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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나무 - 박두진
게시물ID : today_6369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호젓한새벽
추천 : 3
조회수 : 477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20/08/01 00:39:10
 가을이 오기를 기다린다는 말은, 가을이 가는 것을 아쉬워한다는 말과 다를 수 없다. 전에는 봄을, 혹은 여름을 좋아하는 계절로 생각했더니 요즈음은 어느 결엔가 가을을 일년 중에서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 

 남보다도 유난스럽게 계절의 추이에 민감한 나는 사실 거의 생리적이리만큼 봄이네, 가을이네 하는 계절의 순환과 그 변화에 심리적, 정서적인 영향을 받는다. 그만큼 자연 현상과 자연이 주는 의미에 다른 어떤 문명이나 문화 현상보다, 더 깊이 젖어 들어 내 생활의 내면을 지배 받는다. 

 요새 며칠 동안 날씨가 좀 더웁다 싶더니 이내 비로 변하여 정말 가을다운 날씨로 돌변, 바람이 건들거리고 하늘도 훨씬 높푸르러졌다. 그냥 높고 푸르른 것이 아니라 그 푸르름이 맑은 거울처럼 으리으리해지고, 그 푸르름의 깊이가 무한하고 그윽하다. 

 교정의 플라타너스가 두어 잎씩 뚝뚝 떨어지고 잔디의 색깔이 누릇누릇 시들어 가고 있다. 여대생들의 옷매무새도 달라져 색깔이 짙어지고 걸음걸이나 말소리도 더 깊은 탄력을, 어떤 내면적인 탄력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건들건들하게 나무를 와서 흔들어대는 바람결에 그 나무들의 몸짓은 하나의 고뇌의 표현으로, 어쩔 수 없는 시달림의 표현으로 수렁거리고 있다. 

 짙은 잎새 빛깔, 아직 누렇게 물들지는 않은 채 짙고 칙칙한 녹색의 무거움이 조락 직전의 죽음과, 포기와, 체념의 아픔을 암시하고 있다. 

 엷어지는 햇살이 그 잎새와 잎새 사이를 새어나와, 바람이 그 가지와 잎새를 흔들 듯이 그 그림자의 잎새와 잎새, 가지와 가지 사이를 흔들고 있다. 

 하늘로 뿜어 올리듯 하는 사르비아 꽃의 붉음이 타고 있지만, 이것 역시 그 자신의 한계를 너무도 잘 아는 부질없고 가련한 도전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가을의 이러한 부정적인 면, 잎새가 떨어지고 긴 동면으로 죽음의 계절에 직면해 가는 그러한 진실에 대해서는, 일부러 그것을 의식화하지 않거나 기피했던 것이 지금까지의 나였다. 

 가을이면 으레 생각할 수 있는 결실이라든가 수확이 주는 내적 충실성을 기다리고 교훈을 받음으로써 인생의 다시 없는 수양, 그 생에 임하는 자세로 삼았었다. 

 그러나 차츰 나는 달라져 가고 있는 거을 느끼게 된다. 젊었을 때는 물론 거의 근년까지도 봄의 새로운 약동과 여름의 성장을 가을의 조락과 겨울의 죽음보다 더 뜻있게 여기고 그리고 기다리며, 그렇게 긍정적이고 건전하고 낙관적인 자연관과 인생관을 갖는 것이 옳고 마땅한 것으로 알아 왔다.

 시들어 버리는 것, 떨어져 잎새가 그 뿌리로 다시 돌아가는 것, 깊고 가혹한 죽음의 계절을 떨며 움츠리며 동면하는 일들을 바로 인생 그것으로 느껴 비관주의와 부정주의―진리의 어두운 면만을 보는 것은 건전치 못한 생의 태도로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의 나는 이 두 가지 상대적인 진실, 계절이 갖는 그 자체의 철리(哲理)를 그 자체의 진실대로 파악하여 그 두 상대적인 차원을 초월하는, 또 하나의 더 높은 차원의 통합을 찾는 사색의 입지(立地)를 발견한 듯하다. 

 나서 자라서 시들어 죽는 것, 또 다시 죽음으로부터의 부활과 성장을 거쳐 대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아니 이러한 일 자체가 이미 대자연의 법칙을 똑바로 증명해 보여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실감을 갖는다. 

 잎이 떨어질 때 의젓하게 아무런 미련 없이 훌훌 떨어지는 가을 나무의 저 멋, 이것은 아주 정상적인 것이다. 그것을 슬프게 보고, 눈물짓고 안타까워하고 하는 것은, 부질 없는 인간의 감상이 아닌가 생각한다. 깨끗하게 버릴 것을 훌훌 버리고나서는, 또 의연하게 버티고 서서, 더욱 더 높고 깊어진 하늘의 무한을 성긴 가지로 받들어 서 있는 저 나무들의 자세는 얼마나 당당한가. 

 저 잎새에 부는 소슬한 바람 소리, 칠칠한 치레를 깨끗이 벗어 버리고 알몸 그대로의 의지로, 장차의 서릿발과 눈보라를 견딜 자세로 서 있는 저 나무들의 의젓함은 참말 아름답다. 

 그는 당황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조용히, 어디까지나 겸허하게, 어디까지나 당당하게 그 자신에게 닥치는 보다 더 큰 운명, 보다 더 위대한 섭리의 진실에 대처하고 있다. 

 그것이 자연에 관해서든, 인사(人事)에 관해서든 어떤 사물의 궁극적인 철리를 깨달아 파악하는 일이 인생에겐 필요하다. 그 과정의 기복과 불안을 극복하는 가장 현명한 요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특히 조금 무엇을 생각할 수 있다는 인간이 받은 특혜가 있다면 바로 이 스스로의 운명, 어떤 종국적인 결말을 지혜와 경험으로 미리 깨달아 안다는 사실일 것이다. 

 가을을 안다는 것은 곧 그 가을과 겨울의 진실, 조락과 죽음, 그리고 그것을 넘어선 또 하나의 새로운 삶을 안다는 것이 된다. 아니 가을을 여름의 연장이나 변화로, 가을을 겨울이나 또 그 다음 계절의 전제로서 아는 것은 가을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말할 수 없다. 가을 자체가 지닌 철리, 가을 자체가 하나의 엄연한 진실로서 우리에게 던져주는 아주 정확한 섭리를 아는 일이 우리에겐 중요하다.

 이 가을은, 이러한 인생적인 진실을 말해 주고, 가을의 조락과 가을의 그 물들음이 가져다주는 정결하고 멋진 가을의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저 잔디가 더 누렇게 타고, 불 뿜듯 타오르는 샐비어꽃이 다 떨어지고, 커다랗게 바람에 불리며 아직은 청청한 플라타너스 잎이 누렇게 단풍 들면 가을은 더 가깝게 나에게 육박할 것이다. 그 누런 나뭇잎이 훌훌 떨어지고 성긴 가지만이 하늘을 가리킬 때 나의 시야는 한층 더 넓어지고 또 투명해질 것이다.

 밤에 그 가지가 먼 밤하늘 찬란한 별들을 가리킬 때 생각하는 가을 나무, 나도 비로소 더 높이 별들의 풍요함을 가슴에 담으리라. 그리고 이제까지는 아직도 알지 못했던 더 깊이 감춰 있는 영원한 비밀, 그 찬란한 진리를 향해 맑디맑은 새 눈을 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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