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했습니다. 며칠동안 앓고 있습니다. 가슴이 찹니다. 데워진 손바닥을 가슴께 댔다가 가슴께를 주먹으로 서너 번 쳤다가 합니다. 열이 올랐다가 다시 식습니다. 찹니다.
화를 냈습니다. 너에게 내가 참 쉽고 간편했나보다, 라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한참 연락이 되지 않았었기 때문에 이번 연락에도 답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차라리 연락을 그만 하라고 말이라도 해달라고 꺼지라면 꺼지겠다고 이어 보냈습니다. 새벽, 짧지 않은 답장을 받았습니다.
내가 너에게 참 우스웠나 보구나, 라고 그 사람은 문자 했습니다. 잘해주려고 했었다고, 그게 저를 우스워보이게 만들었나보다고, 문자를 이었습니다. 망상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게 네 망상이라고. 다시 연락은 하지 말아달라고 그 사람은 문자를 갈무리했습니다.
우스웠나 보구나. 며칠 간 그 문장에 시달렸습니다. 이번에도 내가 무언가를 망친 모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나는 그렇게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또렷이 알고 있다는 점 뿐이었습니다.
텔레비전만 내내 쳐다보았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친구의 상처를 목격한 누군가가 자신에게서 도망치는 친구를 붙들고 말을 했습니다. 믿고 기다릴 거예요. 당신이 누구인지 아니까.
아팠습니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감히 자신했던 내가 부끄러웠습니다. 당신을 믿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말들은 모두 믿었지만 당신이 주었다는 애정은 조금도 믿지 않았습니다. 믿고 싶었지만 믿지 않기 위해 애썼습니다. 내가 다시 보내는 애정이 보잘 것 없어지는 일이 반복되는 것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묻지 않았습니다. 단 한 번, 물었을 때 당신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더 묻지 않았고, 나는 더 말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묻지 않음에 마다 상처 받았지만 그것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정말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당신이 정말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 당신에 처음 받아 보는 장문에서 느껴졌습니다. 술에 취한 당신이 몇 번이고 나를 얼마나 간편한 사람으로 대했었는지를 당신은 조금도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당신과 나는 어떤 사이였던 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상처 받기 시작했던 바로 그 때 나는 당신에 아무 말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야 했습니다. 당신은 계속 봐야 할 사람이었고, 다시 보지 못하게 되는 일이 두려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당신에 며칠 전 쏟아낸 화는, 다시 보지 못하게 되는 별안간의 상황에 닥쳐서 그간의 원망이 한꺼번에 터진 것입니다. 당신은 당황한 것 같았습니다. 혼란스럽다고 했으니까. 그제서야 당신이 정말 아무것도 기억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애정을 믿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면 누구의 애정도 믿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다른 많은 불신들을 낳았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믿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을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믿지 못해서 너무 적은 대화를 했고, 대화의 부재가 당신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게 만들었고, 그것으로 인해 다시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이것이 사랑 같습니다. 믿고 기다리지 못했지만 사랑 같습니다. 사랑을 바르게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까지는 사랑이 하는 일이 아니어서 나는 그 방법을 아주 더디게 찾고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다음에, 다른 누군가에게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대응을 할 수 있을 지 모릅니다. 화내지 않는 편이 피차 이기는 길이라는 결론도 냈습니다. 그것이 당신이 아니어서 미안합니다.
미워했고 믿지 못했고 사랑했습니다. 외로워서 울지 말고 자요. 화가 날테니 내 기억은 그냥 통째 버려요. 웃기지만. 잘 자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