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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되지 못한 과거, 그리고 전두환과 고영태
게시물ID : sisa_89309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권종상
추천 : 3
조회수 : 36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4/14 07:46:50
전두환이 광주민주화 항쟁 진압 과정에서 사실상 역할을 했다는 것은 이미 법적으로 정리가 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부인 이순자와 함께 자서전을 통해 자신의 역할을 부정하고 있는 가운데, 경향신문에서 미국측의 보고서를 입수, 전두환이 사실상 핵심적 역할을 했다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그런 와중에서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를 열게 된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사람 중 하나인 고영태에 대한 체포영장이 떨어졌다는 소식도 함께 실렸습니다. 여러가지로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기사입니다. 

고은 시인은 그의 연작시 '만인보'를 통해 고영태의 가족사를 알린 바 있습니다. 이미 많이 알려졌다시피 고영태의 부친 고규석씨는 광주 항쟁 당시 서른 일곱 살이었고, 항쟁에 참가했다가 계엄군의 총격으로 숨졌습니다. 부인은 남편을 찾아다니다가 광주교도소에서 버려진 남편의 시신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고영태는 아시안 게임 펜싱 시합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고은 시인의 시 일부입니다. 
"하필이면/ 5월 21일/ 광주에 볼일 보러 가/ 영 돌아올 줄 몰랐지/ 마누라 이숙자가/ 아들딸 다섯 놔두고/ 찾으러 나섰지/ 전남대 병원/ 조선대 병원/ (…)/ 그렇게 열흘을/ 넋 나간 채/ 넋 잃은 채/ 헤집고 다녔지/ 이윽고/ 광주교도소 암매장터/ 그 흙구덩이 속에서/ 짓이겨진 남편의 썩은 얼굴 나왔지/ (…)/ 다섯 아이 어쩌라고/ 이렇게 누워만 있소 속 없는 양반/
고규석의 마누라 살려고 나섰다/ (…)/ 광주 변두리에/ 방 한 칸 얻었다/ 여섯 가구가/ 수도꼭지 하나로/ 물 받는 집/ 방 한 칸 얻었다/ 망월동 묘역 관리소 잡부로 채용되었다// 그동안 딸 셋 시집갔다/ 막내놈 그놈은/ 펜싱 선수로/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 걸고 돌아왔다// 늙어버린 가슴에 남편 얼굴/ 희끄무레 새겨져 해가 저물었다"

광주 항쟁에서 아버지를 잃은 고영태는 최순실과 연결되면서 불법적인 일들에 관계됐던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는 핵심 물증과 증언을 꺼내놓음으로서 결국 이 역사적인 촛불 시민 혁명의 거대한 문을 열어제쳤습니다. 물론 그는 범죄자이긴 합니다. 그러나 내부 고발자로서 그는 큰 용기를 내야 했을 겁니다. 

우병우의 영장이 기각되던 날 체포됐던 고영태, 그에게 느닷없이 떨어진 구속영장. 이 과정에서 뭔가 석연치 않은 것들이 느껴지는 것은 뭘까요. 이미 대선 국면으로 접어든 상황에서 검찰이 이렇게 국민 감정을 거슬러가면서 무슨 짓을 하려는걸까요. 고영태의 체포 및 구속은 박근혜 측에서 늘 주장해 왔던 고영태 음모설에 힘을 실어주는 행위일텐데.

광주 항쟁 책임자들을 제대로 형장의 이슬로 보내지 못한 것은 참 아쉬운 일입니다. 이렇게 긴 시간이 흘러서야 그 실체들이 우리의 문건이 아니라 미국의 문건으로 조금 더 알려지고 있는 상황, 그 당시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렵게 살아왔다가 결국 희대의 국정농단 사건에까지 연루되었던 고영태. 그가 체포되어 수갑을 찬 사진을 보고 있는 제 마음은 참 복잡합니다. 영웅이면서 범죄자, 그러면서 우리의 잘못된 역사의 큰 피해자인 그에게 동정심이 자꾸 듭니다. 아직도 그 힘을 잃지 않은 우병우는 빠져나왔고, 용기를 내어 역사에 남을 내부고발자가 된 그는 감옥으로 갔습니다. 

왜 우리가 이번 대선에서 제대로 선택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게 됩니다. 아직 청산되지 않은 것들을 청산하고, 상식이 제대로 대접받고, 몰상식과 적폐를 치우고... 이른바 고비처를 설치해 권력 위의 권력, 변하지 않는 권력들을 제대로 청소해 낼 기회를 잡아내야 합니다. 광주의 비극이 없었다면, 그리고 그 비극의 정리를 제대로 해 냈다면, 아마 고영태의 비극적 가족사와 그의 기구한 개인사도 없었겠지요. 괜히 마음이 씁쓸하고 무거워집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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