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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계, 그리고 정의당에 관한 긴 이야기.
게시물ID : sisa_93810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MI_Kei_AN
추천 : 6
조회수 : 46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5/16 18: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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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진보 노선의 역사는 꽤 오래전부터 거슬러 올라가, NL과 PD. 즉 자주민족해방 진보주의자와, 반파쇼투쟁 진보주의자 운동권의 통합과 대립의 역사로 점철된다. 현재 정의당의 수뇌부를 이루고 있는 두 주축은 통진당계(NL계)와 진보신당계(PD계)로, 길고 긴 민주화 학생/노조운동을 해오며 정립된 수직계열화된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튼튼한 조직체계를 갖고 있다. 이전의 경기동부연합의 폭력사태로 인하여 NL계의 발언권이 많이 수그러든 상태이긴 하나, 워낙 조직과 세력이 큰 탓에 주요 수뇌부층은 PD, 중간 역할은 NL이 주축을 이루는 편이다.

하지만, 정의당 내에는 제 3의 세력이 한가지 더 있다. 민주당내에서 온건진보주의자들로 구성된 참여계가 바로 그렇다. 주로 노무현정부 시절의 열린우리당/노사모 내의 운동권/사민진보주의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와같은 참여계는 민주당/열린우리당내에서 생성된 역사로 인하여 단순히 정의당 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과 정의당 사이에 광범위하게 걸쳐서 존재하고 있다. 현재 민주당내에 존재하는 진보세력을 굳이 PD계나 NL계로 부르기 보다는 별도의 세력인 참여계로 부르는것이 더 합당할 것이라 생각한다.

참여계가 위의 NL과 PD로 주로 구성된 진보당의 역사와 반대로, 중도보수당인 민주당/열린우리당내에서 생성된 계기는,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민주화 운동에 온건파 진보주의자들이 참여한데 있다. 주로 온건파 진보주의자들은 NL이나 PD가 주창하는 계급화(물론 반파쇼에 더 의미를 두겠지만, 실질적으론 노조운동에 더 의미를 두고 있으므로)나 주체화보다 더 민주화를 최우선하고 실현하는데 동의하였고, 이들은 학생운동의 주류세력과는 조금 떨어진 위치에 있어 NL이나 PD에 포섭되지 않았다.

이러한 참여계는 파편화 되고 세력화 되지 않아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는 다양한 계파들 사이에서는 빛을 보지 못했으나, 이후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과정에서 언더그라운드독으로 단숨에 대권주자가 된 노무현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의 결집인 노사모 사이에서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결집하고 세력화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노사모는 실질적으로 NL이나 PD처럼 공식적인 집단이나 연합을 갖추고 있지 않지만 광범위 하게 노사모 내의 '참여계'로써 성장해 나가기 시작했다.

참여계가 공식적으로 성립하게 된 계기에는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으로 분당 및 재합당, 그리고 노무현 서거 이후의 국민참여당의 발족에 있다. 민주당 내의 계파들은 노무현 정부와 대비되어 장기간에 호남지역을 기반으로 하다보니 보수/호족화 되었고, 김대중 대통령이 기나긴 민주화 운동과 계파를 억누를 수 있을만한 명성과 카리스마로 이들을 어우르고 통합할 수 있었던 반면에, 민주당의 싸움닭으로 불리며 파벌이 존재하지 않았던 노무현이 급격히 대선주자로 성장하고 대통령이 되면서 부터 민주당 내 계파들은 같은 당내의 노무현 대통령을 견제 하기 시작했다. 이때 부터 시작된 구 민주당계와 현 민주당내 참여계의 갈등은 현재 진행중인 더불어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관계로 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구 민주당계파들은 민주화운동과 노무현대통령으로 중심이 잡혀있던 신진 세력인 노사모 및 열린우리당에게 주도권을 뺏기고 싶어하지 않아했다. 탄핵소추 이후 열린우리당이 총선에서 대거 의석을 점유하면서 참여계 인사들이 크게 대두되었으나, 이후 경험 부족과 보수세력의 재집결에 따라 지지도가 크게 낮아지게 되었고,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안정적인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던 민주당과 지지도가 하락한 열린우리당의 재 합당 이후 민주당 내 계파들은 연합하여 참여계를 밀어내기 시작하였다. 참여계의 일부는 국민참여당을 발족하여 온건 진보노선 / 친노주의 정당을 주창하였고, 이후 국민참여당이 통진당 및 진보신당, 정의당으로 진보정당들이 통합/분리하는 과정에서 정의당 내에 포함되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하여 전 민주당-열린우리당 출신이면서 진보당에 속하게 된 정의당의 얼굴마담중 하나인 유시민(현재는 정치생활을 하지 않지만)과 천호선은 이러한 참여계에 속하고 있고, 20대 총선에서 민주당내 참여계/친노계열이 김종인 및 잔류 구 민주당계의 총선 공천과정의 불공정성에 항의하는 표시로 정의당에 비례표를 다수 던진데에는 '정의당 참여계와 민주당 참여/친노계열은 한뿌리다'라는 의식에서 비롯되어 있다.

이 글을 왜 쓰는가. 서두에 밝히지 않았었지만, 현재 더불어 민주당의 지지율 열풍과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 그리고 정의당 및 진보언론이 불협화음을 내고 있는데에는 NL과 PD의 케케묵은 갈등과 통합의 역사로 인해 점차 폐쇄화,수구화,수직계열화 되는 과정 사이에, 새로 들어온 참여계가 점차 정치권에서 크게 대두되는 과정을 보면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과 정의당내에 크게 걸쳐있는 참여계와 제대로 선을 긋지 않으면 존재의의가 희박해지면서 기존의 지지자들도 민주당으로 유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이미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이 총선통합후보를 내면서 지지표들을 유출해 본 경험이 있으므로), 참여계를 내치면서까지 정의당의 색을 뚜렷하게 하여 진보 정치세력을 굳건히 하려는 행동이라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정의당이 몇 가지 간과한 부분은, 정의당 내부의 참여계파는 NL과 PD와 같이 조직화 되어있지 않아 자세한 수를 파악할 수 없었고 그 수가 미상이었으나, 메갈리즘 사태 및 페미니즘 계열 통합과정에 반발하여 이탈한 당원수 만큼, 유출된 당원 수의 숫자가 많으며 (약 500-1000명 예상.), 그 사이의 파이프라인으로 연결 될 수 있었던 유시민 및 천호선을 정의당 주류에서 배제시키면서 소통창구가 사라져버린 탓에 더욱 큰 갈등을 불러 일으키기 쉽다는 것이다.

20-30대와 같이 학생운동 및 NL과 PD와 연관이 되지 않은 세대들. 그리고 보수정부의 9년 집권과정에서 청년실업과 경제위기의 반향으로 진보쪽에 눈을 돌리게 된 유권자들은 그러한 NL과 PD로 양분되어 주류 세력화된 정의당보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으로 대표되는 민주화 운동의 역사와, 새로운 정치신인 발굴, 정치경험이 높은 민주당의 참여계로 합류하는 경우가 더 크다.

그 과정에는 당연하게도 자칭, 온건 사민주의자이면서 민주당에 당비를 납부하는 권리당원이 된 나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정의당에 비례표를 던졌고, 정의당이 민주당 참여/친노계와 함께 협력해서 더욱 더 큰 세력이 되어 언젠가는 민주당과 정의당으로 보수와 진보 두개의 정당이 대두되길 바랬던 그런 호의에 비수가 꽂혀버리게 되기 까지는, 정말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이 기나긴 글을 쓰게 된 계기이다.

그 이상으로 설명하거나 비난할 일은 딱히 없다. 그와 갈등이 크면 클수록 손해보는 것은 아마도, 점점 다수의 지지와 기존 참여계의 유출을 겪을 정의당 스스로일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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