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잘못되었던걸까 무엇이 잘못되었던걸까.
은신자에게 당하길 수차례, 수십차례.
자칫 지나칠법한 작고 짧은 외마디소리에 문득 주위를 둘러보면 언제나 아군 한명이 없다.
오른쪽 시야를 보았다. 하지만 왼쪽이 비어있었다.
어느새 아군들은 동전을 주워담긴 커녕 한참 뒤에서 벌벌 떨고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레벨은 벌어졌다.
후방타워가 하나 부숴진다. 둘 부숴진다.
12시 방향에 등장하는 3단계 트루퍼.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는 우리의 최전방.
멀리서부터 날아오는 폭격과, 커다란 유성에 일대가 지옥으로 변하고,
그로테스크한 거미줄에 누군가 납치당하자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절규했다.
죽는다. 죽는다. 또 죽어간다. 사람이. 인간이. 나의 동료들이.
단 한 발자국인데, 단 한 발자국이면 되는데,
나가고싶어도 나아가고싶어도 절대 탈출 할 수 없는 무한 루프.
스승을 뛰어넘고, 수많은 동료에게서 등을 돌리고, 한번도 만난적없는 그들을 그저 적이라는 이유로, 단지 그 이유만으로 싸워왔고,
그렇게 도달한 정상의 봉우리는 직전에 와서야 정복을 허락지않았다.
포기할까.
생각이 들었다.
혹독하고 괴로운 모험은 이제 지긋지긋했다.
더 넓은 세상을 보고싶다며 모험을 떠난 나는 이 앞에 희망밖에 없으리라 믿었다.
레어한 아이템을 얻고, 소중한 동료와 만나고, 나와 같은 목적의 모험가들과 즐겁게 담소를 나눈 그 때 까지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레어한 아이템이 분해되고, 동료와 사이가 틀어지고, 험상궂은 자로부터 심한 말까지 듣고,
치욕을 당하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다음 고개를 들자, 그곳엔 허망한 자신밖에 없었다.
떠올렸다. 그랬더니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자신을 위해 동료를 버렸고, 앞으로 진보하기 위해 나와 똑같은 모험가들을 해쳤다.
때로는 비열한 전략까지 써가며 승리를 쟁취하려했고, 때로는 상대를 이기지 못한 패배에 원통해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끝내 희망은 찾지 못했다. 이 이상의 모험은 무의미했다.
정상 직전까지 올라온 지금까지의 모험은 고통과, 괴로움과, 슬픔 뿐이였다.
도저히 이 위에 희망이 있을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 이제 그만 쉬어도 되겠지.
아무도 손해보지않고, 아무도 뭐라하지않아.
모험을 관두자.
(끝)
그럼에도
나는 믿고싶다.
설령 이 앞에 희망이 없어도, 오히려 더더욱 깊은 절망이 기다린다 하더라도,
나는 희망한다. 브론즈의 정복을, 그리고 탈출을.
난 나가고싶다! 나아가고싶다!!
이 좁은 구석에서 탈출해 더 넓은 세상을 보고싶다!!!
내가 어디까지 가고싶은지, 언제까지 가고싶은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하지만 지금은 당장 나아가고싶다. 그것이 나의 욕구다. 지금 당장,
브론즈 밖으로
모두가 절망에 빠진 가운데 나는 팔을 휘둘렀다.
아까부터 거슬렸던 구둣소리가 멈추며 은신자가 내 손 높이 들려버린다.
그 은신자를 치든채 고개를 돌리자 바닥에 널브러져있던 아군들의 얼굴이 점차 놀라기 시작했다.
하나 둘 자리를 일어나는 그들을 향해, 나는 지긋이 입을 열었다.
"이기자"
- 나의 모험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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