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갬-성
게시물ID : today_5980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무미한냄새
추천 : 2
조회수 : 213회
댓글수 : 11개
등록시간 : 2018/02/12 10:42:39

#34785번째포효

우리에게도 그 때가 있었다.
합격증을 받아들고 온 세상을 가진 양
환호성을 지르고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등록금 고지서를 부모님께 내밀 때.
그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수험생 사이트를 뒤지며
새내기들 단톡방에 초대돼 인사를 나눴을 때.

새터를 기다릴 때.
고려대역이 가까운지 안암역이 가까운지
헤매며 선배에게 쭈뼛쭈뼛 카톡을 보냈을 때.
동기들과 선배들의 얼굴을 처음 보고 어색하게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이라며 인사를 건넸다.
약간 퀴퀴한 냄새가 나는, 그렇지만 좋았던
고속버스를 타고 새터 장소로 향했을 때.

술이 날 마시는지 내가 술을 마시는지
모를 정도로 취해 번호를 교환하고
정신없이 게임을 하고 노랠 부르고
이게 내 주량인가, 처음으로 알게된 때.
전 날 실수한 건 없나 기억을 더듬으며
학교로 돌아가는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아, 이제 진짜 대학생이구나 싶어
설렘과 두려움을 동시에 가지게 된 때.

정신없이 수강신청을 하고 새터 때
얼굴 익힌 동기들과 시간표를 교환할 때.
내가 더 망했니, 너가 더 망했니 하며
지금과 달리 맘 속엔 아무 걱정 없으면서도
시간표가 안 좋다며 깔깔거렸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다가왔던 새학기의 개강
그리고 내 새내기 생활의 시작.

선배들과의 밥약, 틈만 나면 참살이 길로 달려
온갖 술집을 섭렵하고 밥집을 섭렵했던 때.
공강 때마다 정후쪽 카페에 가 열심히 수다.
20살,21살의 어설픈 설렘 때문이지는 몰라도
멋있어 보이는 선배에게 밥약을 걸 때면
나도 모르게 고민하게 됐던 나날들,
동기들 사이에서 하나하나 풋풋하게 생겼던
씨씨들. 손 잡고 걷던 친구들을 놀리면서도
마음 한 켠으로는 부러워 했던 봄날의 연속.
미팅에도 나가 처음 보는 사람과 술도 마시고
애프터가 들어와 간질간질한 썸을 가져본 날들.

빨강색 티를 입고 목이 터져라 응원가를 불렀던
입실렌티, 고개가 빠져라 흔들고 처음 보는
사람들과 소리 지르며 민족의 아리아를.
방학이 지나고 가장 기다렸던 고연전도.
선배, 동기들과 어깨 동무를 하고 고대 쪽에서
점수가 나면 내가 낸 것 마냥 껴안고 소리를 질렀지.
뒷풀이에서 교류반과 번호를 교환하고 술게임을 하고
너가 잘 마시니 내가 잘 마시니 호기롭게 술잔을
교환하고 다 같이 취해서 첫차를 기다리던 날들.

종강이 지나고 나서야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그렇게
중요했었구나, 하고 후회했던 성적 공시일.
하지만 공부하다가 동기들과 간단하게 술을
마시고, 정신없이 연애 상담, 나 동기랑 썸 타는게
아닐까 하고 머릴 맞댔던 때가 생각나 생각보다
마음 쓰리지 않았던 그 때들. 1학기나 2학기나
생각처럼 달라지지 않았던 나와 동기들.

1년이 느리고도 빠르게 흘러 어느새 후배를 
받게 된 우리, 새터에서 후배들에게 내가 했던
똑같은 질문에 미소를 띄며 답해주고 있던 우리.
개강을 하고 우리가 했던 것처럼 후배들과 밥약.
어느 수업이 좋고 어느 술집이 싸고 어느 밥집이
맛있고 미팅이랑 소개팅은 어떻게 해야 되는지.
어느새 돌이켜 보니 그토록 우러러 봤던
선배들이랑 내가 똑같은 사람이더라. 아무 걱정
없이 자신 넘쳐 보이던 그 선배도 결국 나랑
똑같은 걱정을 하고 있더라.

군대를 간다고 짧은 머리 사진을 찍어 보내던 
남자 동기들, 교환학생을 간다던 여자 동기들.
이제는 굳이 연락하지 않으면 소식을 알 수 없게
되어버린 동기들. 굳이 연락하지 않으면, 굳이.
복학을 한다는 동기가 무슨 군대로 갔었는지,
카투사니 의경이니 목 매달던 그 때가 우스울 만큼
우리는 무섭도록 서로에게 무관심해져 있었네.
가끔 전공 수업에서 마주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는데 왜 굳이 연락해서 만날 생각을 못했을까.

문득 그 생각이 나서 몇 달째 말이 없던 단톡방에 
주말에 시간되면 술이나 한 잔 하자고 올려버렸다.
어, 얘도 되네. 얘 제대 했구나. 얘 교환 갔다가 왔네.
생각보다 많이 모여 안암에서 만난 동기들은 엄청
달라져 있었다. 생김새가 아니라 분위기가. 분위기가.
그런데 누가, ‘야, 새터 때 얘 취해서 말도 아니었는데’
하자마자 다같이 낄낄거리며 할머니가 손자에게
세벳돈을 주듯 주섬주섬 추억을 꺼내기 시작했다.
어느새 새내기 때로 돌아간 것 같더라.

우리에게도 그 때가 있었다.
그래서 난 지금 들어올 새내기들이
얼굴도 모르는 그 새내기들이
너무나 부럽고 응원해주고 싶다.
우리는 그 때로 다신 돌아가지 못하겠지만
그 때를 추억할 수는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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