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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 글은 잘못된 정보입니다.
게시물ID : phil_1179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루빠
추천 : 0
조회수 : 417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5/06/28 05:39:00
매번 잘못된 정보가 베스트나 베오베에 올라가고 만명이 넘는 사람이 잘못된 정보를 읽는다.

심장이 요동친다. 이쯤되면 거의 분노다.
매번 지적을 해도 도통 말이 통하질 않는다.

원인은 간단하다. 경전에 나와있듯이.. 

'사랑하는데서 사랑이 증장하고, 미워하는데서 미움이 증장한다.'
'사랑하는데서 미움이 증장하고, 미워하는데서 사랑이 증장한다'  

'오유를 좋아하는 마음이 클수록 오유에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좋고, 잘못된 정보를 퍼트리는 사람이 싫을 수록 그 집단이 미워진다.'
'오유를  좋아하기에 대척점에 있는 집단이 싫고, 그 집단을 싫어하는 커뮤니티들이 좋다.'

오유고 나발이고 신경 안 쓰면 그만이다...라고 마음 먹으면 되는데 말도 안되는 헛소리가 수많은 오유유저들에게 읽히는 꼴을 보니  참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 좋아하는 세세한 분석과 지적 들어간다. 지적할 가치도 없는 것들은 제외하고..


이런 파편적인 문구만으로 불교가 현실도피적 허무주의나 염세주의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실제로도 부처님 생존당시에도 허무주의에 빠져 자살을 택한 수행자들이 종종 나타나곤 했었다는군요...
하지만 그것은 불교의 본질인 실천수행적 측면을 간과하고 그저 교리를 논리적으로 해부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
 
경전 어느 곳에서도 허무주의에 빠져 자살을 택했다고 나와있지 않습니다.
http://blog.daum.net/bolee591/16155228 읽어보시고 허무주의에 빠져 자살을 했다는 그 출처좀 보여주시죠???

부처는 제자들에게 사변적인 말장난에 빠지는것을 항상 경계하라고 하였고
부처 자신의 가르침은 병을 고치기 위한 처방전에 불과하며
강을 건넌 뒤 머리위에 뗏목을 이고 가는것은 멍청하다는 비유를 들며
부처의 법도 버려야할 대상으로 가르쳤습니다.
불교 교리는 강을 건너고 병을 고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한것이지
그것 자체로 숭앙되어야 할 진리라거나 하는게 아니라는거죠...

부처님의 입적당시를 잘 나타내주는 디가니까야 D16에 잘 나와있습니다.
“아난다여, 아마 그대들에게 ‘스승의 가르침은 이제 끝나버렸다.
이제 스승은 계시지 않는다.’라는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아난다여, 그러나 그렇게 생각해선 안 된다.
아난다여, 내가 가고 난 후에는 내가 그대들에게 가르치고 천명한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네 그렇죠? 숭앙되어야 할 진리를 강조하십니다.

비어있음을 직접 체득해보아야 고통의 근원을 뿌리뽑을 수 있다."
라는 의미로 모든 불교의 가르침은 고통을 끊어내기 위한 해석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비어있음을 체득한다는 말은 경전 어느 부분에서도 나와있지 않습니다.
공을 체득한다? 말장난이죠. 불교에서 강조하는 세가지 탐,진,치가 사라진 것이 바로 아라한입니다.
탐진치, 삼독을 없애야 한다는 말을 공을 체득한다고 표현하신 건가요?
없앤다는 표현을 '무엇을 얻는다는 표현으로 달리 말하셨군요?' 그럼 어떻게 체득하는 건가요?
공을 체득하신다면서요?? 아무것도 없는 것을 얻는다구요??? 아무것도 없는데 뭘 얻어요??

부처님의 탄생게송으로 알려진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경우 얼핏 들으면 굉장히 오만하고 건방진 소리로 들리지만
그것 하나로만 볼게 아니라 불교의 가장 근본적인 가르침인 연기법의 원리인
'이것이 있음으로해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남으로 해서 저것이 일어난다.'라는 가르침과 더불어 생각해 본다면
이 세상에 있어서 홀로 독자적으로 상주불변하는 절대적인 존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서로 영향을 주며 서로가 서로의 인因이 되기도 하고 서로가 서로의 과果가 되기도 하죠...


우와 어떻게 전혀 상관없는 두가지 내용을 엮을 수 있을까요?
디가니까야 마하빠디나경은 보살이 태어날 때 나타나는 원리를 설명한 것입니다.
그리고 연기법은 12연기를 간단히 이야기 한 것이며 12연기는 상주불변하는 절대적인 존재따위가 없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연기가 뭔지 젼혀 모르고 하는 소리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외부자극에 끄달리는 삶을 살라는 것이 아니라
나의 세계에서 나의 존귀함을 자각할수 있어야 다른이의 세계에서 다른이들의 존귀함을 깨달을수 있다는 의미인거죠...

네.. 전혀 다른 의미를 써가며 뜬금없는 서로의 존귀함을 이야기하는군요. 기가차서 말이 안나옵니다.

나의 세계에서는 내가 부처고 나를 중심으로 모든것들이 연결되어 구성되어있지만
너의 세계에서는 네가 부처고 너를 중심으로 모든것들이 연결되어 구성되어있습니다.

부처님이 한 60억명쯤 계시는군요?"? 근데 세상이 왜이지경이죠?

비록 무명에 휩싸여있기에 윤회의 고리 안에서 생사고해에서 고통받고 있지만 모든 중생은 해탈하면 부처가 될 수 있지요...


네, 정확하게 불가능합니다. 아무나 부처가 될 수 있다면 이미 세상은 부처님밖에 없었을 테니까요.
그냥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상엔 부처님이 존재하지 않아요

선에도 악에도 집착하지 말라고 했지만
오히려 선도 악도 모두 포용하라는 의미지 선도 악도 아무 의미가 없다는게 아닙니다.

삶에 집착하지 않겠다고 삶을 버리는 것은
삶이라는 변邊을 버리겠다는 이유로 죽음이라는 변邊에 집착한 것입니다.

선과 악을 포용하라는 소리는 한 적이 없습니다만... 태평양쯤 되는 위치에서 보면 비스무리한 소리로 볼 수도 있겠군요.

자살은 의도가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살인입니다. 물론 그것이 업에 의한 결과일 수도 있고
자기자신에 대한 사랑의 발로로 적극적인 대응을 한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자살에 대한 저의 의견은.. '힘내세요' 한마디입니다.

삶에 집착하지 말라고 그냥 무기력하게 잠이나 쳐 자다 죽으라는게 아니라
오히려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면서도 죽음이 다가왔을때 툭 털고 일어날 수 있어야 한다는겁니다.

네.. 일기는 일기장에

수행은 욕구를 벗어내는데 목적이 있는겁니다.
수행 자체가 욕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 말이 한국불교의 무지함을 잘 나타내주고 있는 말입니다.
경전에서 '독은 독으로 다스린다'고 수행 자체를 집착하지 말라는 소리는
덧셈뺄셈도 못하는 인간이 곱셈을 보면서 '이런건 사회생활에 쓸모없으니까 수학공부 하지마'라는 꼴입니다.
심지어 아라한도 중생이 받는 복의 크기가 크게 하길 바라는 마음에 공양받기전에 삼매에 들었다 나오고
부처님조차 '중생을 위해 복을 짓기 위한 일을 합니다. 또한 성인에 반열에 들어도 아라한이 되기 위해 수행을 하는데
수행에 집착하지 말라뇨.. 수행은 즉시 결과를 가져오며 다음 생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집착하지 말라 집착하지 말라 하시면서 철학게에 꾸준글좀 그만 집착하세요.
좋은 정보면 말이라도 안하지 매번 다른 정보가 아닌 틀린 정보를 자기 생각대로 불교라고 지칭해가며 쓰는건 집착이라 생각 안하세요?

신고 누적으로 차단 당해도 좋습니다. 다신 오유에 오지 못해도 좋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 글을 읽고 위안을 얻은 것도 괜찮아요.
며칠간 심사숙고하고 오지랖떨지 말자 수없이 되뇌이며 참다 참다 한시간 넘게 걸려 씁니다.

그 글은 잘못된 정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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