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타인으로 인해 휘청이는 때가 몇 번 있다. 그게 사랑이든, 사람이든. 살아봐야 이제 서른 하고도 1년을 더 산 것 밖엔 없어서 사실 그깟 일이 나를 힘들게 했다는 사실을 다른 이들은 쉬이 생각하게 된다. 앞으로 더 살다보면 지금보다 더 휘청이게 되고 끝내는 찬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도 흘리지 않을 지경에 이르는 일도 있다고. 그럼에도 나는 꽤 지금만 보는 사람이라 지금 이 휘청임이 견딜 수 없이 어지럽다. 분명 똑바로 걷고 있는데, 옆으로 기울어진다거나 눈을 감고 있는데, 지나치게 현실적인 꿈 때문에 눈 뜬 것과 마찬가지거나.
나는 근심이 있으면 얼굴이 새까매진다. 원래도 어두운 피부였는데다가 마음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 나를 지켜보는 타인들에게 소리 없는 티를 내곤 한다. 얼마전 사진을 찍었는데 아, 내 얼굴이 염을 하고 있던 외삼촌의 얼굴 색과 같았다. 순간, 나는 내가 죽었는 줄 알았다. 그러다가 에고, 나 많이 힘들구나.
엄마는 계속 웃으라 했다. 뭐가 마음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다 털고 그냥 웃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실 요즘 내 표정이 어떤지 거울을 봐도 잘 모를 때가 있다.
이 마음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데, 그래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니, 내 마음 편하고자 다른 이에게 내 감정을 던질 순 없으니 그래서 계속 긴 글을 쓰곤 한다.
정말 별거 아닌 일이고, 이렇게 휘청일 이유 없는 일인데 무엇이 이렇게 내 얼굴을 검은색 크레파스로 칠하고 있는지.
덕분에 아무 생각 없이 집중할 수 있는 운동이 유일한 힘이 된다. 수영을 하고 있는데, 힘든데도 물 속에선 다른 것보다 숨 쉴 생각만 하게 되니 수업 들어가기 전, 수업 끝나고 난 뒤 프롤로그, 에필로그처럼 쉬지 않고 턴을 돌며 운동을 한다.
마음이 힘들 때 자꾸 기댈 생각만 하면 나약해지니까 나 스스로 감정을 갈무리할 줄 알아야 한다고 그랬다. 우울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지 않기 위해 감정에 매몰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럼에도 지금 가장 그 어떤 순간보다 네가 간절하게 보고 싶다. 이 곳에 쓰지 않으려 따로 어플을 깔아 쓸 정도로 노력했는데. 그냥 아무 이야기 없이 너의 등 뒤에 기대 있다가 조잘조잘 이러쿵저러쿵 내 감정을 이야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