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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디뮤지션의 f(x) electric shock 리뷰
게시물ID : star_5161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샤이Ω
추천 : 14
조회수 : 2628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2/06/24 16:56:01
http://verymimyo.egloos.com/5646158

1. Electric Shock
2. 제트별 (Jet)
3. 지그재그 (Zig Zag)
4. Beautiful Stranger
5. Love Hate
6. 훌쩍 (Let's Try)

SM Entertainment, 2012.06.13.

1.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이것이 한국 일렉트로닉의 미래.

2. f(x)는 많은 면에서 이질적인 존재다. 우선 결국 예쁘장하고 착한 소녀의 이미지를 소비하게 하는 다른 걸그룹들과는 이미지가 조금 다르다. 원더걸스와 소녀시대의 데뷔 시절에 유명 평론가 변희재 씨가 "이건 페도필이 아님, 순수한 삼촌의 마음임."이라고 하셨다가 비판에 직면하신 바 있다. 섹시함을 강조하는 것에 열광하면서도 "섹시해서 좋아하는 게 아니야"라는 눈가리고 아웅이 적어도 걸그룹의 세계를 견인하는 원동력의 하나임은 부인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f(x)는 무대에서 자기들끼리 재밌게 노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것으로 어필할 뿐 섹스어필이 없다는 글을 읽은 적도 있는데, 여기에는 반 정도만 동의하는 편이다. 중요한 포인트마다 하체의 라인을 강조하는 안무가 등장하고, 결코 낮지 않은 빈도로 롤리타적 이미지도 보여주는데 섹스어필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만 f(x)는 섹스어필에 관해서는 분명 뭔가 다른 부분이 있다. 이를테면 내 경우에는 사실 f(x) 내에서 캐릭터적으로 애착을 갖게 되는 멤버가 없는데, 그럼에도 그룹 전체에 대해서 이만큼의 애정을 가져보게 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뭐라 정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내 귓가의 (가상) 애인" 개념을 출발점으로 삼는 아이돌 전략에서 f(x)가 상당히 특이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것은 앰버의 이미지와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아이돌팝의 열성적 소비 계층은 늘 뉴타입 혹은 뉴휴먼을 기다린다.)

음반의 패키지를 제외한 디스크 안에 담기는 내용물만 놓고 보아도 많은 차이가 있다. 아이돌팝이 작가가요보다 혹은 90년대 가요보다 수준이 떨어진다는 인식체계는 아이돌팝의 다양한 면모들을 결정지어 왔는데, 가창력을 비난하면 무리한 고음을 집어넣고 "댄스음악 일변도" 카드를 꺼내면 발라드를 집어넣는 등이 그 예가 되겠다. 그런데 가사의 질적 하락이 아이돌팝에 대한 대표적 마타도어인 시기에 f(x)는 평론가들이 "난해하다"는 형용사를 동원하게 할 정도로 이질적인 가사로 일관했다. 다른 기획사 혹은 그룹들이 "모두를 (약간은) 만족시키기" 위해 맥락 없는 백화점식 앨범을 쏟아내는 동안 f(x)는 전작 <피노키오 (2011)>에서 거의 일관된 댄스팝을 기조로 앨범으로서의 완결성을 추구했다. (그 이전의 EP들은 내가 음반으로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3. 그리고 이제 새 EP <Electric Shock>가 발표됐다. 어필 포인트 이야기를 했지만, f(x)는 어느 정도 업리프팅으로 일관하는 그룹이다. f(x)의 개성으로 논의되곤 하는 화려함이나 황당함은 전부 그 맥락에서 비롯된다. 전작에서 "피노키오"-"빙그르"-"Dangerous"까지, 오프닝부터 연달아서 가장 강렬한 트랙들을 타이트하게 배치한 것도, 리패키지 판에서 "Hot Summer"를 1번으로 넣고, 새 트랙인 4번으로 살짝 톤다운을 했을 뿐 3번 트랙까지 몰아붙이던 것도 역시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번엔 6곡짜리 EP에서 1번부터 5번까지 전부 강렬한 튠들이고, 6번도 따로 떼어놓고 보면 딱히 사람을 쉬게 해주는 트랙이 아니다. 그런 업리프팅의 연속이 음반 전체에 무척이나 밀도 높은 짜임새를 부여한다. EP는 보통 중요한 곡을 중심으로 조직되어도 용인되고도 남는데도. 더구나 SM 발매반 기준으로는 굉장히 타이트한 편이다. 6번을 중간에 배치하지 않고 마지막으로 넣은 것은 부담스러울 수 있는 선택임에도 결국 더없이 적합한 배치가 되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전체적인 흐름을 고려한 각 곡의 조직(혹은 선택)과도 관련될 것이다.

첫 트랙 "Electric Shock"는 처음부터 강렬하게 쏘아대면서 질주감을 주지만, 주기적으로 호흡을 잡아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채널들을 필터로 눌러버린다든가, 반주가 빠져버린다든가. 그러면서도 필터 프리퀀시를 서서히 올리며 상승감을 부여하는 등, 곡의 사운드적 다이내믹을 다양하게 바꿔가면서도 일관된 속도감을 준다. 오밀조밀하게 편성한 "제트별"(Kenzie)도 묵직한 파트와 시원하게 터뜨리는 파트를 크게 대조하며 호흡을 주고, "지그재그"(히치하이커)는 A-B-C 구조를 비교적 충실하게 따르면서 빌드업 해나간다. "Beautiful Stranger"는 비교적 느린 템포인데 16비트로 달리는 신스가 속도감을 주고, "Love Hate"는,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f(x)라면 훨씬 더 까불 수 있음에도, 코러스 직전까지의 보컬이 거의 무미건조하게 진행함으로써 "뭐 이딴 게 있어"라는 소리침을 확 살아나게 한다. "훌쩍"은 여러 가지로 양념을 넣어 전체적인 색채감을 화려하게 유지하면서 비교적 느긋하게 디스크를 마무리한다.

4. 6곡을 통틀어 나오는 보컬의 고음은 높은 A(...)가 한번("제트별") 나오고 D가 한번 나오는 것을 제외하면 C가 가장 높다. 무슨 브릭월 리미터로 누르기라도 한 것처럼 ㅎ 정확하게 딱 C까지만 나온다는 점도 흥미롭다. C 정도면 보통의 걸그룹의 곡에서 비교적 고음에 속하기는 하지만, 막 으악 소리 나오는, "봐라, 나 고음 지른다"하는 고음은 아니다.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찍어줄 수 있는 정도의 음정이다. 게다가 가성 섞어 나오는 부분도 많은 등, 적어도 한두 번은 리드 보컬리스트의 고음 열창을 넣어주는 SM의 음반들의 성향을 보기 좋게 벗어난다. 앞서 말한 A나 D도 2번 트랙의 하일라이트에서 한번 등장하는 것인데, 고음을 강조하기 위해 전면에 확 튀어나오게 잡은 D, E와는 질감 자체가 다르게 뒤로 빼면서 사라지고, 얼핏 들으면 리드신스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 EP의 기획은 20살 언저리의 보컬리스트들의 성대를 혹사시켜 가면서까지 가창력을 입증하고자 하는 욕망을 내려놓은 것으로 보인다. 80-90년대의 실력 기준을 억지로 따르지 않아도 f(x)는 음악적 승부를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라 한다면 너무 과장일지 모르겠지만, 같은 소속사의 기존 음반들과 선명하게 차별화되는 부분인 점만은 분명하다.

5. 개인적으로 f(x)의 하드코어 팬은 아닌 관계로 멤버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구별하진 못한다. 또, 같은 이유로 전작까지는 앰버의 목소리가 종종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EP에서는 곳곳에서 앰버의 목소리를 더 폭넓게 활용하고자 하는 의욕이 돋보인다. 전체적으로 노래와 랩, 말하는 목소리의 경계를 (기존에 비해서도 더욱 더) 문질러버린 부분이 많다. 결과적으로 "Beautiful Stranger"를 제외하면 "여기까지 노래였고, 자, 이제부터 앰버가 랩합니다."하는 느낌이 훨씬 적어졌다. 전체적인 조율을 통해 앰버와 다른 멤버들의 파트에 괴리감을 덜어낸 것이다. 또한, "훌쩍"에서는 피치쉬프트를 악보로 옮긴 듯한 연출을 선보이기도 한다. 앰버 본인이 자신의 포지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번 EP 이후의 f(x) 음반에서 앰버가 할 수 있는 역할의 폭은 크게 넓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SM이 퀄리티 높은 아이돌팝을 지향한다는 점은 기정사실에 가깝지만, 멤버들의 보컬리스트로서의 가능성을 계속해서 찾아나가려 한다는 점은 무척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소녀시대의 음반에서도 수영이나 써니의 보컬에 독특한 연출을 부여해 각자의 컬러를 잡아나가지 않나. 아이돌에게 아티스트의 길을 열어주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록을 비벼 넣거나 무리한 고음을 연발하게 한다든지, 뮤지컬 출연, 솔로 싱글 취입 등. 그러나 그런, 꼼수에 가까운 방법들에 비해, 개성 있는 보컬리스트로서의 지평을 넓혀주는 것은 얼마나 감탄 나오게 건강한가.

6. 이건 f(x)만이 내놓을 수 있는 음반일지 모른다. (조증을 연상케 할 정도로) 업리프팅으로 일관하는 컨셉트의 그룹이기 때문에, 오히려 댄스음악의 맥락 속에서 음악적 집중도가 더 높아질 수 있는 것인지도. 타이틀곡 "Electric Shock"의 짜릿짜릿함을 차치하고라도, 간만에 하고 싶은 걸 다 하는 듯한 Kenzie의 "제트별"이라든지, "지그재그"의 참신한 퍼쿠션 질감도, 대중이 "어, f(x)는 원래 좀 희한한 애들이니까."라며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들일 것이다. 요컨대 아이돌팝이 감내해야 하는 한계들을, 세심한 조율을 통하면, 비껴나갈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 있는 부분이 f(x)에게는 있다.

웰메이드를 지향하는 만큼 SM에는 음악적으로 보수적인 부분이 다소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f(x)는 그 와중에서도 예전부터 보컬의 연출이 과격한 편이었고, 이는 "괜찮아, 얘네는 f(x)니까."라는 자신감 혹은 용인에서 비롯되었다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번 EP에서는 그것이 자신감이라는 점을 확인하며 음악적인 성장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그러면서도 음반으로서의 완결성까지 충실하게 갖추고 있다니 이건 뭐... "다 이루었다."

7. "의사 선생님, 이거 뭔가요" - "이이이이 이것이 한국 일렉트로닉의 미래."

라는 것은 아주 조금은 농담이고. 적어도 케이팝이라 불리는 범주에서 이 음반에 대한 대안은 존재할 수 없다. f(x)는 케이팝 혹은 한국 아이돌팝의 역사에 매번 이정표를 놓고 있다. 내 음반이랑 발매일이 겹쳐서 헐.. 했는데, 이런 음반이 상대라면 막 엉망진창으로 난도질 당해도 좋아...... 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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