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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카르텔(한국 교육당국이생각해봐야할일)
게시물ID : sisa_95974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계룡산곰돌이
추천 : 0
조회수 : 47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6/21 13:57:34
좋은글이있어서 퍼왔습니다.



학벌 카르텔 구조의 변화에 따른 저항의 양상에 대하여

학벌 사회의 문제점을 고발해온 시민단체 ‘학벌없는사회’가 자진해산했다.

그들이 밝힌 해산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학벌 사회는 여전히 교육 문제의 질곡으로 자리하고 있지만 더는 권력 획득의 주요 기제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자본의 독점이 더 지배적인 2016년 지금은 학벌이 권력을 보장하기는커녕 가끔은 학벌조차 실패하고 있다. 학벌과 권력의 연결이 느슨해졌기에 학벌을 가졌다 할지라도 삶의 안정을 유지하기 힘들다”

나는 대학 서열화를 비롯한 학벌 카르텔에 저항하고 싶었다. 의미 없는 수험생활로부터 도망쳤고, 나로써는 도무지 깨부술 수 없는 견고한 구조 앞에 무력함을 느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구조는 그 견고함을 잃지 않았고, 잃은 것은 우리의 희망뿐이었다. 무력한 나의 소극적인 저항은 나태함의 다른 이름이었다. 나는 그러한 구조의 견고함과 절망이 두려웠고, 그러한 두려움 앞에 굴복했다. 그러한 두려움이 나의 수험생활을 이토록 지속시킨 비참한 동력인셈이다.

이러한 무기력만큼이나 부끄러운 것은, 나 또한 그러한 학벌 카르텔과 기득권층에 편입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비참한 고백이지만 나는 여느 수험생과 마찬가지로 명문대를 꿈꾸었고, 그것이 나에게 선사할 조금 더 안정적인 미래와 얕은 자부심을 기대했다. 그래서 나는 이 구조 앞에 한 없이 부끄러울 수 밖에 없다.

‘학벌없는사회’ 가 말하는 해산의 이유는 곧 흔히 말하는 계층 이동의 사다리로 기능하던 학벌이 더 이상 그 기능을 하지 못할만큼 계층 구조가 경화되었다는 말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광복 이후의 대한민국에서 개천에서 난 용이 되기 위해, 혹은 용의 자리를 되물림 받기 위해 필요했던 학벌이 더 이상 계층을 결정하는 주요한 요소가 되지 못하고, 그것보다 더욱 영향력 있는 계층 결정의 요소가 등장했다는 말인 셈이다.

올해 초, 사범대 면접의 주제는 ‘수저론’ 이었다. 나는 수저론이 대변하는 계층 이동의 실종의 기반에는 소득과 학력의 상관 관계와 되물림이 있다고 대답했다. 학력, 그리고 학벌이 개인의 생애소득과 삶의 질을 결정하고, 그 학벌이 다시 부모의 소득 수준에 따라 결정되는 학벌 카르텔의 구조를 수저론에 대한 문제 설정 — Problematik의 핵심으로 정의한 것이다. 그리고 ‘학벌없는사회’의 해산이 시사하는 수저론의 문제 설정은 나의 문제 설정과는 전혀 다른 궤도에 있다. 즉, ‘학벌없는사회’의 문제 설정에 따르면, 학벌 카르텔의 구조는 변화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사회의 전환과 구조의 변화가 학벌 카르텔이라는 구조의 균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것이 무력할 만큼 사회 구조의 경도가 짙어졌을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 이상 기능하지 않는 학벌 카르텔과의 투쟁을 포기하고, 더욱 더 견고한 구조와 싸워야 하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학벌 카르텔이 기능한다고 생각한다. 단지 그것이 계층 이동의 역할이 아닌, 계층 고착의 역할을 수행할 뿐인 것이다. 즉, 학벌과 권력의 연관은 계층의 간극에서는 옅어졌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계층의 내부에서는 여전히 기능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고착은 곧 학벌과 소득의 연관에서 비롯된다.

물론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노력을 결집시키기 위한 선택과 집중은 중요하다. ‘뭐라도 합시다’ 라는 말보다 선행해야 할 것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선명한 문제인식’ 이다. 더 이상 더 나은 학벌이 더 나은 삶을 보장하지 않는 세상에서, 더 나은 삶을 되찾기 위한 저항의 변화는 당연하다. 하지만 계층 구조를 고착화하는 학벌 카르텔의 기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사범대 면접을 마치며, 나는 긴장을 감추지 못한 채 마지막 말을 이어갔다. 계층의 이동이 건강한 사회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임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히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수저론의 진정한 붕괴는 굳이 용이 되지 않더라도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할 때 이루어진다. 나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타인과 의자를 경쟁해야 하는 또 다른 의자 놀이를 계층 이동이라는 말로 포장하기보다, 모든 계층이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받으며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가 진정으로 행복한 사회다. 그것이 내가 말하고 싶은 수저론의 핵심이었다.

학벌 카르텔에 대한 저항, 더 나아가 사회 구조에 대한 저항 또한 이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학벌 카르텔에 대한 저항만으로 우리 사회가 더욱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 믿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여전히 학벌 카르텔과 싸워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여전히 기능하기 때문이다. 스러진 ‘학벌없는사회’ 가 안타깝지만, 나의 부끄러움 앞에서 차마 쓴소리를 내뱉을 수 없었다.








# 적폐청산은 국민의 명령이다!
# 노동자가 사람답게사는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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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활한 근로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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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하준교수도 중용하라!
# 최저임금으로 노동자겁박하지말라!


출처 https://medium.com/@leetaegyung/%ED%95%99%EB%B2%8C-%EC%B9%B4%EB%A5%B4%ED%85%94-%EA%B5%AC%EC%A1%B0%EC%9D%98-%EB%B3%80%ED%99%94%EC%97%90-%EB%94%B0%EB%A5%B8-%EC%A0%80%ED%95%AD%EC%9D%98-%EC%96%91%EC%83%81%EC%97%90-%EB%8C%80%ED%95%98%EC%97%AC-d98e1521589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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