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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 검사를 죽게 했는가
게시물ID : sisa_99421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권종상
추천 : 1
조회수 : 36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11/07 13:22:42
거짓말처럼, 겨울이 오는 전령처럼 눈이 그렇게 펑펑 내리더니 하늘이 이렇게 맑습니다. 눈이 쌓이지 않았던 것을 다행으로 생각할만큼 내 감성은 참 많이 말라 버렸더군요. 아침엔 갑자기 날이 추워져서인지 타이어 압력을 체크하라는 경고등이 들어와서 덜컹했습니다만, 이따가 집에 가는 길에 코스트코 타이어 센터라도 들러 모자란 바람을 좀 집어 넣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날씨가 손이 곱을 만큼 춥습니다. 그러면서 햇볕은 쨍쨍. 시애틀답지 않은, 마치 한국의 어느 흔한 겨울날같은 그런 날씨가 계속됩니다. 서머타임이 끝난 시애틀, 엊그제 같은 시간보다 더 길고 긴 내 그림자를 보며 걷는 것이 조금 쓸쓸하게까지 느껴집니다. 겨울이라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카페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조금 더 움추린 것처럼 보이고, 이들이 입고 있는 옷이 두터워졌다는 것이 눈에 확 띱니다. 개중 카페의 온기 때문에 자켓을 벗어 부치고 반팔로 뭔가를 두들기고 있는 이들의 모습도 많이 띠지만. 커피의 향이 새롭습니다. 아, 겨우 열두시 사십 오분인데, 햇살의 각도가 이렇다니. 북위 47도, 시애틀에 겨울이 찾아오면서 낮의 길이는 매일매일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이제 동지가 지나고 나서야 햇살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겠지요. 

주말,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이른바 '흑와대'를 시청하면서 세상이 변했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아마 '나는 꼼수다'를 즐겨 들었던 이들이라면 더욱 깊은 흥미를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을 겁니다. 저들이 자기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그들의 권력을 연장시키려면 무슨 짓이든지 하는 집단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다시 보여주는 그런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김어준 식의 유머가 빵빵 터지는 지상파 프로그램, 그것도 저렇게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드는 프로그램이라니. 그동안 숨겨져 있던 것들이 하나 둘 나오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여러가지 생각을 들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변창훈 서울 고검 검사의 자살 사건 소식이 뜹니다. 신문들은 검찰의 수사 방식을 물어뜯기 시작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 넣은 것도 검찰이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꺼내듭니다. 글쎄요, 지금까지 국정원 관련 사건에서 나왔던 그 수많은 죽음들에 대해서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무시했던 것이 언론 아니었나요? 지금 검찰이 물론 그 어느때보다 강한 개혁 드라이브가 걸려 있기에, 그들의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무엇인가 큰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있을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이번의 변창훈 검사 자살 사건을 압박 수사가 빚은 비극으로 보기엔, 지금까지 다른 비극들을 만들어 왔으면서도 음지에 숨어 있었던 국정원이 '숨기려고 하는 것'이 더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저나, 혹은 다른 이들이 갖고 있는 이런 의문들을 풀어 내기 위해서라도, 검찰의 철저한 수사는 필요합니다. 물론 검찰의 수사 과정에서도 강압이나 망신주기가 없었는지 들여다보긴 해야겠지요. 그러나 이명박근혜 시절 주요 사건마다 미적미적거렸던 검찰이 이제사 자기들이 취해야 하는 본연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지금, 일부 언론의 보도 방향은 매우 마음에 걸립니다. 

적폐는 지금 사방에 깔려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바라는것은 진실입니다. 돌아가신 분께는 안된 일이긴 합니다만, 이 분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세력은 결국 이분이 정의로운 검사로서의 길을 가지 못하게 했떤 권력, 즉 앙시앙 레짐이란 사실은 분명히 말하고 싶습니다. 

아, 벌써 해가 많이 기울었습니다. 이제 겨우 한 시인데. 시애틀의 각도 낮은 햇살은 제 키보다 훨씬 긴 그림자를 만들고, 저는 그 그림자를 달고 다시 길을 걸어야 할 시간입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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