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증시가 정 떨어지는 이유
헤럴드경제 / 2015-06-04 09:02:14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1주 전인 지난달 29일 한 지인이 문자를 보내왔다. “메르스로 몇명만 죽어주면 내가 산 제약주 상한가 갈텐데”라는 들뜬 문자였다. 비위가 상했다. 답문으로 “그래도 사람이 죽길 바래서야 쓰겠냐”고 점잖게 썼다가 지웠다. 그가 생각하는 누군가의 죽음을 바라는 마음은 그만의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은 탓이다. 그의 바람대로 주말 사이 누군가가 사망했고, 그가 산 종목은 이번주 들어 소위 대박이 났다.
지난 4월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사망설이 증권가 찌라시 형태로 나돌았다. 삼성그룹 지배구조주들인 삼성SDS와 제일모직은 장중 상한가를 찍었다. 몇 종목들은 며칠 더 상승세를 이어갔다. 이 회장의 죽음을 바라는 듯한 ‘집단 지성(?)’이 관련주들의 주가를 높였다. 이 회장의 죽음을 증권 업계에선 ‘불확실성 해소’라 하기도 했다.
20여년전 누군가 집어치우라 했던 ‘죽음의 굿판’이 오늘은 증시에서 반복되는 중이다.지난해 말 한 광고회사는 대규모 인원을 잘라냈다. 일부 증권사들은 최근 대규모로 직원들을 해고했다. 경영 효율화가 이유였다. 상식적으론 장사가 안돼 직원들을 잘라야 될 정도가 된 기업이라면 ‘회사가치(시가총액)’가 떨어져야 정상이겠지만, 직원들을 자른 해당 회사들의 주가는 뛰었다. 장부상으로 직원은 ‘비용’이기 때문이다.
‘돈이 근본인 사회’의 정점에 주식 시장이 있다. 증시에서 모든 것은 돈, 숫자로 바뀌어 표시된다. 그 가운데엔 죽음의 값어치도 들어있다. 내가 산 주식 가치가 뛰길 바라면서, 누군가가 죽기를 바란다. 내 종목이 오르길 바라면서 해당 회사 회장이 죽기를 바라고, 내 돈이 불어난다면 대규모 감원은 필요한 조처라고 생각한다. 그게 소위 ‘주주 정신’이다.
현진건의 소설 ‘할머니의 죽음’에는 할머니가 어서 돌아가시기를 기다리는 친인척들의 심리 변화가 잘 묘사돼 있다. 내 생활을 위해, 내 삶을 위해 할머니가 어서 죽음을 맞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소설 곳곳에 세심하게 그려진다.
‘이기적인 유전자’들만 살아 남았기 때문일까. 유사 상황은 오늘도 반복된다. 증시가 정 떨어지는 이유는 자본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돈은 사람도 잡아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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