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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광주, 그날 (2007년 5.18 기념 백일장 대상작)
게시물ID : sisa_94161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폭풍의언덕@
추천 : 7
조회수 : 47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7/05/19 15:34:49

그 날/ 정민경

 

나가 자전거 끌고잉 출근허고 있었시야

 

근디 갑재기 어떤 놈이 떡 하니 뒤에 올라 타블더라고. 난 뉘요 혔더니, 고 어린놈이 같이 좀 갑시다 허잖어. 가잔께 갔재. 가다본께 누가 뒤에서 자꾸 부르는 거 같어. 그랴서 멈췄재. 근디 내 뒤에 고놈이 갑시다 갑시다 그라데. 아까부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어른한티 말을 놓는거이 우째 생겨먹은 놈인가 볼라고 뒤엘 봤시야. 근디 눈물 반 콧물 반 된 고놈 얼굴보담도 저짝에 총구녕이 먼저 뵈데.

 

총구녕이 점점 가까이와. 아따 지금 생각혀도...... 그땐 참말 오줌 지릴 뻔 했시야. 그때 나가 떤건지 나 옷자락 붙든 고놈이 떤건지 암튼 겁나 떨려불데. 고놈이 목이 다 쇠갔고 갑시다 갑시다 그라는데잉 발이 안떨어져브냐. 총구녕이 날 쿡 찔러. 무슨 관계요? 하는디 말이 안나와. 근디 내 뒤에 고놈이 얼굴이 허어애 갔고서는 우리 사촌 형님이오 허드랑께. 아깐 떨어지도 않던 나 입에서 아니오 요 말이 떡 나오데.

 

고놈은 총구녕이 델꼬가고, 난 뒤도 안돌아보고 허벌나게 달렸쟤. 심장이 쿵쾅쿵쾅 허더라고. 저 짝 언덕까정 달려 가 그쟈서 뒤를 본께 아까 고놈이 교복을 입고있데. 어린놈이.....

그라고 보내놓고 나가 테레비도 안보고야, 라디오도 안틀었시야. 근디 맨날 매칠이 지나도 누가 자꼬 뒤에서 갑시다 갑시다 해브냐.

 

아직꺼정 고놈 뒷모습이 그라고 아른거린다잉......

 

- 5·18민중항쟁 27주년기념 백일장 시 부문 대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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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집 아저씨가 그 때 ‘그 날’의 이야기를 단숨에 내뱉은 걸 그대로 옮겨 쓴 것 같은 이 시가 18세 소녀의 시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라는 찬사를 받았다. 5·18 서울기념사업회가 당시를 경험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민주주의와 공동체문화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자는 취지에서 2007년에 개최한 백일장에서 대상을 차지한 당시 경기여고 3학년 학생의 작품을 보고 심사를 맡은 정희성 시인은 경악했다고 한다

산문형식으로 지어진 짤막한 시 '그 날'.

하지만 그 짧은 문장 속에는 5·18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모든 것이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살당한 어린 시민군의 슬픈 얼굴, 항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없었던 소시민의 비애, 사람의 오금을 저리게 했던 진압군의 총구, 제 나라 국민에게 등을 돌린 비겁한 언론사들, 여기에 살아남은 자들의 견딜 수 없는 슬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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