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3월, 벤자민 네타냐후는 "중동 전역의 무슬림들이 이스라엘로 버스를 타고 몰려와 불법 투표를 할 것이다," "(가자, 서안 지역 점령 관련) 반 유태주의(anti-Semitic) 유럽 국가들이 이스라엘의 합법적인 주권을 침해하려 한다"라면서 이스라엘 특유의 피해의식과 아랍인들에 대한 인종주의에 호소해 총선에 승리, 이스라엘 역사상 최장기 집권 총리가 되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스라엘의 진보 언론인 기드온 레비(Gideon Levy)는 그 총선 결과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네타냐후는 이스라엘 인들 수준에 딱 맞는 지도자이고, 이스라엘 인들은 네타냐후에게 당해도 싸다(Nethanyahu deserves the Israeli people, and they deserve him)"라고요.
 
우리가 2012년에 느낀 절망감도 이런 것이었겠죠. 북한이나 중국같은 나라가 아닌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가 구비된 나라라고 할 때, 국민들이 선출하는 지도자는 결국 대다수 국민들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일 테니까요. 우리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 박근혜라니. 그런 절망감이었죠. 하지만 정말 다행히도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은 더 이상 박정희와 박근혜로 규정되지 않습니다. 이제 "박근혜는 한국인들 수준에 딱 맞는 지도자이고, 한국인들은 박근혜에게 당해도 싸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70여 년에 걸친 사실상의 자민당 장기 집권. 북한 미사일에 정치적 생명을 맡겨놓은 아베 정권이 또 총선에 승리했네요. 절차적인 민주주의가 보장되어 있는 나라에서 이런 식의 결과만 반복되는 상황이니 "아베는 일본인들 수준에 딱 맞는 지도자이고, 일본인들은 아베에게 당해도 싸다"고 말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여러가지 면에서 이스라엘과 비슷합니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중동 정책에 있어 가장 중요한 축을 이루는 국가이고, 일본은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 있어 가장 많은 정책 지점을 공유하는 우방이죠. 이스라엘과 일본은 미국과 반 세기에 걸쳐 미국과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유대를 강화해왔고, 이들이 이웃 국가들에 부리는 패악질은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커버쳐줄 뿐만 아니라 위안부 합의와 정착촌 건설과 같은 경우는 미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옹호하기도 하죠.

미국이 한국에 1박 2일 머무르고 일본에 2박 3일 머무른다고 언론은 머리털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난리부르스를 떨고, 이름도 거론하기 싫은 모 정치인은 "국격이 떨어졌다"고 하는데요. 아베같은 인물을 총리로 선출하는 일본인들처럼 되어야 "국격"이라는 게 상승하는 거라면 그 따위 국격 필요 없습니다. 국제법이 전쟁범죄로 규정하는 자기 잘못도 인정할 줄 몰라서 이웃 나라와 화해도 못 이루는 일본같은 나라가 되어야 미국의 역내 최고 우방이 되는 거라면 그런 우방 될 생각 없습니다. 우리의 국익과 자존감 그리고 한 국가로서 최소한의 도덕성을 지키는, 또 때로는 미국과 의견을 달리할 수도 있는 "동맹"으로 족합니다.   

형식적인 민주주의가 다가 아니라, 그 민주주의가 무슨 내용을 담아내느냐가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을 결정하는 거겠죠. 현재로서는 미국의 민주주의는 트럼프를, 일본의 민주주의는 아베를, 한국의 민주주의는 문재인을 담아내고 있네요.


+) 평범한 이스라엘 인들이 가자 지구와 서안 지역과 같은 점령 문제, 그리고 팔레스타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시면 아래 유튜브 영상 한 번 보시길 추천합니다(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이 유태인은 아랍인들과 결혼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고요. 아랍인은 죽여도 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역사 인식도 일본인들처럼 사실과는 거리가 먼 수정주의 역사관을 신봉합니다).
영어 영상이긴 하지만 어려운 내용은 별로 없고요. 영어 자막도 뜹니다. 기자가 별다른 개입 없이 이스라엘 인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데만 주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