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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처음으로 괴벨스의 관뚜껑에 못을 박았다
게시물ID : sisa_95647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권종상
추천 : 21
조회수 : 1453회
댓글수 : 12개
등록시간 : 2017/06/15 07:24:16
지호는 공식적으로 오늘이 고등학교 마지막 수업 날입니다. 이미 진학할 대학을 정해 놓았고 오는 토요일에 졸업을 하니 말이지요. 굳이 자랑 하나 하자면, 중학교 때에 이어 고등학교 졸업할 때도 지호는 졸업 연설을 하는 발레딕토리언이 됐다는 겁니다. 뭐, 자기 인생에 좋은 추억 하나 더 쌓는 거겠지요. 굳이 저놈이 아빠를 닮았다느니 하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당연한 걸 뭘. ^^;; 

사실 가방도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날짜변경선을 넘어선 여행의 여파, 그리고 오랫동안 쉬었던 일터로 다시 나가 이틀 동안 긴장의 날을 세웠더니 어제까지는 정말 말 그대로 조금만 피곤해도 바로 곧장 떨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세실리아 이모님 내외와 함께 저녁을 먹고 여행보고회(?)를 가진 후 잠깐 부모님 집에 들렀다가 우리집으로 내려오는 그 길이 그렇게 피곤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대로 넉다운. 새벽에 일어났더니 조금 몸이 가뿐해졌음을 느낍니다. 

집엔 할 일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화단에 어디서인가 날아왔을 씨앗 하나가 잠깐 안 보는 사이에 커다란 나무가 되어 있었습니다. 한달 전 한국 여행을 떠나기 위해 집을 나섰을 때는 보이지도 않던 그놈은 내 키의 절반을 넘길 정도의 나무로 자라 있었고, 화단을 공유하기에 그런 놈들은 매우 무서운 놈들이라 바로 잘라 버렸습니다. 오늘 아침에서야 일이 조금씩 보입니다. 

어제까지도 아마 한국 시간과 미국 시간의 경계에서 해멘 듯 합니다. 오늘 새벽까지도 그랬던 것 같고. 그러나 지금 대략 집안 일들과 화단 돌보는 일, 그리고 쓰레기 내 놓고 이것저것 움직이는 가운데 저는 천천히 몸이 다시 태평양 표준시와 일치화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내 몸 속에 내면화된 일상의 시계는 서울표준시가 아니라 태평양표준시일테니까요. 한국 땅을 26년만에 밟았던 흥분은 비교적 서울 표준시에 저를 쉽게 적응시키도록 만들었지만, 그것은 돌아와서 할 이 고생을 미리 담보로 잡아 놓고 몸이 맞춰진 것이었겠지요. 

일상으로 돌아오면서 다시 그 3주를 돌이켜보게 됩니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이들을 만났습니다. 늘 배고프기보다는 눈이 고팠고, 내가 알고 있었던 한국의 모습에 새로운 슬라이드 필름들을 채워 넣는 느낌이었습니다. 과거보다 눈에 보이는 것을 기록하기 쉽다는 것은 가히 혁명적이었습니다. 이곳에서도 내내 전화기로 카메라질을 했지만, 눈에 띄는 것들, 예전의 것이 살아있다고 느끼는 것들, 그것이 인상적으로 바뀐 모습들을 바로바로 전화기로 담아내고 꺼내어 봤습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전화기의 배터리가 닳아 버리는 것이었고, '충전'은 그래서 어디에 가나, 어느 상황에서나 자연스런 것이었습니다. 충전이란 게 자기보호와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손으로 기록하던 시절이 지났고, 내 머리를 거쳐 펜에 의해 왜곡됐던 기억들이나 인상들이 보다 확실하게 디지털 이미지로 남아 있는 것들을 보면서 저는 다시 한번 기억의 가공 과정을 거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비교적 명확하게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 들어, 수구 보수 언론은 물론 과거 우리가 칭송해 마지 않았던 진보 언론들까지도 시민의 눈높이에서까지 비판을 받는 이유가 뭔가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많은 이들이 현장의 기억을 날것 그대로 담고, 그것이 소셜 미디어들을 통해 전파되면서 비슷한 눈높이를 갖는 이들이 그것을 공유하며 여기에서 받은 인상들을 바로 나눌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기자들은 자기들이 이미 짜 놓은 프레임 속에서 이미지를 가공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일방적으로 전파하며 그것을 통해 권력을 누려 왔습니다.

그런데, 이젠 그런 시대가 아닌 것입니다. 시민이라고 불리우는 다수들이 미리 프레임화되지 않은 정보들을 보이는 그대로 가져와 나누는 것은 이번 촛불 혁명 과정 이전에도 있었던 일입니다. 내가 인터넷을 통해 봤던 생생한 시위의 현장들은 가공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였습니다. 미디어몽구나 고발뉴스 같은 매체의 강점은 바로 그 시민의 눈높이와 같은 곳에서 현장을 전해주었다는 것이었을 터입니다. 

이제 그런 시민들을 옆에 두고 엘리트 기자들이 자기들의 시선과 프레임을 따라와 달라고 강요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프레임웍보다는 현장을 전해주고 그 감성들이 생생하게 날것 그대로 소셜미디어 안에서 공유되는 이 시대에선, 깨어있는 시민들 각자각자가 기자입니다. 촛불 혁명의 성공은 그렇게 바뀐 미디어 지형에서 가능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들러봤던 광화문 광장이나 시청 광장, 대한문 앞의 풍경들을 눈으로 보면서 거기에 다른 이들이 시간을 달리해 담아 두었던 영상들을 겹쳐서 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고, 그래서 그 감성들이 다시 고스란히 제게 입혀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저들이 아무리 프레임웍을 바꾸려 해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쉬이 식지 않는다던지, 시민들이 계속해서 야당의 발목잡기를 비판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접하는 정보의 소스와 틀이 바뀌었다는 점도 한몫 할 것입니다. 게다가 이렇게 학습된 시민들의 생각을 인위적으로 바꿔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낡은 생각의 틀일 겁니다. 다행입니다. 괴벨스는 죽었습니다. 적어도 깨어있는 시민들의 정신 속에서 그는 나치 시대의 선전선동 시대 이래 처음으로 확실하게 무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행동으로서 그의 관을 확실하게 못박아 버렸고, 그의 무덤을 짓밟으면서 촛불 혁명은 지금도 계속 진행형일 터입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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