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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그가 나의 법복을 벗겼다" 박범계
게시물ID : sisa_81856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기억.해주세요
추천 : 37
조회수 : 2210회
댓글수 : 25개
등록시간 : 2016/12/16 09:54:46
마침내 그가 나의 법복을 벗겼다



다섯 차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세 차례나 고배를 마신 노무현은 올해 국민경선으로 50%가 넘는 국민의 지지를 받는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됐다. 그가 잘 나서도 이뻐서도 아니었다. 우직하게 인권과 정의, 그리고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타파하자고 외쳐온 경상도 사람에 대한 전라도 사람들의 애국적인 결단의 소산이었다.


 그것은 대의명분을 생명처럼 지켜온 한 정치인에 대한 세상사람들의 보답이었다. 이는 구한말 일제에 의해서 단행된 단발령에 항의해 들불처럼 일어나 번졌던 의병들의 대의명분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나라와 민족에 대한 사랑이 그들 의병들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상투에 초롱초롱 영글었던 대의명분이라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 그것이었다.


 도대체 노무현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가? 대의명분을 좇아 단 한 번도 훼절하지 않고 묵묵히 정도를 걸어온 노무현이 범한 우가 무엇이었던가? 반(反)통일을 선동하였던가? 인권과 정의를 탄압하자고 목메였던가? 한국 사람들은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으니 다시 한번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제 신탁통치를 받자고 외쳤던가? 김영삼씨를 만나 예전에 분열했던 민주화세력이 다시 한번 단결해 분열과 분단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자 했던 것이 그리도 잘못이었던가?


 누구도 대통령 후보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그가 당당히 압도적으로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그리고 국민 다수의 지지를 한 몸에 받았다. 지지도는 오를 수도 있고, 내려갈 수도 있다. 법정 선거운동 기간을 수개월이나 남겨놓은 시점부터, 그래서 제대로 된 선거운동 한 번 해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나온 지지도만을 근거로 후보직을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아무리 찾아보려고 해도 같은 구석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정몽준과 단일화를 하라고 한다. 떨어진 지지율을 다시 올리려 노무현에게 한 번도 힘을 실어준 적이 없는 그들이 지난 4개월 동안 한 것이 무엇이었나? 마치 갈 곳을 정해놓은 사람들이 어디로 갈까 의논해 보자는 식과 무엇이 달랐던가?


 판사는 자신의 목요일 재판을 끝내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인터넷 뉴스를 검색하고 있었다. 재판 후 잠시의 짬은 분노도 슬픔도 없는 평안 그 자체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누가 어디로 간단다.' 어릴 적 오뉴월 뙤약볕 아래서 집으로 돌아오던 중 졸도를 한 경험이 있었다. 작열하는 태양만이 시뻘겋게 시야에 들어오던 하늘이 새까맣게 변한 것이 당시 의식의 마지막이었다.


 올 여름 뙤약볕 밑에서 함께 어깨동무하며 '대∼한민국'을 외치고 그의 서울시장 당선을 염원했던 노무현을 버리고 떠나겠단다. 그리고 내 기억으로는 단 한 번도 민주주의를, 통일을, 시민의 인권을 함께 고뇌해본 경험이 없는 정몽준의 가슴에 안기겠단다.


 이치에 맞지 않는다. 대의명분이 없다. 어찌됐건 양지만을 걸어왔던 그가, 이제 이곳이 음지가 되었다고 양지로 가겠다는 소리와 다를 바 없다. 그는 웃고 있었다. 정몽준의 가슴에 안긴 그는 한껏 흐드러지게 웃고 있었다. 지난 10여년 가까이 민주화의 동지였고, 그렇게도 당선시키려 노력했던 후배의 변신에도 웃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웃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목구멍 가득 담긴 구토를 애써 참으려하는 의식된 근육의 이완이었다. 판사는 먼 옛날 자신을 졸도케 했던 오뉴월 하늘이 까맣게 변하는 현상을 다시 경험해야 했다. 내가 과연 이 사무실에 앉아 잠시의 한가로움을 즐겨야 하나?


 떠난단다. 모두가 떠난단다. 묵묵히 대의명분을 지켜온 노무현을 왕따시키고 떠나야 한단다. 오냐, 그러면 내가 그에게로 가지. 내 비록 별 힘없는 일개 판관에 불과하지만, 배우고 익힌 대로 정의의 심판을 내려주지.


 빽없고 돈없는 노무현이 하루 아침에 떴다고 찝쩍거려보고 팽개치다 못해 이제는 그 더러운 가래침까지 뱉는 그에게로 내가 가지. 그리고 역사는 대의명분을 소중히 지킨 이들의 것이라고 말을 할 것이다. 저 구한말 한옥 사랑방에서 담뱃대를 입에 물고 공자왈 맹자왈하던 유생들이 자리를 박차고 대의명분을 지키기 위해 일어났던 것처럼.

 
인권과 정의라는 하나의 가치만을 전부라 믿고 살아온 판사가 할 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공부도 하고 타협도 해야 할 것이다. 울고 싶어도 웃는 법을 배워야 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양보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 두 눈 분명히 뜨고 지켜야 할 것이 있다. 부패가 무엇인가? 안되는 일을 되게 하는 것이다. 안되는 일은 안돼야 한다. 인권이 무엇인가? 공포스러움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온전히 대접받는 것이다.


복지란 무엇인가? 굶주림과 헐벗음이 없게 나누어주는 것이다. 이는 이웃에 대한 따뜻한 연민의 정을 기초로 한다. 노무현은 이뤄낼 것이다. 부패가 없는 맑은 사회를, 시민이 공포스러워하지 않는 인권존중의 사회를, 내 몫이 비록 적더라도 이웃의 몫을 시기하지 않는 사회를. 나는 그런 노무현을 도우러 간다. 그것이 우리 시대 개혁의 완성이고 또 다른 시작임을 확인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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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문회 중 "기각합니다." 발언을 듣고 사람들이 판사시절 버릇 나왔다고 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을 도우려고 정계 들어왔다 길래 찾아보다 발견한 2002년 박범계의 노무현 지지선언 기사 중 일부 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말 많은 사람들을 남겨주셨네요ㅜㅜ
출처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0092450#c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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