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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환 교수가 구하라에게 막말을 했다는 한겨레 기사
게시물ID : society_555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자유와고독
추천 : 0
조회수 : 72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12/09 23: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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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 출신 주철환 교수가 구하라에게 막말을 했다는 기사가 있길래 뭔 일인가 해서 봤다. 내용은 구하라가 멘탈이 약해서 자살한 거고 여러분은 강해져야 한다는 취지로 말을 했다는 것이고 그게 막말이라는 거다. 하지만 기사의 내용을 보면 정작 더 심각한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쪽은 주철환교수보다 명백히 강재구 기자와 한겨레, 그리고 아주대학교 소모임 위아라는 사람들 쪽인 것 같다.

사랑하던 사람의 죽음은 정말 충격적이고 슬픈 일이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이런 생각도 들 수 있다. “그런 일을 이겨내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다니 참으로 안타깝고 원망스럽다, 도대체 왜 그런 거니? 이겨낼 수도 있었잖아.”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아마 부모나 가족의 마음이 그렇지 않을까? 가족이 어떤 좌절이나 슬픔으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했다면 그런 선택을 이해할 수 있을까? “도대체 왜 그랬어?!” 라고 따져 묻고 싶은 것은 정말로 사랑하는 이들의 한편으로는 당연한 반응이 아닐까? 부모가 자녀의 극단적 선택을 원망할 때 그것이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지 않거나 추모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는 건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추모와 사랑의 마음과 원망의 마음은 얼마든지 양립, 병존할 수 있는 것이지 결코 양립 불가능한 감정이 아니다. 깊은 사랑은 깊은 안타까움으로, 깊은 안타까움은 다시 깊은 원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주철환 교수가 부모의 마음으로 그런 말을 했을 거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건 내가 알 수 없는 일이니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이겨내지 못한 것을 원망하고 싶은 것은 한편으로는 그녀의 선택을 진심으로 안타깝게 생각하는 데서 나온 자연스러운 감정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막말이라거나 망자를 비하한 것이라고 보는 것은 터무니없이 악의적인 해석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물론 맥락이 중요할 수 있다. 만약 비웃고 조롱하는 투로 말했다면 그건 막말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기사의 내용 어디에도 그런 맥락을 암시하는 사실은 언급되지 않는 걸로 봐서 그처럼 조롱하는 투로, 비웃고자 하는 맥락에서 나온 말은 아닌 걸로 보인다.

기사에는 오히려 문제 될 것이 없다는 학내 이견을 소개하고 있다. 문제 될 게 없어 보인다는 견해가 나오는 이유는 그런 조롱과 비하의 맥락에서 나온 말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강재구 기자는 그런 학내 이견조차 또 다른 가해로 몰아가고 싶은 것 같다. 자기가 만든 허구적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것이다. 진실은, 이런 것을 가지고 막말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그것이야말로 터무니없이 악의적인 비방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자살이라는 것은 하나의 사회 문제다. 당연히 사람들이 왜 자살을 할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생각해 보면 경우에 따라 사람들이 나약해서 자살을 한다고 볼 수 있는 경우도 분명 있을 것이다. 실제로 베르테르 효과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고 그래서 보도에 대한 권고안도 존재하는 것을 봐도 사람들이 때로 비합리적인 감상에 빠져 극단적 선택을 한다는 것은 하나의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 점에 주목하고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다.

사람들에게 그래선 안 된다, 이겨낼 수 있고, 이겨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지식인이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생각 아닌가? 베르테르 효과를 경계한다면 강해지라고 말해야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사람들은 때로 나약해지거나 감상에 빠져 잘못된 선택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분명한 하나의 객관적 사실이다. 그러한 객관적 사실을 굳이 지적하고 언급할 필요가 있음도 명백하다. 왜냐하면 그 점을 지적함으로써 베르테르 효과가 확산되는 것을 경계하고 사람들이 경각심을 갖게 할 수 있으니까.

물론 악플과 악의적 비방은 처벌 받아야 하고 억제 및 근절되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개인이 강해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악플이 나쁘지 않다거나 그것이 사소한 일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는 없다.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명백한 비약이다. 왜냐하면 악플을 처벌해야 한다는 것과 개인이 강해져야 한다는 것은 전혀 논리적으로 상충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생각과 말의 초점이 다를 뿐이고 전혀 별개의 사안인 것이다. 그런데도 강재구 기자와 위아는 서로 엮을 수 없는 입장을 무리하게 엮어 넣으려고 한다.

물론 망자가 나약했다고 말하는 것이 어딘가 그를 안 좋게 말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것이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이라고 보는 것은 과도하다. 인간은 누구나 나약해질 때도 있고 강해질 때도 있다. 나약함이라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인간적인 면이다. 나약함을 말하는 것이 막말로 간주되려면 그렇게 나약하더니 역시나 그렇게 되었다는 식으로 조롱의 맥락에서 언급되어야 한다. 단순히 그 점을 언급했다는 것만으로 막말로 몰아가는 것은 터무니없는 짓거리로 보인다. 이것은, 찬양 아니면 비방이라는 무지막지한 흑백논리를 강요하는 것이다. 또한 조금이라도 나의 기분이나 관점과 어긋나는 것 같으면 그것을 적대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분개해서 공격해대는 것으로, 그야말로 反지성적이며 꼴사나운 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출처 https://blog.naver.com/novushomo/221732193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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