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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상처, 다시는 그 상처를 덧낼 일은 없으리라
게시물ID : sisa_9410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권종상
추천 : 4
조회수 : 431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7/05/19 04:41:07
지호 친구 루이스가 군대 가기 전, 마지막으로 우리 식구와 저녁을 함께 하고 싶다고 해서 어제 지호 지원이, 그리고 루이스와 함께 근처의 한국 바베큐 전문 식당에 가서 밥을 먹다가 5.18 기념식이 생중계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시간차 따위는 이제 무시해도 되는 세상. 한국 TV가 미국 시애틀의 한 식당에서 비춰주는 그 장면을 보다가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헤이, 대드. 웟츠 고잉 온?" 그가 물어왔고 저는 천천히 설명을 해 줬습니다. 한국에서 1980년 5월 18일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다시 오늘처럼 제자리를 찾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제 눈이 TV를 응시하기 시작하자 지호와 루이스는 고개를 돌려 함께 TV를 바라봤습니다. 
"그래도 아빠 좋겠어요. 아빠 좋아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스피치 하니까." 지호의 말에 저는 미소를 띠었습니다.

정의가 이렇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대통령의 말에는 의지와 힘, 그리고 따뜻함이 담겨 있었습니다. 헬기 사격을 포함한 진상규명에 대해 언급할 때, 그때서야 저는 다시한번 느껴야 했습니다. "그래, 진상은 규명이 안 됐어. 37년이나 됐는데." 

어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서북미에서도 같은 날 큰일이 있었습니다. 이곳의 아름다운 산 중 하나인 세인트 헬렌 산이 정확히 1980년 5월 18일에 폭발해서 꽤 큰 인명피해와 엄청난 재산 피해를 냈던 것입니다. 당시 폭발은 미국 본토에서는 처음 목격된 화산 폭발 및 분화였고, 용암에 녹은 빙하가 화산재와 섞여 콘크리트 반죽 상태가 되어 엄청난 속도로 이 산의 인근을 쓸고 간 라하 lahar 는 순식간에 엄청난 위력으로 인근을 쓸어 버렸습니다. 산 하나를 반 이상 날려버린 이 폭발로 인해 사슴, 곰 등 동물들의 피해도 엄청났습니다. 

37년이 지난 지금, 이 산에는 천천히 생명들이 돌아왔습니다. 아직도 쓰러진 나무들이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라하 때문에 깊게 파여진 골짜기가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집니다만, 지금 여기엔 다시 관광객들이 돌아왔고, 새로운 식물 군락들이 이뤄졌고, 동물들이 돌아왔습니다. 이 정도의 시간이 지나서야 그 아픔이 어느정도 치유되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우리 오월의 상처는 채 다 아물지 않았습니다. 조금 아물려 하면 계속 그 위에 상처를 내어 온 지난 9년의 세월을 돌아보면서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시스템으로 분명히 자리잡아야 한다고, 어떤 다른 생각을 가진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역사적으로 분명히 책임을 묻고 단죄해야 할 일에는 분명해야겠다고. 이것이 정권의 성격에 따라 다시 그 의미가 달라지고, 축소되고, 왜곡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오월 광주를 폄훼하는 것에 대해 용서할 수 없다고 한 대통령의 말, 분명히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아팠던 건 그동안 받아왔던 그 상처가 너무 컸기 때문이겠지요. 정치가 바로 설 때, 이 모든 '당연한 것들'이 다시 상식으로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그렇게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치에 대해 관심을 놓아서는 안 되는 것이겠지요.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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