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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뽕이 더 좋다. 짜장면보다 그게 훨씬 좋다.
게시물ID : cook_15546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ㅂㅎ한
추천 : 25
조회수 : 1701회
댓글수 : 71개
등록시간 : 2015/06/15 21:48:27
우리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뀌고, 이제 차츰 그 초등학교란 이름이 익숙해질 즈음이었을 거다. 엄마 올 시간이 가까워져서 엄마 친구네에 놀러 간 동생을 찾으러 밖으로 나왔다. 문득 옆집의 이삿짐을 나르던 아저씨들이 먹고 남긴 짜장면 그릇을 봤다. 짜장면 냄새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 아저씨들은 이삿짐을 모두 나르고 돌아간지 오래였다. 남긴 짜장면들을 모두 합치면 한 그릇이 다 되고도 남을 것 같았다. 행여나 들키면 남의 것을 먹었다고 혼날까봐 남은 짜장면을 한 그릇에 모아서는 담 틈새에 들어가 몰래 먹었다.

행여나 그릇 찾으러 오는 아저씨가 오면 '이 그릇 훔치려던 거 아니에요. 저기 떨어져 있어서 주워 왔어요'라고 하면 되겠다 하면서 먹었다. 맨날 먹던 김치라면보다 훨씬 좋았다. 중간중간 섞여 있는 단무지는 땅에 버렸다. 맛있는 짜장면이 있는데 왜 단무지같은 걸 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짜장면을 먹다가 문득 '조금 덜어뒀다가 동생 주면 좋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짜장면을 들고 마당을 가로질러서 우리집 부엌으로 가던 중에 막 이사온 옆집 아줌마랑 마주쳤다.

'이 그릇 안 훔칠라했어요. 쩌어기에 떨어져 있었어요.'

변명은 연습대로 나왔지만 짜장으로 얼룩진 소매를 감추는 치밀함은 없었다. 옆집 아줌마는 짜장면 그릇을 도로 밖으로 내놓고는 날 데려와선 짜장면 한 그릇을 시켜주셨다.

짜장면이 맛있던 것만큼 동생한테 못 줬던 게 미안했다. 옆집 아줌마한테 '감사합니다' 인사드리고 동생을 데리러 엄마 친구 집에 갔다. 집에 도착했을 때, 매번같이 부엌에 누워 땀냄새와 기름냄새를 풍기며 쉬고 있던 엄마를 봤다.

엄마는 동생더러 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했고 날 무척이나 혼냈다. 훔치는 게 나쁜 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남이 버린 걸 먹는 것도 나쁘다는 건 그날 처음 알았다.



그건 둘도 없이 나쁜짓이었다. 엄마 앙가슴에 흉한 못 하나를 찔러버린 짓이었다. 사실 천 몇 백원짜리 짜장면 한 그릇이 사람 마음에 못이 되기야하겠느냐마는 때로는 종이 한 장도 살갗을 찢기엔 넉넉한 법이다.

제 자식들 입에 뭐라도 넣어보려고 무턱대고 험한 공장에 들어가 일하고 일했던 서른을 갓 넘긴 자존심 강한 여자가, 막 옆집에 이사온 이웃에게 당신 자식이 남이 버린 짜장면이나 먹고 있더라는 소식을 듣는다면, 충분히 짜장면 한 그릇도 흉측한 못이 될 법도 하다.

오늘 점심에 짜장면을 먹을거냐 짬뽕을 먹을거냐라고 친구 하나가 물어봤다.
짬뽕이 더 좋다. 짜장면보다 그게 훨씬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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