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아주 많이 듣고 보았지만 실제로 읽진 않았다. 어릴 땐 제인에어와 한여름 밤의 꿈, 리어왕, 키다리아저씨를 읽느라. 커서는 각종 에세이와 그림책을 읽느라. 기회는 많았지만 굳이 볼 마음도 없었다.
하지만 늘 상상 했다.
거칠게 깎아내려진 절벽 위에 나무산장이 외로이 구름 속에 가라 앉아 있고, 건조한 모래 언덕을 비집고 나온 듬성듬성한 잡초들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두 연인. 그들의 어깨 너머로 시커먼 먹구름들이 떼로 몰려오고 있겠지. 둘은 어쩌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굳은 자세 그대로 비를 맞을지도 모른다. 같은.
- 폭풍이 한 차례 나를 치고 지나갔다. 평소처럼 조용한 폭풍이었다. 나만 맞고 있으면 아무도 모를 그런.
나는 '비운의 무엇' 이 되는 걸 좋아했다. 관심과 동정, 위로 그리고 약간의 애정. 그걸 받기 위해선 내가 아플 수 밖에 없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했다.
자해는 또 다른 자해를 낳는다. 나의 자해는 물리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덤덤히 상처를 낼 때는 혼자가 아니었다. 너무 아파 울음이 나오면 그제서야 나는 혼자가 되었다. 상처를 내보이는 건 상관 없었지만 눈물은 숨기고 싶었다. 내 티끌 같은 자존심이 허락하는 마지노선이었다.
눈물은 느닷없이 쏟아진다. 방심한 탓에 깨져버린 독은 수습이 어려웠다. 그걸 그 사람이 보았다.
중요한건 그 사람이 웃었다는 사실이다.
비웃음이나 동정 어린 웃음이 아닌 말 그대로 순수한 웃음이었다. 그는 소매를 내밀며 귀엽네 라고 말했다. 나는, 넌 아무것도 몰라서 그래 라며 덜컥 화부터 냈다. 나는 그가 엉성하게 씌인 껍데기 너머 시야로 오만을 부린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갑작스런 울음과 황당한 웃음은 그 뒤로도 계속 되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우는 법을 배우는 중이고 그는 여전히 순수하게 웃는다. 하지만 아직 많은 습관과 상처가 남아있고 그가 언제까지 곁에서 웃음을 줄지 확신할 수 없다.
여전히 혼자인 시간이 훨씬 많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그 기억이 나를 폭풍 속에서 살려낼지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