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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게시물ID : today_5979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무미한냄새
추천 : 2
조회수 : 341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8/02/10 11:11:13




“나는 세상모르고 살았노라

고락에 겨운 입술로는

같은 말도 조금 더 영리하게

말하게도 지금은 되었건만

오히려 세상모르고 살았으면!”


* 알아가고 높아질수록 힘주어 열렬히 목소리 내는 대신 문장의 영리함이 늘어간다.

씁쓸하다.


 

-그는 상습범이다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2082038015&code=990100


"그동안 우리 사회는 무례한 요구와 폭력적 언어의 부당함이 아니라 그것을 거절하는 또 다른 에티켓을 여성에게 요구해온 셈이다. 거절의 예의라니 그것도 폭력적 언어를 예의를 갖춰 거절해야 하다니."

"홍상수의 초기작 <오! 수정>이나 <강원도의 힘>을 보면, 여성과 하룻밤을 갈구하는 철부지 지식인들이 잔뜩 등장한다. 임신중절 후 채 아물지 않은 여제자의 몸을 파고드는 <강원도의 힘> 속 대학 강사나 ‘그만 뚝’ 호통을 듣고 나서야 멀찍이 떨어지는 <극장전>의 남자 주인공을 보면, 왜 그렇게 많은 지식인 남성들이 홍상수 영화를 보며 감정이입을 하고, 공감을 했는지 새삼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아마도 많은 남성 권력자, 지식인들이 <연애의 목적> 속 이유림처럼 억울하고, 답답할 것이다. 여성의 피해에는 전혀 공감되지 않고, 남성의 입장에 전폭적으로 이입이 될 테니 말이다."

"타인의 고통을 같이 앓는 것은 재능이다. 호의였고, 격려였는데, 오해가 생겼고 운이 나빴다고들 말한다. 구차한 변명이다. 그들은 상습범이다." 



- 서울대학교 대나무숲 : https://www.facebook.com/SNUBamboo/posts/1679141755510783


"하고 싶으면 해도 돼"

처음으로 함께 한 침대에 오르며 여자친구가 하는 말치곤 꽤나 어색했다. 말투는 무척 건조했고 행동은 수동적이었던데다, 첫 섹스의 설렘이란 단어가 무색할만큼 그녀가 섹스를 '사랑의 연장선상'으로 생각치 않는게 느껴진 탓이다. 그녀가 자신의 몸을 자기 것처럼 대하지 않는다는걸 그 때 처음 느낀 건 아니었다. 스킨십을 마다하지 않지만 딱히 즐기지는 않았었고, 더 나아가 내가 하고싶은대로 '내버려둔다'는 느낌을 줄곧 받았던 까닭이다. 그 괴리가 어색해 조심스러워하던 내게, 그녀는 자신의 첫 경험을 담담히 이야기했다. 새내기 MT 때였다고 했다. 더 마시기는 힘들겠다싶어서 자러 들어온 시체방, 어둠 속에서 자신의 바지를 벗기고 성기를 갖다 댄 한 남자가 있었다고 했다.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아 눈을 꼭 감고 있었다고도 말했다. 그렇게, 누군가에겐 평생 상처로 남았을 몇 분이 흘렀을 것이다.

진득했던 당시의 연애는 이미 옛 추억이 된지 오래다. 다만 오래도록 가장 가까웠던 그녀와 공유했던 기억과 감정은 남았다. 가끔 상상을 하곤 했다. 어두운 방. 어지러움. 아랫도리가 허해지는 한기와 둔탁함. 그를 둘러싼 공기. 당황. 그 치욕감.

그 때 부터였다. 내가 건드리지 않는다면 누구도 나를 건드리지 않을 "안전한 세상"이란, '신체 건장한 남성'인 내 삶에만 한정된 환상에 불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된게. 나는 만원지하철에서 내 몸과 손의 위치를 고려할줄 아는 사람이었고, 술에 취해 함부로 남의 몸을 만지지도 않았으며, 외모평가와 음담패설도 자제하는 모범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나같지는 않다는 것, 누군가는 내가 생각지 못한 어떤 피해들을 당하기도 한다는 것, 심지어 내가 인지하지 못한 사이 가해자가 될 수도, 아니 어떤 순간만큼은 분명히 가해자였다는 것은 가상이 아닌 현실이었다.
"왜 나를 잠재적 피해자로 보는가" 나 스스로도 억울해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바꿔 생각해보면 간단했다. 여성들은 불특정 다수를 잠재적 가해자로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공중화장실 밑으로 카메라가 스윽 들어오고, 아무렇지 않은듯 선배에게 주물럭댐을 당한 개인들이 과연 일면식도 없는 남성을 편견없이 바라볼 수 있을까. 나 하나에겐 억울함이지만, 그들에겐 생존의 문제였다.

페미니즘에 대해 말들이 많다. 방향이 옳지 않았다, 혐오를 양산한다, 등등 다양하다. 비판할 수 있다. 비판은 정당하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수많은 여성들이 추행당하고 희롱당하는 현실 자체를 부정하는 비난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권력의 정점이라 여겨지는 검사가 "용기"를 내 "8년 만에" 성추행 사실을 폭로했다. 즐겨보는 타학교 대나무숲에서 "선배에게 성희롱당했다"며 미투 릴레에가 이어졌다. 불과 2년전, 2016년에 그랬다. 모대학에선 이른바 '지인능욕'이라 불리는 합성사진을 소장한 학생이 적발됐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은 이렇게 강간당하고, 희롱당하고, 추행당한다. 너와 내가 함께 살아가는 대한민국이지만, 전혀 다른 종류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건 그래서 중요하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선의를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착해"라는 그 포장은 2018년에 이르는 현재까지 세상을 바꾸지 못했다. 지금 현재도 안타까운 사건들은 계속 발생하고 있으며 아픈 상처를 가진 지인들이 당신 주위에도 존재할 수 있다. 적어도, 정말 적어도 그것만은 인지하자. 최소한의 공감 속에 세상은 조금 더 바뀔 수 있다. 섹스를 두려워하는 연인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는 세상. 위로받을 필요가 없는 세상. 당신을, 적어도 당신이 여성을 바라보는 것만큼의 태도로 여성이 당신을 바라보게끔 하는 세상.

내 주위 사람들이 아픈 경험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실제로 많은 주변의 여성들이 어렸을 때 남성들로부터 희롱 당한 경험을 호소하고는 합니다. 그러한 일들이 만연함을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에 대한 공감 없이 그들의 목소리를 묵살하려는 것은 하나의 횡포라는 생각입니다.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왜 그렇게 공격적일 수밖에 없는 지 조금은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 남성과 남성 사이의 위계에서 이루어지는 그 '약육강식'으로 인해 지배당하는 약자의 입장에 공감을 할 수 있지도 않은 애들이 이런 것들을 묵살하는 것은 당위적인 절차지만, 역겹다. 약자에게 행해지는 행위들은 언제나 당위를 갖고 있기 때문에 행해지는 것이다. 밟으면 꿈틀이라도 대는 사람은 조금이라도 피하려고는 하지만, 그런 투항조차 없는 사람에게는 그래도 되기에 그런 행위에 있어서 정당성까지 확보한다. 혹여나 후에 꿈틀댄다면 '그래도 되는 놈'이었기에 그에 대한 꿈틀은 '위계'를 거스르는 일로 분노를 산다. 공격적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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