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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의 신' 테즈카 오사무의 일생.jpg
게시물ID : animation_33122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redsun
추천 : 15
조회수 : 2088회
댓글수 : 39개
등록시간 : 2015/05/21 21:35:36

 




'만화의 신' 테즈카 오사무.







일본 첫 장편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철완 아톰의 아버지.

아톰은 당시 최고 시청률 40.7%까지 기록했고,

수많은 명작을 남긴 그는 '만화의 신'으로 일컫어지고 있다.







1928년 오사카 토요나카시에서 태어난 테즈카 오사무.

다양한 취미를 가진 아버지 덕분에 수많은 만화책을 접하며 자랐고,

자연스레 그리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갖게 되었다.






어린 시절 그는 곤충을 매우 좋아하는 소년이었는데,

그의 펜 네임 手塚 治 (본명과 읽는 법은 똑같음)의 유래이기도 하다.








어릴 시절, 테즈카가 곤충 채집을 하며 직접 그렸던 그림들.








그러나 그림에 열중하던 어린 테즈카 또한 시대의 거센 파도에 휘말렸으니

1941년 테즈카가 13살이던 무렵,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다.

고향 오사카는 공습으로 인해 괴멸 상태에 이르고...이 때 테즈카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사람인지 목재인지도 모를 손 발들이 데굴데굴 나 뒹굴고 있었습니다."

"이건 현실이 아니다, 꿈이라면 빨리 깨고 싶다, 이런 악몽 그만 꾸고 싶다고 느낄 정도 였습니다."






수많은 생명들이 사라져가는 충격적인 광경...

참상을 직접 목격하게 된 이 시절 테즈카에게 

"어떠한 의식"이 생겨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만화를 통해서 
생명의 존엄성을 전하고 싶다







그러나, 그 당시 만화에 대한 인식은 불건전한 오락에 불과했다.

귀하게 키워주신 부모님께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말은 도저히 꺼낼 수 없었다.








1945년, 구 오사카 제국 대학교 부속 의학 전문부에 입학.

테즈카는 수많은 생명을 구하고자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는 의사 국가 시험에 합격할 정도로 뛰어난 수재였다.






하지만 여전히 만화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하던 테즈카는 재학 중에도 꾸준히 만화를 그려갔다.

좋지 않은 사회적 인식 및 불안정한 직업의 만화가. 그리고 의사.

테즈카는 둘 사이에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진로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던 어느 날.

테즈카는 어머니로부터 뜻하지 않은 말을 듣게 된다.

"너는 만화와 의학 중에 어느 쪽이 더 좋은 거니?"

"만화입니다."

"그럼 만화가가 되려므나."

아들의 굳은 마음을 살피고 있던 어머니였던 것이다.





18살의 테즈카는 본격적으로 만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1950년 정글대제

1952년 철완 아톰

1953년 리본의 기사







꿈을 전해주는 캐릭터들은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인기 만화가가 된 테즈카 오사무.

전성기 당시의 연재 작품 수는 무려 12개에 이르렀다.







당시 테즈카 오사무의 편집 담당이었던 쿠로카와씨는 이렇게 회상한다.

"도대체 언제 자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 였습니다."

"매일이 마감일 같았던, 정말 말도 안되는 스케줄이었습니다."

"다시 생각해봐도, 잘도 그랬구나 싶을 정도로, 진짜 미친 거였죠."





테즈카 오사무는 이후로도 평생토록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된다.

책상에서 주먹밥을 먹으며 작업을 이어가는 건 지극히 일상에 불과했던 그.

다음은 그의 바쁜 일상 일화 중 하나이다.











3일 후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문화 축제에 참석해야 하는데,

연재작 2작품과 단편 한 작품을 마감해야만 하는 상황.

당일에도 아직 그려야 할 원고가 5페이지나 남아 있었다.

긴급 사태로 인해 테즈카는 나리타 공항에 도착한 차 안에서도 원고를 그렸다.

그러나 탑승 수속 시간이 다가오고, 더 미룰 수 없는 상황에

남은 원고는 기내에서 그린 이후 일본으로 보내주게 되었다.








장녀 루미코씨는 이렇게 회상한다.

"아버지께선 귀가 시간도 늦었고, 그저 본인의 서재에만 틀어박혀 계셨어요."

"책상에서 원고를 그리는 모습 뿐이었기에, 집에 계시더라도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적었죠."

"서재 바로 옆이 아버지 침실이었거든요. 일을 마치면 잠깐 주무시고 다시 일하고 그러셨습니다."







워커 홀릭이었던 그의 또 다른 일화.

집필 활동에 쫓기며 가족 여행에 홀로 지각하게 된 테즈카 오사무.

그런데 그의 곁에는 마감 원고를 위해 담당 편집자도 함께 있었다.

가족들이 한창 즐거운 식사를 하는 한 편,

옆 방에서는 편집 담당과 함께 원고를 마감 중인 테즈카가 있었다.

심지어 편집자는 도쿄에서 택시로 왔다가 원고가 완료된 즉시 택시로 돌아갔다.







이처럼 수 많은 연재로 인해, 담당 편집자를 괴롭히는 걸로도 유명할 정도였던 테즈카 오사무.

가족과 보낼 시간도 극히 드물 정도로, 만화가로서 큰 성공을 거둔 그 였으나..

다시금 시대의 거센 파도는 그를 밑바닥까지 추락시키게 된다.





극화체 작품의 등장








'고르고13', '내일의 죠' 와 같은 극화체 작품들.

서로 때리고, 죽이는 장면 등을 리얼하게 그려내는 작품들이었다.

테즈카와는 정반대 성향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풍.

극화체 만화는 눈 깜짝할 새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와는 정반대로 테즈카의 인기는 급락한다.

애니메이션에 큰 투자를 하던 자회사마저 도산하게 된 것.

억 단위의 빚을 떠안으며, 순식간에 인생의 밑바닥까지 추락하게 된 테즈카 오사무.







20년 이상 테즈카의 어시스턴트를 맡았던 후쿠모토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주변의 편집자들은 '테즈카 오사무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습니다."

"크게 낙담하셨죠. 정말로 그 당시엔 고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역시 화풍을 바꿔야 하려나, 그런 고민까지 했었죠."





'테즈카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

'테즈카의 만화는 낡았다'










본인의 작풍이 시대에 뒤쳐졌다며 대중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현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작품을 그려야 할까?

유행에 따라서 주제를 선택하는게 옳은 것인가?

고민을 거듭하던 나날.

그리고 마침내 탄생하는 시대의 걸작.







블랙잭.

신의 손을 가진 무면허 의사가 주인공인 작품의 만화였다.

의료 만화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명작.







블랙잭을 탄생시킨 것은 테즈카의 가슴 속 깊이 자리잡던 의식이었다.

만화를 통해서 생명의 존엄성을 전하고 싶다

전쟁의 비참한 광경...그 시절에 마음 먹게 된 신념.











의학 박사 학위까지 가지고 있었던 테즈카는,

리얼한 그림 표현으로 아이들을 금새 매료시켰다.

그리고 당초 1개월 정도로 완결할 예정이었지만, 엄청난 히트로 인해

연재 잡지 소년 챔피언의 간판 만화가 되었다.

누계 발행 부수는 약 4500만부.

연재는 10년 동안 이어졌고, 테즈카 오사무를 만화가로서 확고한 지위로 이끌어 주었다.






블랙잭이 완결될 당시 이미 54세의 나이였던 테즈카.

30년 이상 만화만 그려 온 그의 몸은 말할 것도 없는 혹사 상태였다.










"최근 정말 괴로운 일이, 동그라미를 그릴 수 없게 된 겁니다."

"펜을 아래로 그을 때 손이 떨리거든요."

"이제 나도 끝났구나... 엄청난 딜레마를 느끼게 됩니다."

"정말 그릴 수 없는건가! 나는 그림을!"

"그리면서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만화를 그리고자 하는 의욕은 꺾이지 않았다.

"아이디어 만큼은 정말 바겐 세일할 만큼 가지고 있는데 말입니다."





이 인터뷰로부터 2년 후, 59세...








말기 위암

이 사실은 가까운 가족들에게만 전해졌고, 정작 테즈카는 본인의 병명마저 모르고 있었다.

병상에서도 끊임없이 이어진 편집 및 어시스턴트와의 작업...

3작품의 연재 집필에 임하고 있었다.







무심하게도 암은 천천히 악화되었고...

테즈카는 결국 펜 조차 잡을 수 없을 정도의 혼수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만화에 인생을 바쳐온 남자, 테즈카 오사무.

그의 마지막 한 마디는 이러했다.





옆 방에 가서 일을 하겠소.

일 하게 해주오.








혼수 상태 속 의식이 몽롱해지는 와중에 남긴 그의 한 마디.

자택에서 자고 있는 걸로 착각하며

"옆 방 작업실로 가고 싶다"는 의미였던 것.










"아버지께서는 마지막까지도 테즈카 오사무이고자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라도 만화를 그리고자 하는 집념이라고나 할까요."

"본인의 몸이 아무리 망가졌더라도, 그 집념이나 마음 가짐만은
타인의 몇 배 이상이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1989년 2월 9일

60세의 나이로 테즈카 오사무는 인생의 막을 내렸다.





그리고 이어진 테즈카의 뜻을 이어받은 만화가들의 활약.

아카츠카 후지오 (천재 바카봉)

후지코 F 후지오 (도라에몽)

후지코 후지오A (괴물군)

이시노모리 쇼타로 (가면 라이더)





만화는 더 이상 단순한 오락이 아닌

전세계에 자랑할만한 일본의 '문화'가 되었다.





그리고 테즈카의 불후의 명작은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생명의 존엄성"을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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