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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비어나 허위사실 유포 신고 어디에 하나요?(feat.제2의 남해혈서)
게시물ID : sisa_91538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알아?
추천 : 1
조회수 : 1069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7/05/01 12:13:41
2의 남해혈서(南海血書)


제2의 남해혈서(南海血書) (The Second Blood Letter from Nanhai)


남쪽 바다의 한 고도(孤島)에서 대만의 어부에 의하여 발견된 이 편지는 적화된 베트남에서 공산주의의 학정을 피해 탈출한 어느 보트 피플의 비참한 절규를 기록하고 있다. 이름하여 남해혈서(南海血書)이다. 이 편지는 1978년 대만의 중앙일보에 의해 소개되었고 편지는 대만의 반공기념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전해진다.
다음은
난민이 기록한 남해혈서의 일부이다.


❍ 나는
     지금 누구에게
     이 편지를 쓰는가?

나는 이 몇 년간 잔인하고 야만적이며 소름끼치도록 비극적인 갖가지 죽음을 목격하였다.
분노와 비탄, 적개심이 내 안에서 끓어오른다. 남해의 한 무인도에서 나는 셔츠 위에
나의 피로 이 편지를 기록하고 있다.
나는 누구에게
이 편지를 쓰는가?

우리 집안은 대대로 자본가나 지주계급은
단 한명도 없었다.
나의 11명 가족 중에 형은 전쟁 중에 총에 맞아 죽고 종전 후
나의 조모와 7살 된 조카는 굶어 죽었다.                        나의 부친은
정치와는 담을 쌓고 살아가는 농부였음에도 혁명투쟁모임에서 몽둥이로 맞아 죽었으며 나의 둘째 형은 수용소에서 견딜 수 없는 배고픔으로 감자를 훔쳤다고 해서 총살당하였다.
나는
가족을 파멸시킨 공산주의자들을 뼈속까지 저주하며 그들과 같은 하늘을 지고 살 수 없었다.

나는 아내와 남은 가족을 싣고 배를 타고 남해를 유랑하였다. 아내는
배에서 해적에게 살해당하였고
나의 아들과 나는 무인도에 헤엄쳐 당도하였다.
나의 아들은 무인도 도착 후 13일째에 굶어죽었고 나와 몇몇 난민이 아들의 시체를 뜯어 먹으며 연명하였다.

민주투사들 그들은 끊임없이 사실을 조작하고 선동하였으며 시민의 적개심을 북돋우었다.
호랑이굴에 우리를 밀어넣고 무고한 시민들을 불구덩이 속으로 처넣은 사람들은 바로 민주투사들이었고 우리를 속인 동맹국이었다.
황량한 바다.
이제 두렵지 않은 죽음이 다가온다. 그러나 아! 하나님! 마지막 내 살점을 파내는 피의 절규를 들어주소서.
하늘 아래 이렇게 죽어 갈 수 있는지…
하나님! 말하여 주소서!


❍ 월남의 패망과 민주투사들의 종말

지금으로부터 42년전 1975년 4월 30일 정오에 월맹 공산군 제2군단 소속탱크부대가 사이공에 입성하므로써 월남이라는 나라는 지구 상에서 허무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이 시점에서
새삼 월남 패망의 역사를 회고하는 것은 지금 한반도의 상황이 40여년 전 월남의 상황과 너무나 비슷하게 맞닿아있고 한국도 점차 북한에 의한 패망의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당시 친월맹친북좌파들은 월맹기를 들고 거리에서 월맹군을 열렬히 환영하였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파멸과 죽음뿐이었다. 그들이
그토록 애쓰던 ‘우리민족 끼리’와 외세배격의 이상이 실현되고 나서 그토록 반정부 활동에 열과 성을 다하던
반정부 운동가들, 좌파교수, 종교인, 학생들이 가장 먼저 개조캠프에 보내졌고 죽음을 맞이하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반역활동을 하던 인간들은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똑 같은 짓을 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때문이었다. 그리고
공무원, 지도층 인사, 언론인, 정치인들까지 적화통일 이후 모두 600만명 이상이 개조캠프에서 처형되거나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목숨 걸고 월남을 탈출한 보트피플의 수가 100만을 넘어갔다.

월남의 패망은
월남을 장악하고 있던 1만여 명의 간첩들과 좌익언론들이 오로지 북의 월맹의 논리를 전하면서 ‘우리민족 끼리’, ‘북폭반대’를 외치며 끝없이 여론을 조작하고 젊은 세대의 호국의 의지를 꺾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전교조가 젊은 세대의 나라사랑의지를 완전히 말살시키는 교육을 하고 젊은 세대로 하여금 조국을 저주하게 만들고 있음은 42년 전의 월남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10만명의 고정간첩이 암약하고 있으며 이들이 정치, 사법부, 학원, 영화 및 문화계, 종교계를 장악하고 있다.
서울 상공에 비행기 소음만 들려도 시민들이 ‘북한 전투기 아니냐?’ 고 하면서 법석을 떨고 있다.
위기불감증과 전쟁 공포증으로 이제 누가 나라를 지킬 것인지 참으로 암담하다. 

❍ 문재인의 정체는 무엇인가?

월남 패망 당시 월남 사람들은 평화의 무드 속에서 주적의 개념마저 상실하고 있었다.

한국의 문재인은 대선후보 토론에서 바른 정당 유승민 후보의 질의에 대하여 끝까지 북한을 주적으로 정의할 것을 거부하였다.
지금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호전적이고 폭압적인 정권을 추종하는 후보를 대통령으로 맞이하려고 하고 있다.
아직도 그는
햇볕정책이 성공한 정책이었다고 옹호하면서 세계의 모든 나라들, 심지어 북한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다는 중국마저도 북한의 핵 미치광이 정책에 분노하면서 송유 대폭축소를 언급하는 마당에서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재개를 약속하고 있다.
이는 북한에 연 3억불 이상을 퍼주어 북한의 핵개발을 더욱 완성, 가속화시킬 것이다. 
1967년 9월 3일 치러진 월남 대통령 선거에서 차점으로 패한 야당 지도자 쭝딘쥬 변호사는 ‘외세 배척’ 및 ‘우리민족 끼리’ 구호를 내세우며 동족 살상 및 월맹에 대한 폭격금지, 미군철수, 조속한 남북 평화회담 등을 주장했고 이 같은 발언은 미국과 월남 국민들의 반전여론을 자극했다.
마치
지금의 대한민국 내의 종북세력처럼 ‘우리민족 끼리’를 내세운 것이다.  

친월맹 종북 세력은 “우리끼리 싸움을 해서 외국군까지 불러들여 아름다운 조국의 강토가 피바다가 되었으니 조상들이 얼마나 슬퍼하시겠는가?
안 된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평화 협정을 맺어서 평화적으로 남북통일을 해 나가겠다.
우리는 한 민족이다.” ㅡ 야당지도자 쭝딘쥬가 이렇게 주장했는데 그는 월맹의 간첩이었으며 월남국민들은 꿈에도 이를 몰랐다.

한국도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한 야당지도자는 NLL을 팔아먹으려 한 노무현정부의 비서실장이었고 UN인권 결의안 찬반을 앞두고 북한과 내통하였다는 의혹이 선거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다.
지금 문재인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
월남 패망당시의 쭝딘쥬변호사와 많은 면에서 유사점이 두드러진다.

방송문화진흥원 고영주 이사장은
'문재인은 공산주의자입니다'라고 단언하고 있다. 문재인은 "대통령 탄핵이 기각되면 혁명 밖에 없고,
대통령에 당선되면 북한에 먼저 가겠다." "세상을 뒤엎고 보수세력을 불태워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의 공산주의자로서의 행적은 다음과 같다.

1. 사드배치 반대
2. 국가보안법 폐지
3. 주한미군 철수
4. 국정원 해체
5. 전작권 환수
6. 한미연합사 해체
7. NLL 포기
8. 해군기지, 밀양송전탑 반대
9. 전교조 부활
10. 국정교과서 폐지
11. 한일위안부 합의 및 군사 정보 보호협정 재검토
12. 한총련 합법화
13.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
14. '북한주적'용어 사용반대
15. 국가정당성 반대 (1948. 8.15)
16. 진보용공세력 옹호및 미화
17. 북한 세습체제 입닫음
18. 이라크 파병 반대
19. 좌경 진보사건만 주로 변호
20. 리영희씨 책에 감동표현

또 한 가지
참으로 우려되는 것은 2004년 7월
당시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었던 문재인이 당시 55세의 막내 이모를 이산가족 상봉의 일환으로 만났다는 사실이다. 문재인은
1953년 1월에 거제에서 출생하였으므로
북한의 이모가 문재인을 본적은 없다.
그럼에도
북한의 이모 강씨가 문재인을 지목하여 이산가족 상봉을 요청하였다는 것은 북한의 공작에 넘어갔다는 의혹이 대두될 수밖에 없다.  당시 문재인 수석은 청와대를 비우고 2박3일간 북한을 방문하였다. 그 기간 동안 문재인이 무엇을 하였는지 2박3일의 일정을 소상히 국민에게 밝혀야 한다.

❍ 5월 9일은
이제 마지막 선거가
될 것이다.

5.9.선거는 포장만 선거일뿐 실질은 연방제 세력의 민중혁명의 완성과 이를 저지하려는 애국세력 간의 총성없는 전쟁일 뿐이다.
DJ, 노무현 이래
정치, 사회, 노동계, 문화, 사법부, 종교계를 장악한 민중혁명 세력은 이제 혁명의 완성기에 달하였다고 공공연히 여기고 있다.
이들은 2003년 12월 대선 승리 1주기를 기념하면서 ‘시민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외쳤다.
이들은 헌재에서 대통령 탄핵이 통과되자 광화문 광장에서 ‘아직 시민혁명은 끝나지 않았다.’고 외쳤다.

이제 공산주의자가 대통령이 되면 한반도의 적화와 북한식 사회주의체제가 들어서는 것이 바로 이들이 말하는 시민혁명의 완성이 된다.
원로 정치학자이며 시대의 양심인 양동안 교수는 ‘대선에서 보수세력이 패한다면 부역자 청산을 신호로 공산화의 문을 여는 체제변혁이 급속이 진행될 것이다.’고 경고하였다. 민주주의 정부 권부의 핵심인 대통령마저도 이들은 촛불을 앞세워 탄핵, 체포, 구금하였다. 이것은
이들이 말하는 민중혁명의 시발에 불과하다.

문재인은
그의 자서전 ‘운명’에서 ‘월남전에서
미국의 패배 및 월남의 공산화에 대해서 희열을 느꼈다’고 말하였다. 베트남이 적화되어 6백만의 선량한 시민들이 참혹하게 죽음을 당하였음에도 문재인은 희열을 느꼈단 말인가?
베트남에서 꽃다운 나이의 국군 5,066명이 전사하였고
국군 11,232명이 부상당하였다.
그러면 그들은 미제국주의의 앞잡이가 되어 개죽음을
한 것인가?
문재인은
대답하여야 한다. 다음에 문재인이 희열을 느끼게 될 것은 무엇일까?
해답은 명명백백하다. 바로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이 공산화될 때 문재인은
또다시 희열을
느끼게 될 것이다.

❍ 젊은 세대들이여!

이제
그대들이 남해를 정처없이 떠돌면서 제2의 남해혈서(南海血書)를 쓸 날이 멀지 않았다.

북한 핵이 완성단계에 있어 언제 어디에서든지 미사일 발사가 가능하여 민족절멸의 절체절명의 위기가 눈앞에 있음에도 문재인 더불어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사드 배치를 끝까지 반대하고 있다.
그는 4월 26일 주한미군이 사드배치를 단행하자 이를 ‘국민의 주권을 짓밟은 폭거’라고 비난하였다.
이는
그가 공산주의자 중에서도 고도의 확신범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이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이 나라는 42년 전
4월 30일,
사이공이 함락되었던 그러한 순간이
멀지 않았음을
깨달아야 한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몇 년 고생하다가 세상 떠나면 그만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포악한 북한 유일신 체제의 암흑세월을 젊은 세대는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 사유재산은 몰수당하고 5000만 인구 중 2000만명은 출신성분에 따라 개조캠프에 보내졌다가 3-4년 이내에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때 그토록 종북 공산주의에 열광하였던 젊은 세대들은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일본의 오키나와 해역 등 남해를 정처없이 유랑하면서 제2의 남해혈서(南海血書)를 쓸 운명에 처할 것이다.

‘우리를
죽음의 불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은 것은 바로 민주화 투사들이었다.

아 어찌하여 나는 그토록 공산주의자의 잔혹함을 몰랐던 철부지였단 말인가?

부모님의 근심걱정을 한갓 꼰대들의 부질없는 무지라고 비웃었던 것이 이토록 무섭고 비참한 결과를 가져올 줄이야.

공산주의자들의 잔혹한 폭정아래 나의 가족들은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여 굶어죽고 자본주의에 젖어있는 반동이라는 모욕 속에서 혁명집회에서 맞아 죽어갔다.
이제 보이는 것은 넓고 푸른 망망대해(茫茫大海)뿐.
두려울 것 없는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

"아, 하나님!
이렇게 비참하게
죽어갈 수 있는지
답하여 주소서!"  

(2017. 4. 29. Pine Hill)       
[출처] 제2의 남해혈서(南海血書) (잊혀진자들) |작성자 바나바 BarNa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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