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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에서 문재인을 뽑으려는 이유
게시물ID : sisa_89534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내옆에참이슬
추천 : 2
조회수 : 40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4/17 01:33:48


뭔가 거창하고 규범적이고 선험적 법칙으로부터 도출된 황금과 같은 이유를 기대하셨다면, 먼저 죄송하다는 말부터 드려야겠네요. 

이건 몹시 사소하고 개인적인 이유거든요. 

친구들 술자리에 모여서 이야기하다보면 전 주로 정치병걸린 놈, 프로페셔널 시위꾼, 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뭣도 모르고 첨벙첨벙 뛰어드는 놈 정도로 분류돼요. 

근데 사실 전 정치에 크게 관심없어요. 우리 나라가 처한 현실 문제와 그 기저의 원인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본 적도 별로 없고, 여기에 대해 정당들이 어떤 정강을 가지고 있는지, 후보들은 어떤 비젼을 제시하고 그에 따르는 정책과 그 재원 조달 수단을 어떻게 구상하는지에 대해 합리적으로 분석해보려 한 적도 없어요. 

그래서 사실 김진태씨처럼 일말의 주저없이
"좌파의 논리에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보면 신기하기까지 해요. 정치인들한테 정신나간 놈이니 뭐니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 사람들 공부도 많이 하고 실력도 많이 쌓은 사람들이잖아요. 그 쯤은 되어야 저렇게 명확하게 세상을 재단할 수 있나? 싶기도 해요. 

논리도, 학식도, 분석도 없는 이에게 사실 남은 건 감정뿐이죠. 내 감정을 지배하는 것, 가장 큰 뿌리가 되는 사건들. 

내 할아버지는 평생 분단과 한국전쟁의 기억에서 머물러 있는 분이셨어요.(티비 나오는 얼치기 보수들 말고 진짜 참전 용사셔서 참전 용사 모역에 계시죠) 제 부모님은 산업화 시대의 기억을 강렬히 간직하신 분들이고요. 

이런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고민 없이 자신에 익숙한 신화와 그 미메시스를 쫓는다고 욕 많이 먹죠. 저도 그 사실은 인정하기는 한데, 사실 같이 욕할 처지는 못돼요. 저도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386세대를 행동하게 만들고 정치적 각성을 일으킨 것이 광주 민주화 운동이었다면, 저에게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가 그런 거였어요. 제 지금 세상을 만든 사건이었죠. 어쩌면 지금 청소년들에게는 세월호가 그런게 될 수도 있겠네요. 

지금도 그가 성공한 대통령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가 죽었을 때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야만 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대한문에서 그를 보내며 '아, 여기에 책임있는 자들을 위해서는 결코 투표하지 말아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나라가 망해도 1번이야를 외치는 사람들과 전 크게 다르지 않아요. 

그래서 전 적극적으로 이번에 누구를 찍어아 누구를 찍어야 우리나라가 산다 이런 말 남들에게 못해요. 기껏해야 저거 저 놈들도 부패한 기득권 세력 아니냐? 난 적어도 쟤들한테는 투표 못한다라고 말하는 정도지요. 여기에는 '그리고 쟤들이 노무현을 죽게 만든 바로 그 세력이니까.'라는 말을 끝내 못합니다. 합리적인 척 가장하는 그 기저에 사실은 제 하찮은 감정이 무엇보다 크게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비겁하게도 들키고 싶지 않거든요. 

그래서 정작 문재인을 지지하는 이유는 몹시 간단해요. 개인이 갖는 능력이나 카리스마나 행보는 사실 부차적인 문제였어요. 지금 나와있는 후보들 중에 그 세력과 가장 타협하지 않을 인물이라 뽑는 거에요. 만약 이번에 또 실패를 겪게된다 해도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고요. 

개인적으로 이게 참 스스로에게 불행한 일이라는 점을 자각하고는 있어요. 과거 기억에 매몰되어 미래을
향해 처절한 고민도, 열정어린 운동도, 애정도 갖지 못하니까요. 이런 비난은 제가 소위 콩크리트를 비난할 때 쓰는 언어인데, 사실 저에게도 많이 아픈 말이에요. 언제까지나 감정의 찌꺼기에 들어붙어서 침전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이번에 단순히 가장 내 세계에 맞는 선택지인 문재인씨에 지지를 보내는 걸 넘어서, 꼭 그가 당선됐으면 해요. 그래야만 저도 이 정체모를 마음의 부채라는 짐을 덜 수 있고, 어쩌면 진짜 시민이 될 수도 있겠죠. 

그래서 이번의 결과로 저의 이 오래되고 숨쉴틈 없는 세상이 붕괴될 수 있기만을 기다립니다. 그게 제가 문재인을 선택한 이유입니다. 

길고 재미없는 이야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 앞으로는 스스로 이런 이야기를 쓸 생각이 없어서 멋도 없이 장황해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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