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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있음만 못한 상태.
게시물ID : today_573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POCULASACRA
추천 : 7
조회수 : 13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5/22 16:58:36
죽어있음은 숭고하기라도 하다.

그에겐 죽어있다는 명분이 있으므로,
그가 (할 수만 있다면) 하는 모든 것은,
숭고하다.

적어도 숭고함으로 포장은 된다.

나는 어떤가,
살아있다는 말을 이토록 더럽히며 부끄럽게 만드는 나는 어떤가,
물론 내 의지와는 상관 없는 일이다.

나는 어디에선가 얻어맞고 내가 견딜 수 없는 것들을 견딜 수 있는 것이라 잘못 믿으며 지내 온 오만과 오판의 처절한 결과로서 지금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물었던 물음들은 더 물어질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오늘 나에게 다시 물었다.
나는 어디서부터 뭐가 어떻게 된 걸까?

사람을 섣부르게 경계하고 어쩌면 미워하기까지 하는 이 기능적인 결함은 어디에서부터 나인 것처럼 무럭무럭 자라왔을까? 이제는 모르겠다는 게 내 대답이다.
만약에 치료를 받으러 가서 이것, 저것을 얘기하다가 '나'라고 알고, 믿고 지내 온 것들이, 사실은 나에게 기생했던 해악한 것들이라는 결론이 난다면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또, 받아들일 것인가.
또 만약에, 그것이 너무도 오래되어 어쩌면, 엉겁결에 자라던 위에 새로 자라고 합쳐져 버린 요상한 나뭇가지나 나뭇잎 같은 모양새로 정말이지 내가 되어 있는 거라면?

떼어내고 싶어도 이제 그곳으로도 내 생명이 흘러서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나는 그럼에도 그것들을 떼어내려는 시도라도 해서 이 궁창을, 환멸스러운 자리를 빠져나가려는 의지와 노력을 지고의 삶에게 보여야 하는가.

숭배해 마지않던 삶 그 자체.
나는 늘 그것이 경이롭다 얘기했다.
산다는 것은 늘 놀라움이었다.
어떤 기전에 의해서건 나는 지금 살아있음의 정반대편에 선 모양새를 하고서는 살아있음 쪽에 서 있다.

머리의 이해력이 아무 의미도 없을 때.
내 기분이 이런 것은 신경 전달 물질이 비정상적이라서, 라는 애써 무언지도 모르게 잃어버린 무언가를 되찾아 보려는 같잖은 노력이, 원래 그러하기로 했던 것처럼 도무지 들어먹지 않을 때.

잠이 쏟아지는데 깨질 듯한 머리로 잠도 들 수 없고, 제대로 된 생각은 애초에 멈춰버린 지가 오랜 것 같다.

한창 아름답던 파스텔의 철쭉이 때가 지나 다 시들어 버린 것을 보았다. 
차라리 때가 지나 시들었다는 명분이라도 있었으면 덜 서러웠겠다.
나의 때는 오지도 않았는데 시들다 못해 죽어 있다.
살아 있지를 못하다.

가상의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하소연을 해보았다.
죽고 싶은 건 아닌데, 살기가 싫다고 했다.
정확히 내가 바라는 게 죽음이 아니어서, 죽고 싶은 건 아니라고 했다.
어떻게든 살 수만 있다면 살고 싶다고 얘기할 것이라고 나는 나에게 말을 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일을 하다가 문득 지나가던 동료 둘을 붙잡고 손을 잡아 달라고 했다. 너무 힘들다고 했다.
오전부터 같이 일하던, 평소 나눈 대화로 나를 조금은 더 알고 있는 한 동료는 내 오른손을 꼭 잡아주었고, 두 눈이 휘둥그레져 무슨 일이냐고 놀라 묻는 맘씨 착한 다른 한 동료는 나의 왼손을 그의 두 손으로 꼭 감싸며 잡아주었다.

이들의 이런 베풂만으로도 나는 살아갈 충분한 가치가 있음을 확신하여 조금만 더 용기를 내면 좋을 텐데, 내 믿음과 결심 같은 것들을 머리와 마음 사이에서 가당치도 않은 어떤 것들이 떡하니 가로막고 버티는 느낌이다.

너무도 고마운 은혜를 이렇게 입고도 세상에서 나 혼자 다 이렇게 힘든 것처럼 있는 상태가, 너무 괴롭다.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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