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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음식, 치킨
게시물ID : cook_15818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ㅂㅎ한
추천 : 11
조회수 : 1552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5/07/13 16:04:42
재작년 가을, 겨우 철골만 앙상하게 올라선 건물 3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참 까마득하다는 생각이 들었댄다. 일주일 전만 같았어도 그 까마득한 높이에서 떨어지면 어쩌나 하고 다리를 덜덜 떨면서 일했었는데, 동생 약값에 병원비에, 쌀값에 반찬값에 기겁을 몇 번 하고나니 그 일에는 차차 둔감해졌다더라. 그래서 그놈은 자기 나이 스물넷이 되던 그 가을의 어느날 철골 밑을 바라보면서 '내 인생도 참 까마득하다'는 생각을 할 여유까지 생겼던 모양이다.


다음날 작업도 없고 공사장 아저씨들 권유를 뿌리칠 명분도 없어서 들른 회식자리, 'OO현장에서 또 사람이 떨어졌더라' 'A 아저씨도 떨어졌다더라' 'A 아저씨가 그 현장에 있었다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그 철골 밑 풍경이 떠올랐다고 했다.


그 녀석은 회 몇 점 주워먹고 일어나며 '어머니 오실 때가 돼서 가봐야겠습니다.'했고 아저씨들은 '코찔찔이도 아니고 어머니 온다고 가냐' '저 애 어머니가 몸이 아프시대잖아' '동생이 아픈 거 아니었어?' '동생도 장애인이고..' 하고는 걔를 더 붙잡지 않았댄다.


아파트 15층 복도에 놓인 풍경에 담배 연기를 곁들이면서 어머니 퇴근길을 기다리는데 자꾸 그 철골 아래 풍경이 겹쳐 보이더란다. 인생 까마득하다는 생각이 계속 들더란다. 9시, 걔 어머니가 아파트 승강기에서 내려오시자 어머님께 말씀드렸다.


'엄마, 저 절대 결혼 안해요. 대학같은 것도 안가요. 그러니 행여나 제 결혼비용 같은 거 모아둔 것 있으시면 엄마 맛있는 거라도 하나 사 드세요.'


'그래도 돼? 조금 모아놓은 게 있긴 한데..'


기대도 안했던 돈이 있다는 이야기에, 금액이 궁금해졌댄다. 그래서 '얼마 모아두셨는데요'하고 묻자 '10만 원 정도 있어'라셨댄다. 너무 처랑하기도 하고, 아들놈이 큰일이라도 하겠다고 하거나 며느릿감이라도 데려오면 쓰려고 그 돈이라도 모아놓으셨다는 게, 참 가엽다 싶기도 했댄다. 그래서 어머님 보는 앞에서 킬킬대면서 몇 분을 웃는데, 어머님도 막상 본인이 말씀하시고도 우스웠던지 복도에서 큰아들놈이랑 같이 몇 분을 웃으셨댄다. 웃음을 좀 그치고 걔가 말했다.


'엄마 나 치킨이랑 맥주 먹고 싶은데, 그 돈으로 치킨 하나 사줘요.'


자고로 결혼자금을 미리 달라고 하는 아들놈들의 말은 믿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그 놈은 자기 결혼자금을 2년 전, 치킨과 맥주를 즐기는 데 탕진하고선 염치 없게도 대뜸 며느릿감을 데려와서 내년 4월에 결혼하겠다고 선언했다. 큰아들놈의 거짓부렁에 속아, 그간 모아놓은 결혼자금을 내주셨던 걔네 어머님께선 지금 눈물을 머금고 투 잡을 뛰신다고 한다. 치킨 한 마리에 어머니까지 속이는 무서운 세상도 세상이거니와, 모자 간의 신의를 잃게 만드는 치킨도 참으로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음식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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