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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술마시고 술칼럼쓰는 학생입니다. 우리술 감홍로예요
게시물ID : soju_3278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긴침묵으로
추천 : 6
조회수 : 1808회
댓글수 : 13개
등록시간 : 2013/08/30 23:54:59


소곡주 댓병과 치킨게임 하다 꽐라 되어 찾은 이후로 두번째 방문하는 술게네요. 

다름이 아니오라, 술마시고 쓰는 술칼럼을 「서울문화투데이」에 연재하고 있거든요. 

희석식 소주나, 말오줌같은 맥주나, 아스파탐을 쳐넣은 장수막걸리같은 '마실 수 있는 알콜' 을 주종의 술로 들이키다 돈생기거든 그저 와인이나 양주 사마시곤 하는 자칭 애주가들의 행태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걸 느끼고서 글을 연재하게 되었어요. 와인이나 양주에 전혀 뒤지지 않는 우리 술들이, 전국 도처에 숨어있는데....

워낙 술을 좋아해서 연재하기 전부터 사촌형이랑  전국의 양조장을 떠돌곤 했는데, 신문방송학과고 연필밥 먹고 살아야겠다 작정한 사람인데 이참에 이걸 칼럼을 써보면 어떨까? 해서 쓰고 있습니다ㅎㅎ

거기다 쓴 감홍로를 옮길게요!


한국인은 세계 상위를 다툴만큼 술 소비가 매우 높다. 남성들의 전유물이라 여겼던 술이 요사이는 남녀 구분없이 ‘희노애락’에 빠지지 않는 중요한 기호로 자리 잡았다. 문제는 술을 마시는 데에 있어, 대부분 같은 주종(酒種)만을 반복해서 마신다는 것이다. 1909년 일제가 주세법을 발효해 우리 술의 제조와 판매를 제한하기 시작한 이후로, 1927년 통합된 곡자제조회사를 통해 일정한 누룩만을 쓰도록 하거나, 1954년 발효된 양곡관리법 등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가양주 문화는 물론 제사를 지낼 때 쓰는 제주 역시 그 뿌리가 뽑히게 되었다. 이렇게 잃어버린 우리 술의 빈자리에 현재는 외국의 술이 들어앉아 대신하고 있다. 

그 덕에 일상적으로 마시는 술이라곤 공장에서 대량생산한, 주정에 물을 섞은 희석식 소주나 아스파탐 등의 합성감미료를 첨가한 막걸리, 맥아가 없다시피 하는 국산 맥주에 불과한 것이다. 혹은 특별한 날에 와인이나 양주, 칵테일을 찾는 것도 안타깝다. 우리 조상들이 명절이나 특별한 날 집집마다 담아내던 가양주 중에 와인이나 양주 등 서양 술에 못지않게 상당한 가치가 높은 것이 많다. 좋은 곡식과 약재 등을 써서 기분을 돋우는 낙주(樂酒)로서 만이 아니라 기운을 북돋우는 약주(藥酒)로서의 기능도 높기 때문이다. 가치 있는 우리의 술들이 전국 도처에 얼마든지 있지만, 대중의 관심과 흥미가 없는 이상 그 술로 '우리의 문화'를 형성할 수가 없다. 하나의 전통을 잃는 것은 그 속에 깃든 철학과 사상을 함께 잃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 술의 가치를 알리고자 본지 <서울문화투데이>는 앞으로 3회에 걸쳐 '우리 술 기행'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얼마전 일산 킨텍스에서 열렸던 '우리 술 대축제'에서 만난 우리 술들은 맛과 향에 있어 시중에서 접하는 값비싼 양주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는데 상당한 흥미를 느꼈다.

여름인 지금, 날씨가 더워 맥주와 같이 차가운 술을 들이키는 경우가 많다. 날씨가 더워지면 모공이 열리고 땀이 쉽게 나는 반면 체내는 차가워지고 있다. 우리의 장기는 몸의 평형을 맞추려 이미 차가워지고 있는데 찬 음식을 계속 먹으면 체내 순환이 제대로 돌지 않고 한(寒)의 침입을 받아 복통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러한 이유에서 자칫 고문헌 속에만 남은 채 사라져버릴 뻔한 우리의 ‘뜨거운’ 술 '감홍로'를 첫 번 째로 소개한다. 

감홍로 양조장은 현재 경기도 파주에 있는 이기숙 명인이 운영하고 있다. 양조장은 더운 여름에는 가동하지 않고 추운 겨울에만 가동한다. 즉 요사이는 쉬고 있다.

조선의 3대 명주중 가장 격이 높은 술  

1946년, 육당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전주의 이강고, 정읍의 죽력고와 함께 평양의 감홍로를 조선 3대의 명주로 뽑았다. 술에도 격이 있는데, 로(露), 고(膏), 춘(春), 주(酒) 의 순서이다. 조선 3대 명주 중 로(露)의 격을 지닌 것은 감홍로뿐이니 그중에서도 감홍로가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겠다. 감홍로의 명성은 육당 최남선이 언급하기 이전에도 실로 대단해서, 별주부전에서는 별주부가 토끼를 꼬드길 때 '용궁에 가면 감홍로가 있다' 고 회유하는 대목이 있다. 또한 평안 감사보다 더 높은 관직을 주려는 제안도 '감홍로 때문에 못 떠난다' 며 거절했다는 평안 감사의 일화도 전해진다. 어디 그뿐인가. 춘향전에서는 춘향이가 이몽룡과 이별하는 장면에 향단이에게 이별주로 감홍로를 가져오라고 하는 대목이 있다. 이는 이별에 대한 순응의 뜻으로 술을 가져오라는 것이 아닌, 이몽룡이 취하게 만들어 이별을 하루라도 늦추려는 여인의 마음이 담겨있는 것이다. 이몽룡을 취하게 만들려는 술답게, 40%의 높은 도수를 자랑한다. 취재 중 감홍로를 살짝 맛만 보았을 뿐인데도 취기가 감돌았다. 첫 맛엔 성질이 활달한 계피향이 강하게 치고 올라왔으나, 곧이어 다른 약재들의 향과 은은한 단맛이 미뢰를 감싸기 시작했다.

   
▲ 화덕식 증류방식을 사용해 술을 내리는 감홍로


속을 따뜻하게 해 막힌 기와 혈을 뚫어줘

감홍로는 용안육, 정향, 진피, 방풍, 계피, 생강, 감초, 지초의 여덟가지 약재가 들어간 약용 소주이다. 이중 용안육, 계피, 감초에서 나는 단맛의 감(甘), 지초가 내는 붉은 빛의 홍(紅)을 써 술의 이름이 감홍로이다. 궁중에서 발생한 병이 약을 끓일 만큼의 시간도 없이 촌각을 다투는 위급한 상황일 때 약 대신 급히 감홍로를 처방하곤 했다. 본래 대다수의 술은 체온을 높이는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내장 기관을 냉하게 만든다. 그러나 감홍로의 경우 약재의 성분이 속을 따뜻하게 만들어 막혀있던 기와 혈을 뚫어준다. 한의학에서는 내장기관에 암이 생기는 것은 냉한 기운이 뭉쳐있기 때문이라고 보는데, 그러한 이유로 감홍로가 암을 치료하는 데에 쓰이기도 했다는 견해도 있다. 또한 2010년 5월에 발간된 한국식품영양과학회지에서 감홍로주 제조에 사용하는 약재 침출액들의 항산화 작용에 대해 다루었을 만큼 약리작용이 뛰어난 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마터면 남한에서 사라질 뻔해

감홍로는 문배술과 함께 평양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던 술이다. 6.25 전쟁 때, 평양에서 문배술 양조장을 하던 故이경찬 옹이 월남함에 따라 감홍로와 문배술의 기법이 들어왔다. 그러나 1954년, 정부는 귀한 쌀로 더 이상 술을 빚지 못하게 금지하는 양곡관리법을 시행함에 따라 우리나라의 가양주 문화는 쇠퇴기를 맞이한다. 이러한 와중에도 故이경찬 옹은 몰래 감홍로와 문배술을 빚어 전통을 지켜왔다. 지금에야 에어컨과 보일러 등으로 얼마든지 실내 온도 조절을 할 수 있지만, 그러한 온도 조절 시스템이 없던 옛날 故이경찬 옹은 술항아리 옆에서 쪽잠을 자면서 술맛을 지켰다고 한다. 너무 온도가 높아 발효되는 속도가 빨라지면 재빨리 물을 뿌리고 환기를 시켜 온도를 낮춰야 했고, 너무 온도가 낮아 발효가 잘 진행되지 않는 것 같으면 군불을 지피거나 이불 등을 감싸 온도를 높여야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대면하면 온화하고 자상해서 참 좋은 사람이었지만, 술 만들 때면 너무나 엄격하고 까다로워서 무서웠다’ 고 이기숙 명인은 회상한다. 덧붙여 ‘그러나 으레 장인들이 그러하듯, 자신의 술을 만들면서 당신은 시름을 잊으셨던 것 같다’ 라고 말한다.

술에 대한 이러한 지극정성으로 30년이 넘는 세월을 보낸 끝에, 마침내 故 이경찬 옹은 대한민국 최초 술 관련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었다. 故 이경찬 옹은 큰아들 이기춘 씨에게는 문배술을, 작은 아들 이기양씨에게는 감홍로 제조 기법을 전수하였다. 그러한 이유로 故 이경찬 옹이 사망한 후, 두 아들은 각각 무형문화재와 식품 명인이 되었다. 술을 남자가 만들도록 하는 전통에 따른 아버지의 뜻에 셋째 딸 이기숙씨는 아버지께 감홍로를 빚는 방법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가정 주부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0년 감홍로 명인이던 둘째 이기양씨가 당뇨로 세상을 떠나자, 셋째 이기숙씨가 전통을 잇기로 결심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이기숙씨가 12년만에야 식품 명인에 지정되었으니, 하마터면 조선의 3대 명주 중 하나가 역사 속에서 사라질 뻔한 셈이다.

   
▲ 감홍로 명인 이기숙씨가 술을 빚기 위해 술밥을 만들고 있다.


이기숙 명인의 감홍로,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은 철학

이기숙 명인은 술을 빚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버지(故 이경찬 옹)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인간문화재로 등재되기까지의 30년 동안, 아버지와 함께 술을 빚으며 보아온 아버지의 눈물과 고통이 지금에서 새로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왜 술항아리 옆에서 쪽잠을 자야 하는지, 왜 그토록 자상한 아버지가 술을 빚을 때만 엄하고 무서운 모습이었는지 그때는 몰랐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 밖으로 나와 술을 빚기 시작한 이기숙 명인은 왜 아버지가 그토록 예민하고 무서웠는지 십분 이해한다고 말한다.

   
▲ 백화점 등에서 시판중인 감홍로
아버지는 당신의 아버지께 인정받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한 이유로 그(故 이경찬 옹)는 “네가 만든 술이 최고다. 네가 만든 술이 제일 맛있다.” 는 소리를 들으려 종일 그의 아버지 곁에서 술시중을 들었다. 이기숙 명인은 당신의 아버지께 최고의 술을 드리고 싶었다는 故 이경찬 옹의 그 마음을 이어받아 고객에게 최고의 가치를 선사하고자 한다. 이기숙 명인은 고객에게 감홍로 주문 전화가 들어오면, 먼저 술을 보낸 뒤 후불로 돈을 받는다. 혹여 술이 입에 맞지 않는다면 술을 다시 돌려보내고, 입금치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기숙 명인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감압식 증류기를 사용하는 다른 양조장과는 달리, 연료비가 많이 드는 화덕식 증류기를 사용한다. 직화 방식인 소줏고리와 가장 유사한 방식이 화덕식 증류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기숙 명인은 후계자 양성에 항상 전전긍긍하는데, 최고의 술을 선사하고자 하는 그 마음이 후계자에 전달되지 않는다면 문화는 다 사라지고 이름만 남은 감홍로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전달받아서일까, 취재를 다 마치고 나서도 오래 전에 마신 감홍로의 잔향이 입에 남아있었다.

현재 감홍로 양조장은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하고 있으며 빚어진 술은 백화점 등에서 판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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