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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해서.
게시물ID : gomin_14506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뜻발그미
추천 : 0
조회수 : 19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6/08 23:35:32

나는 무엇일까를 처음 고민하게 된건 아주 꼬꼬마 시절에 (대략 6~7살) 무렵.. TV에서 나온 말 때문이였다.

 

내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내가 어디서부터 나왔는지 아는게 우선이였다.

 

그래서 하루 이틀 거슬러 기억을 더듬어 보았는데..

 

왠걸 보름전도 기억하지 못 했다.

 

하루종일 뛰어놀기 바쁜데.. 어제도 놀고 그제도 놀고 그그저께도 놀고..

 

계속 먹고 자고 놀기만 했으니.. 뭔가 특별하게 기억날만한 일들이 없기도 했다. (엄마한테 매맞은 기억도 많지만.. ㅎㅎ)

 

 

이런 의문은 꾸준히.. 간간하게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중 가장 크게 느낀건 사람들은 나를 모른다는 사실이였다.

 

내 안에는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있고, 뛰어난 것도 모자란 것도 있는데.

 

타인들은 평가는 악한 것과 모자란 것만 얘기한다.

 

제일 가까운 타인들, 가족들이 나를 몰라준다는 생각이 너무 섭섭하고 속상했다.

어찌보면 내가 원인이기도 헀지만, 내 좋은 혹은 선한 의도는 무시하고 결과만으로 평가를 할 때.

익숙치 않아 벌인 실수를 혹독하게 질책할때, 또는 너무 박한 칭찬이라든가.

 

왜 는 없고, 결과만으로 나를 평가한다고 생각했다.

 

잘 대해주면 나도 잘 할텐데, 기회를 주고 북돋아주면 나도 잘 할 수 있는데.

나도 선하고 착한데 왜 이렇게 나쁘다고만 할까?

 

그건 맨날 얼굴 부딪히는 친구들도 학교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나를 몰라주는구나.

 

어찌나 외롭고 서럽던지. 가끔은 구석탱이에서 말 없이 울 때도 많았다.

 

차라리 로빈스 크루소같이 물리적인 고독이 낫지, 군중속에서 고독이 더 서글픈 법이다.

 

적어도 대학을 가고 군대를 가고 실연을 당하기 전까지.. 나는 계속 내 속으로만 파고 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실연의 상처를 잊어버리기 전까지도 그랬다.

 

소도 아닌데 자꾸 끄집어내어 되새김질하면서 아문 상처에 생채기를 내면서 말이다.

 

자칫 탈영으로 이어질뻔한 (그런 담력도 없었지만.. 그래도 휴가 대기하는 열흘동한 몸무게가 10kg이 빠지드라..) 고무신 탈선 사건 기간중

골이 빠개지도록 골몰하건..

 

사랑이란건 뭘까 하는 것과 나는 무엇일까 하는 고민이였고, 두 개의 질문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였다.

 

정답은 아니겠지만 사랑이란건 냉정하게 정의해서 "나에 대한 집착 현상" 으로 결론을 냈다.

 

 

나는 무엇일까?

 

다르게 물어본다면 나는 어디까지 일까? 어느 범위까지가 나 일까?

 

내 몸뚱아리까지?

 

내 옷, 내 신발 같은 나의 소유물들 까지?

 

내 가족, 내 친적, 내 친척 같은 내 인적 네트워크까지?

 

내 동네, 내 직장, 내 나라 같은 범위까지 일까?

 

아마도 마음 먹기 따라 달라질 것이다.

 

MB를 생각하며 한없이 대한민구에 태어난 것을 슬퍼하다가도 월드컵 기간에 신나게 응원을 하는 것을 보면..

나는 한국 사람이 맞고.. 적어도 한국은 내 나라인 것이다.

 

내가 일본인이라면 한국의 16강 진출을 기뻐하진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특수한 시기에 있어 내영역은 한국 전체로 늘어나게 된다.

 

혹은 인류 전체로도 늘어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는 공통적으로 "나"가 기준이라는 것이다.

 

나만의 기준에선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고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는 것이다.

(물론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가겠지만.. 내가 없는 세상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결국 타인을 사랑한다는 행위는 타인을 내 범주안에 포함시킨다는 것과 같은 일이 된다.

 

내가 내 돈을 귀히 여기듯이 내 몸을 아끼듯이 내 범주안에 들어 있기 때문에..

 

나와 다른 남. 타인이지만 나와 같이 귀하게 여기게 되는게 사랑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문제는 인간인 이상 한계가 있다는 것이고.. 본질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나에게 속하느냐 속하지 않느냐는 집착으로 결정되는 것이기에

실제의 모습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타인에게 투영이 되어서 본질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쉽게 얘기해서 눈에 콩깍지가 씌우면 코딱지를 파도 이뻐보이는데.. 마음이 돌아서면 선물을 줘도 싫은 거다.

 

코딱지를 파거나 선물을 주는 행위 자체는 그대로인데 변한건 내 마음일 뿐이다.

 

애시당초 본질이 아니라 왜곡된 모습에 집착했을 뿐이였다. 

 

 

나는 그저 나에게 집착했을 뿐이였다.

 

 

빙산과 같이 커다란 무의식과 다중의식이 숨겨져있고, 상황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표출되었던 것이다.

 

그 의식중 하나가 바라는 모습을 타인에게 대입시키고는 애정을 느끼고 애착을 보였을 뿐이였던 것이다.

(내 의식 속에는 잔혹한 면도 냉정한 면도 있고, 여리고 다정한 부분도 있다. 활기찬 부분도 음울한 부분도 있다.

 인간의 정신은 밖으로 들어난 부분인 주인격 (메인 캐릭터)과 숨격진 부분인 부인격(서브 캐릭터)이 상호 견제하며 균형을 맞추고 있다.

  간혹 시소를 하듯 주인격과 부인격이 변경되면서 노출하지만 이 균형이 깨지면 제 7병동 가야지..)

 

인간의 의식은 양파와 같다.

남의 눈에 보이는 껍데기가 수많은 알맹이중 하나다.

가면을 쓰듯 상대에 따라 다르게 보여주는 모습들 모두 자기 자신일 뿐이다.

 

 

지금은 다 인정한다.

 

남들이 나를 몰라준다고 섭섭해 했지만.. (지금도 섭섭은 하지만) 나는 남을 얼마나 알아줬던가?

 

얼마나 타인의 본질을 인정했든가?

 

남의 속을 어떻게 알아내서 본질을 이해할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그냥 물흘러가듯 집착을 버릴 수 있었던건, 내가 타인의 모습을 왜곡하듯이 남도 그렇다는 것이고.

 

애시당초 그리 만들어졌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였다.

 

알 수 없는 걸 알아내려고 하는 것도 바보 짓이고.. (궁예의 관심법도 자기 최면일 뿐이니)

 

그저 내가 모른 다는 것과 내가 집착을 하건 안하건 타인의 본질은 상관없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 스스로에게 있어서도,  타인과 같이 모르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나는 나도 모른 다는 걸 인정한다.

출처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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