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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today_5704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POCULASACRA
추천 : 5
조회수 : 14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4/24 04:44:56

늦은 오후에 친구들과 들른 까페에서 한 외국 사람을 만났다. 마주친 건지 어쨌든.
보아하니 그 사람, 까페 손님은 아니고 단지 지나가던 길이었던 듯. 

길을 묻는데 태도가 좀 그렇다.

무표정한 얼굴로 다가와서는 영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물었다.
확신은 없었기에 조금 할 줄 안다고 하였고,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대뜸 어떤 팸플릿을 내게 내밀었고 두 가지 똑같은 팸플릿이 하나는 영어로, 하나는 한국어로 되어 있었다.
여기로 '걸어서' 가려고 하는데 길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여긴 한국 사람에게도 말로 표현하기 어렵고 걷기엔 조금 먼 위치라서 잠시 난처해하며 뜸을 들이고 있는데 재차 독촉을 한다.
영어 잘 구사하는 사람 있느냐고. 우리는 이미 여기서부터 이 사람이 주는 난처함을 익숙하게 받아들여가는 중이었다.

말로 설명했더니 뚱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며 그래서 어떻게 가야 하느냐고 설명을 해달라고 한다. '?'. 난 여태 어떻게 가는지를 설명한 건데.
무슨 상황인지 감이 잘 안 잡힌다. 다시금 말로 보다 자세하게 설명을 한다 해도, 지역을 모르는 그에게는 어떤 설명인들 난처하지 않으리.
그 사람이 가야 할 길을 영수증 뒷면까지 활용해 알아보기 쉽도록 간략하게 그리고서 재차 설명을 하였더니, 길을 꺾고 변경할 때마다 여기가 여기인지 자기가 어떻게 아느냔다. (내적 심호흡)

'여기로 가면 뭐가 보일 것이고 여기로 가면 뭐가 보인다.'를 다 설명한 상황에서 그가 한 말이 저 말이라면 난 이제 뭐라고 말을 잇지?
그래도 여기까지는 타지에서 먼 길 했을 그 사람을 생각하면서 최대한까지는 아니더라도 적당량의 인내를 소모하면서 상황을 '버티'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는 관광객이고, 근처 지도 한 장쯤은 들고 다니겠지 싶어서 어떤 지도 같은 것 없냐고 물었더니.
그는 우리 테이블 한가득 그가 가진 '시 전체' 지도를 펼쳐 보이며, 이건 시 전체 지도이고, 이것밖에 없다고 말한다.

내가 생각이 짧았다. 
괜한 걸 물은 것 같아요. 보다 못한 친구가 인터넷 지도를 찾아줘야겠다고 생각하고 휴대폰으로 인터넷 사용이 가능한지 물었다.
와이파이를 잡았을 때에만 인터넷을 이용 가능한 휴대폰을 지닌 그 사람에게 까페 와이파이를 잡아서 구글 지도를 캡쳐해주고자 했던 내 친구는 장렬하게 그에게서 '뺀찌'를 먹었다. 그 사람은 '영어'로 된 구글 지도를 원했는데 내 친구가 한국어로 된 지도를 찾아줬기 때문이었다. 그는 내심 성가셨는지, 휴대폰에 손을 일절 대지 않은 채, 구글 지도를 끄고 싶다고 했다. 끄시면 되는데 우리한테 꺼 달라고 한 건가? 뭐 암튼 어렵진 않으니 꺼 드렸다.
브라우저를 닫고 나니 휴대폰 메인이 떴는데 그 사람은 메인에 상주하는 구글 서치바 위젯도 함께 끄고 싶어했다. 브라우저처럼은 못 끈다고 해줬다. 다른 설정이 필요해요. 이 정도라면 브라우저를 스스로 못 끄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아직도 엄청난 난관에 정면으로 부딪혀 있는 상황. 

그 오랜 사투의 끝에도 해결책을 찾지 못했으니까. 언짢음만 서로 배가되고 있는 중에, 따로 잠시 자리를 옮겨 이어진 대화는 차라리 이어지지 말았더라면 서로의 저녁이 보다 안녕했으려나. 

환기를 위해,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알고 싶다는 말을 건네면서, 지금 여기로 가려는 목적이 무엇인지도 함께 물었다.
그 사람은 자신이 유럽의 많은 나라들 중 한 나라 사람이라고 말을 하면서 책자에 멋진 곳이라고 소개되어 있어 가려고 하지 왜 묻느냐는 느낌적인 느낌으로 내게 대답했다. 그가 잠시 떠나 왔을 그의 나라는 차마, 이 글을 읽을 불특정한 사람들에게서 어떤 무고한 손상이라도 안게 될까 봐서 여기서 밝힐 수는 없다.

오지랖으로 이 사람 더 성가시게 했나보다. 암튼, 그의 나라에 대한 내가 아는 사실들을 적당히 꺼내 보면서 나름 '너와, 나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 보려고도 시도했는데 그 사람이 받아친 반응은 나를 기어이 본격적인 빡침의 세계로 몰아넣고야 말았다. 자신의 나라 국민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어를 잘 구사하는데 왜 여기 사람들은 영어를 그렇게 잘하지 못하냐고, 만나 본 사람들이 하나같이 다 영어를 잘하지 못했다고 푸념인지 하소연인지 짜증인지 모를,(2차 내적 심호흡), 말을 줄줄 늘어놓았다. 일단은 그럼에도 나는 그가 겪고 있을 불편에 대한 애석함을 드러내면서 뚜렷하게 도움 주지 못해 안타깝다는 말로 시작해서 다시 좋은 대화,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보려고 애쓰는데, 자기가 오늘 하루 종일 굉장히 엉망이었다고 얘기하면서 다시금 그 이유들 속에 한국인들이 영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는 점 등을 들었다. (Pause). 물론 들으니 속상할 만도 한 일들이 많아서 애석하다고 말해줬다. 오후 한 시부터 여덟 시까지라던 플리마켓이 털끝만큼도 안 보였다고, 그래서 그냥 허탕치고 돌아왔다고 말을 하는데 맙소사, 그 플리마켓이 열리는 곳이 그가 가고자 설명을 부탁요구한 바로 그 장소! (A HUGE pause).

잠시 그 사람의 눈동자를 한 1.3초 정도, 지긋하게 쳐다보다가, 플리마켓이 열리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가 당신이 가고자 하는 그곳인데, 혹시 여기서 온 거냐고.

안타까웠다. 길었을 하루, 힘든 여정에 '힘들었던' 혹은 '빡친' 일정 하나가 추가된 셈이니까.

와, 이 감정 진짜 복합적이다. 이 사람이 무척이나 안타깝고 안쓰러우면서도, 그렇지 않으면서도, 우리도 무척이나 안쓰럽고 안타까워.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지금 가려는 그곳이 물론 책자에는 븨유리풀하다고 적혀 있어도, 실제로는 딱히 뭐 별로 권하고 싶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는 로컬러로서의 정직한 평을 하였더니 아무래도 밤보다는 낮이 낫냐고 물었다. 아마도 그럴 거라고 대답했고, 그 사람은 다시금, 밤이고 하니 내일 낮에 다른 일정을 갖는 게 나을 건지 갈등했다. 앞에 펼쳐진 지도를 보고 여기도 괜찮은 곳이라고 다른 몇몇 곳들을 소개해주는데, 생각보다 소개할 곳도 없다. 이것, 좀 다른 의미로 화가 나는걸. 

끝으로 그는 지하철 막차가 언젠지 물었고, 목적지별로 다르다는 말과 함께 나는 그의 목적지로 가는 막차 시간을 찾아주었다. 
내일은 그 어느 날보다도 행운으로 가득한 날이 되길 빈다는 인사도 함께 건네면서.
그는 도와주려 애쓴 마음 안다고 하면서도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은 것 같다. 

그가 없는 자리에서 이런 얘길 한다는 게 못내 마음에 걸리긴 해도 난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람은 자기가 자기 복을 번다는 것.

애써 웃을 걸 강요할 순 없어도, 낯선 땅에서 그곳 사람들에게 길 한번 물으면서 웃어보이는 게 그렇게 어려웠는지, 그 사람은 애초에 웃는 얼굴로 다가오지 않았고 언짢음을 풍기며 왔다. 그리고 당당했다. 해당 언어를 구사하지 않는 땅에 와서 그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 나오라고, 멸시인지 조롱인지 분간하기 힘든 모호한 느낌으로. 멀리 여행 와서 고생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사람을 돕고자 한 마음이 괜한 짓 정도로 전락하기 쉽게 만든 점, 말도 안 되는 것들을 당연하게 요구한 점 등. 주변을 볼 때, 불만이 남들보다 적어도 몇 가지는 더 있기 좋은 조건이다 싶었다. 

자신이 온 나라를 포함한 유럽과는 달리, 여기는 아시아이고, 아예 다른 어족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
물론 유럽이라고 서로 말 다 알아듣는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언어도 많고, 서로 어근을 공유하는 무리가 있어 상대적으로 영어 습득에 쉬운 조건이 형성되어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다고 본다. 느낌으로 따지자면 이랬다. 일본어를 적당히 구사하는 한국인이 유럽에 가서 당신들 왜 이렇게 일본어를 잘하는 사람이 없냐고 푸념하는 느낌. 영어가 세계 공용어라는 사실을 잠시 빼자면 그렇다는 거다.
세계 공용어라고는 해도 의무는 아니고, 앞서 말한 것처럼 습득 조건이 애초에 달라 그렇게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땅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한국 사람들 영어 교육에 어떤 이바지를 하신 거라도 있으신지, 무척이나 당당했다. 관광도 사업이라니까, 관광 사업을 소비자로서 이용하는데 서비스가 미흡해 불만이 쌓인 거라면 이해가 가능할 것도 같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지녔던 태도들까지도 이해가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친구들과 나는 한참이나 어이가 없어 마른 웃음을 툴툴 흘리며 시간을 청산해갔다. 개중 하나가 쫑알쫑알 너무 귀엽게도 화를 내는 바람에 한껏 웃어버려 그 시간 덜 무겁게 날 수 있었다.

아주 여러가지 생각이 든 밤이었다. 지금도 여러가지 생각을 한다.

출처 그 사람이 구사하는 영어도 유창한 영어는 아니었다. 왠지 속상한 밤이다. 속상한 이유는 물론, 몹시 복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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