생들이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에 마음을 표현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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