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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적이지 않은 언론은 있을 수 없다.
게시물ID : society_574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iidyn(가입:2013-06-24 방문:2480)
추천 : 2
조회수 : 309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20/03/18 18:15:58
언론사들은 기사에 기자의 성향이나 사견이 개입되지 않은 객관적인 보도를 표방하곤 한다.
그러나 객관성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그것은 애초에 불가능 하다.
왜냐하면 어떤 언론사든 먼저 어떤 기사를 준비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텐데
그 근본적인 결정이야말로 사실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실로 기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관적이라 할수 있다. 
기사의 주관성은 수많은 크고작은 사회현상들 중에서 기사화 시키려는 주제를 선택하는 단계에서부터 이미 시작된다. 
그렇게 선택된 기사주제들을 어떤 순서와 비중으로 할애하고 배치를 할 것인지도 주관성에 의해 결정된다.
마지막으로 기사의 주관성은 보도되는 사회현상을 어떻게 평가하고 희망하는지를 표현하는데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기자가 특정 사건을 기사로 쓴다면 그 목적은 
그 사건이 특별히 신경쓸 만한 가치가 있는 중요한 사안임을 대중들에게 인식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사건을 기사로 쓴다는 것은
그 사건은 의미있고 가치있는 것이니 사회적 의제로 상정하여 함께 문제 삼아 보자고 관심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크고 작은 사건들 중에
무었이 특별히 가치가 있는지는 전적으로 (대중이 아닌) 기사를 준비하는 언론사가 하며,
또한 그것은 (객관적인 것이 아닌) 지극히 주관성이 개입되는 작업이다.

기사의 객관성을 논할때 주로 기사의 내용이나 용어선택, 용어 표현 방식, 감정성 등에 주로 집중하다 보니
그리하여 기자의 사건에 대한 인식, 사건에 대한 맥락적 접근 방식등을 통해 독자들에게 제안하는 사건에 대한 해석 방식에 집중하다 보니 
(놀랍게도 이런것들을 통해 마음만 먹으면 사실들만으로도 얼마든지 쉽게 진실을 왜곡할 수 있다. 그리고 왜곡과 왜곡이 만나면 같은 현상을 두고도 서로 상반된 해석을 내릴수도 있다.) 
정작 기사의 주제 자체의 중대성을 간과하기 쉬운데, 기사의 주제선정이야 말로 가장 주관적인 행위라 할수 있다.  
기사의 내용 자체가 아무리 편향되지 않게, 감정적이지 않게 기계적이고 중립적으로 정확하게 작성되더라도
그 사건을 사회적으로 부각시키고 환기시키는 행위 그 자체야 말로 기사의 가장 본질적인 주관성이라 할수 있다.
기사의 주관성을 논하고자 한다면 기사의 내용 뿐 아니라 기사의 주제에도 주목해야만 하는 것이다.
기사의 내용이 정확하고 객관적이기만 하다고 다 객관적인 기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언론사가 기사를 통해 사회적 의제를 상정하는 방식만 가지고도 여론을 호도하고 왜곡하고 선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는 허다하다.
예컨데 게시판에 몇 십만이 청원해도 자신의 주관과 상반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문제삼지 않고 조명하지 않고 아무것도 아닌 일인양 하루만 지나도 없었던 일처럼 뭍어 버리는 반면,
게시판에 몇 천명만 청원해도 자신의 주관에 부합되는 사안이라면 굳이 중요하게 기사화 시켜 문제삼으며 논란을 제기하는 것이 그 중 하나이다.
또다른 예를들면 어느 언론사에서 특정 정치인이 퇴근길에 차선위반을 했다는 기사를 썻다고 치자.
그러면 그 내용이 아무리 객관적이고 기계적으로 서술되었다 하더라도 사실 이 기사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정치인이 아닌 특정 정치인의 운전행위, 그것도 일회적인 것일수도 있는 운전행위라면
그래서 그것이 일반적으로 특별한 의미가 없는 사건이라면, 대단한 주관성이고 특별한 철학이 개입되지 않고는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정치인에 적대적이었던 사람에게라면, 그래서 그 정치인의 조그마한 흠이라도 찾아서 들쑤시고 싶은 사람에게라면
이 사건은 특별히 신경쓸 만한 가치가 있는 중요한 사안이기 맞기 때문에 이 기사는 대단히 객관적으로 보일수도 있겠다.) 

뉴스의 주관성은 특정 사건을 기사화 하지 않음으로써도 발휘된다.
특정사건을 기사화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사건은 특별히 알리거나 신경쓸 만한 가치가 없는 사소한 사안으로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어느 언론사에서 특정 정치인이 저지른 음주살인뺑소니 사건을 하나도 보도하지 않았다고 치자.
그러면 아무내용도 서술하지 않았더라도 이 기사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유력한 공인의 패륜적 법법행위라는 일반적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는 사건이라면 
대단한 주관성이고 특별한 철학이 개입되지 않고는 가치를 못 느끼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정치인에 우호적이었던 사람에게라면, 그래서 그 정치인의 좋은 모습만을 기대하는 사람에게라면
이 사건은 특별히 신경쓸 만한 가치가 없는 중요한 사안으로 보이지 않을수도 있게 때문에 해당 언론사는 대단히 객관적으로 보일수도 있겠다.) 
기사의 객관성을 논한다면 기사를 볼때 어떻게 써 놓는지와 함께 왜 이런걸 써 놓았는지, 왜 이 사건은 다루지 않는지도 먼저 따져 보아야 한다.
왜 이사안을 함께 문제 삼아보자고 관심을 유도하는지, 왜 이 사안은 문제 삼지 않으려 하는지 말이다..

사실 언론사에게 주관성은 흠이 아니다.
왜냐하면 "주관적이다" 라는 것이 곧 "공정하지 않거나 일관적이지 않다" 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언론사에게 주관성은 오히려 미덕일 수도 있다.
언론사에게 주관성이라면 그것은 이데올로기이고 철학이고 신념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언론사가 철저히 객관성을 추구한다면 그 기사는 사실상 아무런 특별한 생각이나 맥락이나 인식이 없는 것이라 해도 무방하다.
실로 언론사가 자신들의 보도 내용을 스스로 객관적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 언론사가 자신들의 생각이 곧 객관적인 진실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오만한 독선 집단이거나
또는 객관성의 의미도 정확히 모르는 헛똑똑이 집단임을 말한다 할수 있겠다.   


재대로된 언론사라면 주관성 보다는 일단은 투명성을 내세워야 할 것이다. 
즉, 우리 언론사에는 어떤 주관(철학, 신념)이 있는데 그것을 진실이라 생각한다. 라 해야 할 것이다.
투명성의 첫걸음은 이렇게 자신의 주관을 솔직하고 투명하고 떳떳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자기 언론사는 그런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며 그런 세상을 유도하는 기사를 쓰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자신의 주관이 정당한 것인지 정당하지 못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독자에게 맞기는 것이다.
공감하면 기사를 소비할 것이고, 공감하지 않으면 소비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언론사가 언론사의 기사를 그 공개한 주관과 일치하게 작성하는 것은 그 둘째이다.  
자신의 주관에 공감하는 독자는 자신의 기사를 소비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독자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주관에 공감하던 사람도 기사를 보고 실망할 수 있고, 공감하지 않던 사람도 어쩌다 자신의 기사를 보고 자신의 주관에 동조할지도 모른다.

이정도만 해도 언론은 제 역할을 어느정도는 하는 것이다. 
예컨데 서민보다는 대기업이 잘되길 바란다는 주관을 가지고 있는 언론사가
자신의 주관성, 편향성을 독자들에게 공개적으로 표방하며 그런 류의 기사를 쓴다면,
또는 특정 정당의 당보 같이 그 언론(?) 자체가 특정 세력의 이로움을 희망하고, 그렇게 되게끔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표방하는 것이라면,
그 기사내용이 편향되거나 비일관적이더라도 충분히 이해될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 기사를 실는 언론사를 좋은 언론사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비양심적이고 부당한 나쁜 언론사로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하다못해 자신의 인식을 정당화 일반화 시키기 위해 그에 부합하는 정보만 선택적이고 감정적으로 제시하더라도 말이다.

문제는 거의 모든 기성 언론사들의 직접적으로 내세우는 주관이 없거나 있더라도 대개 피상적이고 거대 담론적인, 그래서 하나마나 한 것들이다.
그러니 하는 말이 객관성이다. 사실상 자신들의 주관은 곧 진실이라는 오만한 독선이라 할수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거의 모든 기성 언론사들은 자신의 진짜 주관을 사심을 가지고 숨기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미 투명성의 첫 단추부터 틀린셈이다.
문제는 기사를 소비하는 사람들 중 멍청한 사람들은 이런 그 기사를 진리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진짜 주관을 숨긴채 진실 양심을 표방하면서 사실은 숨겨둔 사심 주관대로 기사를 쓰고 있는데
멍청한 소비자들은 그 주관을 진실과 양심에 따른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컨데 어떤 언론사가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나라와 국민이 잘되길 바란다는 생각으로 기사를 쓰는 것을 표방하면서
사실은 대기업이나 언론사 사주를 위하는, 대기업이나 언론사 사주가 잘되게 하는 기사를 쓰는 경우,
나아가 대기업이나 언론사주를 위해서라면 나라나 국민은 손해를 봐도 된다는 생각의 기사를 쓰는 경우, 
멍청한 소비자들은 대기업이나 언론사 사주가 잘되는 것은 곧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것이다 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차라리 대기업을 잘 됬으면 좋겠다, 서민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여당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야당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같은 주관을 
아예 대놓고 표방하며 기사를 쓴다면 적어도 나쁜 언론, 나쁜 기사라는 말은 듣지 않을 테지만
선을 내세우며, 사회 전체의 이로움을 내세우며 사실은 숨은 주관대로 기사를 쓴다면 나쁜 언론, 나쁜 기사라 할수 있다.
그것은 겉으로는 객관, 공정, 신속, 정확, 유용, 선의등 온갖 좋은 것들을 표방하면서
안으로는 선택적으로 의제를 상정하여 현상의 이유를 자신의 주관대로 해석하게끔 왜곡되고 유도하여 암시하는 선동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자신의 주관에 맞는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고 세뇌 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독자들은 자신의 생각과 진실은 멀어지고 자신의 생각은 미래의 예측과 틀려질 가능성이 커진다. 
물론 자신의 예측에서 벗어나는 현상을 우연적이고 일시적이고 왜곡된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다른 맥락으로 해석하거나
자신의 예측과 조금이라도 맞아떨어지는것은 중대하고 필연적이고 항구적인 진실로 받아들이는 정신승리를 통해
자신의 오류에 대한 인정이 그만큼 늦어지거나 아예 거부하는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결론적으로 이런 행태는 멍청한 소비자들을 기만하고 농락하며, 조종하는, 개인으로나 사회로나 대단히 해로운 행태이기 때문이다.

언론의 정당성을 판단하려면 주관의 투명성부터 보장이 되어야 하는데
기성언론들은 자신의 주관을 투명하게 공개하기는 커녕, 자신의 주관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언론사에게 주관은 마치 배척해야 하는 것인양 하면서 자신들은 객관적인 언론인양 오만 독선상태인 것이다.
그러면서 정작 분명히 있을 사심이 찬 진짜 주관은 최대한 은폐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자신의 주관에 진짜 사심이 없다면 은폐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즉, 지금의 자신의 진짜 주관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기성언론은 정당성을 평가받을 준비부터가 안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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