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궂은 말 한 마디도 못 하셨을 거다.
게시물ID : freeboard_91666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ㅂㅎ한
추천 : 15
조회수 : 517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5/06/14 19:47:50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뀌던 때, 우리 엄마는 벽돌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애야 엄마 벽돌공장에 다닌다고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돼'라고 신신당부하셨지만 난 촌구석에서 보기 드물었던 공장에 엄마가 다닌다는 게 너무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다음날 담임 선생님한테 '저기요 선생님, 우리 엄마, 벽돌공장에 다니게 됐어요'라고 말했다가, 선생님께서 가정방문을 하셨던 날 엄마한테 엉덩이를 모질게 타작당했었다. 그래도 난 여전히 엄마가 '공장'에서 일한다는 게 퍽 멋있어 보였다.

하지만 공장은 엄마를 무척이나 괴롭혔다. 보들보들했던 손바닥은 아빠 손바닥보다 더 까끌까끌해져서 엄마가 내 뺨을 만지는 게 싫어졌다. 집에 돌아와선 땀냄새와 기름냄새를 풍기며 부엌에서 오랫동안 쉰 뒤에야 밥을 해주셨다. 엄마가 부엌에 누워 앓는 시간은 점점더 길어졌고, 나는 이내 라면 끓이고 설거지하는 일에 익숙해졌다.

평소 유난히 착한 척하던 슈퍼 아줌마는 내가 듣는 앞에서 우리 엄마가 천한 일을 한다고 말하는, 무척이나 천박한 짓을 했했었다. 엄마가 슬플까봐 차마 '슈퍼 아줌마가 엄마 보고 천한 일 한대요'라고 말하진 못하고, 그저 그 아줌마가 우리집에 들를 때마다 그 아줌마를 흘겨보기만 했다. 난 엄마가 공장에 다닌 다는 게 너무 싫었다.


여름방학 중, 동생이 엄마가 보고 싶었던지 엄마네 공장에 놀러갔었다. 일어나서 친구집에 놀러 가려는데, 공장으로 가는 골목길에서 동생이 울면서 오고 있었다. '그 공장네 아이들이 예지를 괴롭혔구나' 싶었다.

이 조그마하고 귀여운 애가 너무 서럽게 울고 있어서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일단 집에 데려와서 방법을 궁리했다. 그러다가 맛있는 걸 주면 좋아할 거라는 생각에 가게로 달려가서 7백 원짜리 아이스크림을 사왔다. 사오고 보니 이미 울음을 그쳐서 내가 좀 먹다가 동생이 좀 달라고 해서 나눠 먹었다. 

엄마가 돌아오고 나서 '그 공장네 아이들이 예지를 괴롭혀서 막 울었어요'라고 말씀드렸다. 예지는 다시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엄마는 예지의 등을 도닥도닥 하면서 엄마가 내일 걔네들 아주 혼구녕을 내줄게'하고 약속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그 애들에게 궂은 말 한 마디 차마 못하셨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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