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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소회.
게시물ID : sisa_92948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러브액땜얼리
추천 : 0
조회수 : 389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7/05/10 06:2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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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문재인이 되어서 다행이다.
문재인을 찍지 않았다.
그래서, 문이 낙선되었더라면 괴로웠을 것이다.
저번 선거엔 야권통합후보가 나왔기에 문을 찍었다.
하지만, 이번엔 평소의 정치지향과 가장 비슷한 정당의 후보가 나왔고, 
그래서 심상정을 찍었다.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마지막 여론조사 결과,  문, 홍이 3% 내외의 접전이었다면,
그 고민은 더 깊었을 것이다.
개인적인 예상은 문 38, 홍 34, 안 19, 심 5, 유 3 이었다.
출구조사는 문 41, 홍 23, 안 21, 유 9, 심6 이다.
유가 홍의 표를 크게 가져갔다. 
마지막 토론 때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가 어필했던 것 같다.
홍의 장점이 선명성이었는데,
막바지의 철새 영입이 자신의 원칙을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세 불리기는 골룸의 반지와 같다.
눈앞에 있으면 판단력이 흐려지게 되는 것.

우리 집도 표가 갈렸다.
기억엔 9년 전 표도 갈렸던 것 같다.
아내에게 나의 지지자를 권유하지 않았고, 권유받지 않았다.
사실, 누굴 찍어야 하는지 아내가 물어오긴 했었다.
마음에 가는 사람을 찍으면 된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선거 한 달 여 전, 갖고 있던 기준을 말해준 적이 있다.

"3% 이상 벌어지면 심을 찍을 거고, 
3% 이내의 접전이면 고민 좀 해봐야겠다."

선거날 아침 간단한 의견 교환이 이뤄졌다.

"자기는 문을 찍고, 나는 심을 찍으면 되겠네."

투자도 분산 원칙을 지켜야 하지만, 정치 포트폴리오도 분산이 든든하다.ㅎ
사이좋게 투표장으로 향했고,
각자 지지하는 후보자를 찍고,
다시 사이좋게 돌아왔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종교와 정치적 입장의 프레셔를 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똘레랑스'가 우리집 가훈에 가깝다.

정치적 관점의 선거, 그리고 후보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인물을 볼 것인가, 당을 볼 것인가.
역사를 맑스주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편한 나는,
당을 배제하고, 인물을 보고 선거를 한다는 관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당이 걸어 온 역사,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안철수를 지지한 많은 사람들은 당보다 인물을 택한 것이다.
내 기준으로 이해되지 않는다고 그분들의 선택이 틀린 것이 아니기에,
그들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고백건대, 단 한 순간도 안철수란 인물에 대해 호의를 가진 적이 없었다.
당이 아닌 인물로만 봐서도,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는 모호함이 질리게 만들었다.
안철수, 당신은 진보인가, 보수인가, 증세를 할 것인가, 감세를 할 것인가.
돌아온 대답은 매번 모호했고, 양쪽에 다리를 걸친 모습은 역사와 철학의 부재였다.

권리장전은, 
사회계약은, 
프랑스혁명은, 
근대시민사회는 그런 식으로 형성되지 않았다.  

그냥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인기를 얻고, 
그래서 어쩌면 그렇게 대통령이 되기를 기대하는 사람을 지지할 수는 없었다.
다만, 그런 안철수를 지지하는 20% 국민의 존재를 존중해야 한다.
당이란 정치 기구에 관심 없는 인구 말이다.

당이 아닌 인물로만 보자면,
고백건대 가장 친구 하고 싶은 사람은 홍준표다.
생각은 완전 다르지만,
정치적 지향도 다르고, 하나부터 열까지 의견을 일치시키기 참 힘들어 보이는 사람이지만,
인간적인 매력이 있다.
자기의 생각을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의사결정의 백그라운드엔, 동의하긴 힘든 우파 철학이 견고히 있다.

후보 수락 연설을 유튜브로 봤는데,
주변 강대국, 트럼프, 시진핑, 푸틴, 아베를 거론하며
모두 극우정권인데 우리도 스트롱맨이 나와야 한다고 할 때,
이 사람 솔직하다고 생각했다.
이번 선거가 '박애주의 인권 변호사' vs '정의로운 우파 검사'가 되리라 그때 생각했던 거 같다.

비록, 그가 속한 정당이 역사적으로 도무지 동의할 구석이 없고,
그가 지향하는 정치적 가치가 하나같이 르펜 쌈 싸 먹은 극우주의고,
경제적 지향은 프리드먼, 하이예크류의 시카고학파 신자유주의 우파지만,
당을 떠나 인물로만 보면,
유도리 있고, 친해질 수 있는, 부산 계열, 영남 계열 특유의 정 많은 머스마다.

일화를 하나 알고 있는데,
옛날, 재래시장에서 야채파는 할머니 앞을 홍준표가 지나가며,
"할매, 그거 다 떨이로 주소. 싸게 주소" 했던 적이 있다.
부산 상남자 특유의 츤데레다.
정치적으로 함께 할 수 없는 상남자, 홍준표의 향후 행보를 기대해본다.

사사건건 앞으로 시비 걸고, 
때론 뚜껑 열리는 정치적 판단을 하겠지만,
민주주의란 게 원래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자유롭게 다른 생각을 말하며 사는 세상 아닌가.

자신이 투표했던 후보의 당선을 축하드리며,
낙선을 위로 드린다.
나 또한 낙선자 그룹이니, 어느 정도의 위로를 나눠도 괜찮지 않을까.ㅎ

사고 없이 무사히 선거가 마쳐서 다행이다.
민주주의가 한 뼘 더 성숙해진 느낌이다.
볼테르의 깡디드 마지막 대사처럼,
'이제 우린 우리의 뜰을 경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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