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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게시물ID : today_6099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우리누
추천 : 5
조회수 : 11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10/15 20:16:58
리누야 네가 사라지게 둘 수가 없어 

 일하던 중간에 담배를 피러 가지 않겠냐는 갑작스러운 권유를 받았다. 분위기를 살펴보니 괜찮을 것 같아 고맙다고 하고는 냉큼 달려나와 벽에 기대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커뮤니티 사이트를 보던 나에게 그가 갑자기 다가와 말했다. 괜찮느냐고. 

늘 하던 질문이라 가볍게 대답하고 넘겼는데도 그는 여전히 내 앞에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왜? 하고 그 길쭉한 얼굴을 바라보며 시선을 맞추니 그가 가볍게 웃으며 다시 물었다. 정말 괜찮느냐고.

사실 그렇게 괜찮은 것은 아니었다. 허리는 아팠고 하루 웬종일 거의 곯은 탓에 속이 쓰렸다. 손님이 많은 날은 할 일이 많다. 화장실에서 나올 때 살폈던 얼굴에선 크게 티가 안 났었으니, 나는 다시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는 그래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뒤이어 B가 좇아오더니 괜찮냐고 물었다. 잠시 혼란이 일어나서 도대체 왜 이러는지 이유를 추측했다. 아마 화장실에서 나올 때 마주쳤던 A가 내 얘기를 한 것이다, 그런 결론에 도달했을 때 즈음에 또 다른 누군가가 와서 물었다. 괜찮느냐고. 오늘 뭐 먹었냐고. 

 반쯤은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면서 괜찮다니까, A가 헛소리 해? 얠 죽여버려야겠네, 하니 그가 가망히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A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고 자기가 내 얼굴을 보고 걱정이 됐던 거라고 했다. 무언가 할 말을 찾으려 머뭇대던 틈에 다른 여자애가 손에 무언가를 들고 나오더니 먹지 않겠느냐고 했다. 나는 거절했지만 옆에 있던 B가 그걸 대신 받았다. 리누야 여기 잠깐 앉자 하길래 그 의도를 알아 아니 정말 괜찮다니까 하고 말을 끊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내 팔을 부드럽게 잡아 이끌었다. 

셋은 그렇게 바닥에 주저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휴가 이후로 내가 더 말라가고 있다는 말로 시작한 대화는 꽤나 무거웠지만 그래도 웃음 속에 진행됐다. 낯설은 관심과 친애의 감정 속에서, 그 이야기를 한 것이 본인 혼자라면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며, 그렇지만 모두가- 근 이주 만에 본 다른 누군가 마저도 내가 엄청나게 말라가고 있다고 말을 했단다. 그 옆에서 B는 본인이 배가 고프다며 음식물의 뚜껑을 열어 먹기 좋게 조각을 내고 있었다. 

나는 바캉스 이후에 2 킬로그람이 불었다고 항변했고 그는 그게 언제냐고 물었다. 날짜를 헤아려 보니 두 달 전이였다. 지금은 ? 하고 되묻는 목소리에 대답 할 말이 없었다. B가 내 손에 먹을 것을 쥐어주었다.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아 잠시 손에 들고 있으니 그가 가만히 웃었다. 음식을 한 입 베어물고는, 잘 먹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변명을 늘어놓았다. 위가 안좋다거나 씹는게 귀찮다거나, 특히나 먹고 나서 생기는 열이 싫다는 이야기. 

몇 번 발음을 씹어먹었고 문법을 틀려서 정정하면서 이어지는 느린 이야기를 둘은 참을성 있게 들었다. 그는 이해는 한다면서도, 내가 꼭 현실에 있는 것 같지 않다고 사라져 버릴 것 같다고 하며 웃었다. 조금만 더 먹고 조금만 덜 일했으면 좋겠다는 그 말을 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몇 명 더 나를 보러 왔다가 갔고, 장난을 치다가 그에게 쫓겨났다. 그 사이 B는 다른 조각을 내 손에 쥐어주었고 천천히 입으로 밀어넣으며 그의 이야기를 함께 들었다. 

나를 더 내버려 둘 수가 없단다.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진중히 말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치아로 음식을 부수고 휘젓고 목구멍으로 밀어 넘겨 삼키면서 구멍난 스타킹을 만지작거렸다. A가 아무말 없이 콜라에 빨대를 꽂아 가져다 주었다. 그 등짝을 갈겨주고 싶은 맘이었다. 

 나는 또 다른 조각을 받아다 입에 우겨 넣으며, 내가 먹든 안먹든 일하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느냐고 궁색한 말을 뱉었다. 그는 빙그레 웃더니, 문제가 있다며, 나를 보는게 힘들다고 했다. B는 이대로라면 강제로 건강검진을 받고 산재휴가를 떠나야 할거라며 농담을 했다. 그는 이제 자기를 위해서 먹고 마셔주지 않겠냐고 했다. 담배가 태우고 싶었지만 B의 손에서 다시 음식의 작은 부분이 넘어왔다. 음료를 마시고 올라오는 탄산에 눈쌀이 찌푸렸다가 펴졌다. 다시 그가 나를 나직히 불렀다. 

리누야.   널 걱정하지 않으면 이런 말도 하지 않아. 내버려뒀겠지. 근데 정말로 걱정돼. 너에게 닿을 때마다 부서질까봐 걱정되고 네가 걸어다니면 넘어질 것 같아 걱정돼. 손에 뭘 들고 있으면 놓칠 것 같아. 리누야, 제발, 제발. 

실없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사람에게 신뢰 따위는 없는 나였지만 조금은 믿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나에게 타인은 떨어지는 나뭇잎이라던가 굴러다니는 쓰레기 정도로 관계 없는 것들 중 하나였다. 그래 가끔은, 감상에 젖기도 하지만 그저 흘러가는 그런 정도의 것 말이다. 아무도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지만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아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바람은 불었지만 나는 온갖 종류의 열기에 뒤섞여 있었다. 낯설은 종류의 것들이 나를 덥고 숨이 차오르게 했다. 스타킹의 올이 나간 부분이 점점 더 길어져 가는 것 같았다. 마치 이대로 길어져 내 목까지 찢어버릴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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