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with you
게시물ID : today_6085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InHere
추천 : 2
조회수 : 146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8/09/16 15:36:45
"엄마 앉아서 먹어 왜 굳이 서서 먹어"

"이게 편해"

우리 집 식탁은 주방과 연결되어 있는 테이블인데 거실 방향에 의자 세 개가 놓여 있고, 싱크대와 가까운 쪽에는 의자가 없다. 

그래서 요리를 하는 엄마는, 바로바로 먹은 그릇들을 치우고, 왔다 갔다 하기 편하게 의자가 없는 쪽에서 의자 없이 서서 밥을 먹는다.

-"앉아서 먹어, 서서 먹으면 체한다"-

그런 모습에 가끔씩 옛날에 엄마가 나한테 자주 했었던 말이 생각날 때가 있다.





"엄마 와서 먹자, 이따 해"

"먼저 먹어~" 

먹자고 불러서 나가보면 꼭 음식 한두 개가 덜 됐다며, 음식을 다 내놓고선 나온 쓰레기들, 설거지거리를 처리하면서 먼저 먹으라고 한다.

"엄마는 너무 강박관념이 심한 거 같아. 그거 이따가 치워도 되고, 그냥 자잘한 쓰레기만 버리고 같이 먹지 왜 일일이 설거지거리를 한 번에 안 하고 
따로따로 해? 그거 안 좋은 거야."

"그냥 이렇게 바로바로 끝내는 게 속 편해 어차피 이따가 할 건데 그리고 지금 시간 없어" 

"천천히 해 천천히. 너무 사람이 여유가 없어 보여"

"..."

밥을 다 먹고선 어릴 때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그릇만 쏙 싱크대에 가져다 물을 받아놓고선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

불러도 대답이 없어 밖에 나가보면

"어~ 빨래한다고 물소리 때문에 못들었어 왜?" "너무 더럽다, 먼지 제거한다고 못들었어" "아 밀린 청소 좀 한다고... 왜?"

엄마는 항상 바쁘게 뭔가를 하고 있었다.





"깡통시장 가보고 싶다 저긴 진짜 가보고 싶어"

"우와 저기 진짜 재미있어 보여"

"엄마 기타는 꼭 배우고 싶은데"


"배우면 되지, 엄마 쉬는 날"


"시간 없어"





엄마도 일을 하고 아빠도 일을 한다.

아빠는 퇴근 후에 운동을 하고 TV를 보고 쉬는 날이면 간혹 모임을 간다.


엄마의 쉬는 날은 아빠와 내가 쉴 날을 위한 날이었다.





"아빠"

"밥 먹어 이제 다 됐어"

"앉아서 먹지"

"이게 편해"

누군가 그랬는데 아무리 올바른 사람이라도 그 자리에 서 봐야 알고, 그 사람의 행동을 이해해보기 위해선 그 사람의 행동을 똑같이 해야 된다고.

'엄마'가 있어야만 했던 자리에서 '내'가 있어 보니 알겠더라. 이 말 이외에 많은 행동과 심리와 말들을.

같은 위치에서.





"아들" 

하고 부르며 항상 내게 과일이나 먹을 것을 주었고, 먹을 것을 먹지 않겠느냐고 권유했다.

"아니, 엄마 나 별로 안 먹고 싶은데 이렇게 주고 가면 어떻게 해. 나 지금 배부른데 물어보기라도 해주지"





"아들 먹고 싶은 거나 필요한 거 뭐 없어? 엄마 마트야"





"밥이 다 떨어졌네, 안쳐놓고 갈게"

"나 밥 할 수 있어 내가 할게"

"이거 흑미 넣고 잡곡 넣으면 물을 일반적인 기준의 양으로 밥을 안치면 안 돼 맛 없어. 이게 유동적으로 물 양을 조절해야 해서 네가 못 해"

언젠가부터 내가 '엄마가 하는 일'을 같이 할 때마다 엄마는 '도와줘서 고마워 네 덕에 편해'라고 말했고 

엄마가 하는 일은 엄마가 해야만 하는 일들로 강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느껴졌고, 그런 책임의식과 오랜 시간들로 하여금 누군가와 함께하기 

힘든 '나만의 영역'이 되어버렸다는 걸 느꼈다. 

내가 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은 걸, 다른 사람이 잘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은폐해버림으로써 일의 가치를 느끼고 능력적 면모를 세우는 것에서.

밥을 포함한 모든 집안일은 엄마만의 영역이었다.

그 "강박관념"은 결국 당연한 것들을 당연한 척하며 받아들일 수 있기 위한 필연적 선택이었다.

분명 이런 배경이 인과관계의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봐온 것이 있고, 느끼는 것이 있는데. 

하지만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

이런 배경 덕에 여러 가지 성향 중 하나가 선택되어 이런 성격을, 행동을 이룬 것이다. 

이젠 어쩔 수 없었던 것들이 아닌, 어쩌고 싶은 것들이 주를 이루었으면.

도와주는 게 아니라, 같이 하는 거야. 엄마.



#with you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