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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앵커의 가장 수치스러웠던 기억.
게시물ID : sisa_60269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구름풍선
추천 : 6
조회수 : 1338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5/07/15 01:16:45
1988년 8월 노태우 정권 당시 MBC노조는 공정방송 쟁취를 위한 방송사상 첫 파업에 돌입한다.
이 이야기는 그 시절 파업에 참여했던 한 언론인의 최대의 수치스럽고 기회주의적인 전환기(轉換期)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그때 MBC 평일 <저녁뉴스>와 주말 <뉴스데스크>의 진행을 맡고 있었다.
당시 노조는 파업의 홍보수단으로 ‘공정방송 쟁취’라고 씌어 있는 리본을 착용하였는데 파업의 실행을 눈앞에 두고 방송에 출연할 때 리본을 착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한창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후에는 홍보효과도 떨어지고 리본을 달고 방송에 출연한 사람들이 불이익을 받는다 하여 폐기되었지만 5공 내내 억압받다가 6공에 들어 사회 분위기가 급변하던 시기로 MBC노조의 싸움에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던 터라 방송 출연시에도 리본을 달 것을 결정했다.
이에 나는 당장 토요일 밤 <뉴스데스크>에서부터 리본을 달고 나가야 할 판이었다. 문제는 이 유례없는 리본착용 출연에 대해 회사 측에서 강력하게 반발하였고 설상가상으로 화면상 리본이 가장 크게 노출되는 <뉴스데스크>에 관심이 쏠리는 것이었다.
나는 불쌍하게도 토요일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방송은 노조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회사 측의 공세와 노조의 쟁의행위는 정당하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과연 내가 해야만 하고 또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으로 머릿속이 온통 혼란상태였다.
토요일 아침이 되자 노동조합 측이나 회사 측이나 모두가 텔레비전 화면을 지켜보았다. 늘상 그렇지만 조합원들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용감했다. 
아침 아홉시 반쯤이 되었을까. 주부대상 교양 프로그램의 두 리포터가 리본을 달고 등장했던 것이다. 조합원들 사이에 자그마한 탄성이 일었다.
다음의 생방송은 낮 뉴스였다. 해당 진행자는 교체를 우려해 애초부터 리본 착용에 대해 일절 얘기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뉴스가 시작되기 직전에 리본을 기습적으로 달았다.
하지만 회사측도 빨랐다. ‘온 에어’불이 들어오기 직전에 진행자는 리본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 사정을 모르고 있던 나는 화면에 나타난 그가 리본을 달지 않은 것을 보고 내심 안도하였다. 
부끄럽지만 내게 돌아올 잔을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중압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미리 보고하고 빠져버릴까도 생각해 봤지만 그럴 용기도 없을 것 같았다. 회사 간부를 비롯해 몇 사람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어왔지만 나는 대답하지 못하였다.
이상하게 노조 쪽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아마 내게 너무 큰 부담을 주지 않으려 했으리라. 시간은 빨리도 흘러갔다. 방송시작 3분 전, 내 자리에 앉아 리본을 만지작거리는 사이 뉴스 타이틀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곧 내 얼굴이 화면에 잡힐 것이다. 그 순간 나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리본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한 최대의 수치스럽고 기회주의적인 행동을 저지르고 말았다. 나는 그 리본을 양복 깃에 달지 않고 옷 안쪽 와이셔츠 주머니 위에 달았던 것이다.
아홉시 시보가 울린 후 내 모습이 화면에 나타났다. 나는 뉴스를 시작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것은 참으로 괴로운 자기합리화의 싸움이었다. 
화면 밖의 사람들은 모두가 내게 손가락질을 하는 것 같았고 나는 붉어지는 내 얼굴을 느낄수록 더한 당혹감에 빠졌다. 뉴스시간 내내 양복 깃에 가려 반쯤 보일락 말락 했던 리본은 그대로 썩어빠진 내 양심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었다.
이게 무슨 눈 가리고 아웅이란 말인가. 차라리 리본달기를 포기하고 소신이라도 있는 양 변명하는 것이 옳은 짓이었다.
뉴스를 끝내고 돌아와 보니 사무실은 평온하였다. 회사 간부들도 노조 쪽에서도 그 누구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이해한 것일까. 나는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날 내가 보낸 하루는 참으로 구차스런 것이었다. 그 어떤 변명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그날 밤 나는 거의 한 잠도 이루지 못하였다. 아마도 그때까지의 내 삶에 있어서 그날 밤만큼 괴로웠던 적은 없었을 것이었다. 
노조에 대한 미안함이나 나보다 훨씬 용감했던 후배들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런 것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게 마련인 것이었다. 그러나 나 자신은 용서할 수 없지 않은가. 나는 그동안에도 수없이 많은 잘못을 저질러왔고 그때마다 어떻게든 나를 용서했지만 이번 일은 애초에 그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책임져야 할 ‘권위주의적’ 양심의 문제가 아닌, 바로 나 자신에게 책임져야 할 지극히 ‘인간적’ 양심의 문제였던 것이다. 
온갖 상념들이 몰아치는 사이에도 그날의 졸렬하기 짝이 없었던 나의 모습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나 자신을 보상받을 방법을 점점 더 명료하게 떠올리고 있었다. 밤새 괴로워하면서 뒤척였던 시간에 비하면 너무나 짧은 순간에 나는 결론을 내려 버렸다. 내겐 또 한번의 기회가 남아 있지 않은가. 
다음날. 나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으려 애썼다. 혹 조합원 중 누구든 리본을 달지 않고 나오는 것을 보면 또 나 자신을 위해 어떤 핑계를 만들려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러나 눈은 자꾸 텔레비전으로 갔고 낮 뉴스를 보던 나는 가슴이 마구 뛰는 것을 느꼈다. 어제 리본을 빼앗겼던 진행자의 가슴 위에 분명히 리본이 달려 있는 것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아홉시 방송시간을 불과 사십분 정도로 바투 남겨 놓고 출근했다. 보통 때 같았으면 최소한 한 시간 반 내지 두 시간 정도 일찍 와서 뉴스준비에 들어갔으나, 그날은 되도록 회사 간부들과의 대면시간을 줄일 요량이었다. 
보도국 안은 희한하게도 평온했다. 사람이 얼마 없었던 것은 예상한 대로였지만, 낮에 리본사건이 있어서 조금은 긴장감이 돌았음직 한데도 그런 기미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정도는 가려진 평온함이었을 것이다. 
나는 대충 옷매무새를 고쳐 입고 뉴스준비에 들어갔다. 리본은 물론 달지 않은 채였다. 십분, 십오분, 시간이 지나는데도 아무도 내게 리본에 대해서 물어오지 않았다. 그날 뉴스를 책임진 편집부의 H차장도, S기자도 그저 아무 말 없이 뉴스편집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내가 오히려 당황할 판이었다. 사실 묻지 않아 주는 게 내겐 편한 일이었지만, 이대로 가다가 뉴스시간이 돼서 내가 덜커덕 리본을 달면 그때의 혼란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아무런 반작용도 없이 혼자서 대뜸 리본을 단다는 게 오히려 내겐 더 힘든 상황일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상황은 잠시 후에 깨졌다. H차장이 내게 결국은 물어왔다. “오늘 리본 안 달 거지?” 평소 나와 친하게 지내던 그는 보통 때처럼 격의 없는 말투로 그 어려운 질문을 하고 있었다. 그는 의도적으로 ‘당신은 어제처럼 오늘도 당연히 달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단지 형식적으로 확인만 하는 것이다’란 뜻을 그 질문에 담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걸 묻는다는 투의 그 질문은 내게 역시 아무것도 아닌 걸 왜 묻느냐는 식의 대답을 강요하고 있었다. 
나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뉴스시간을 이십분 남겨 놓고 있었다. “허허. 글쎄요.” 나는 반은 웃음으로 얼버무리면서 말 자체는 모호하게, 그러나 되도록 ‘안 달 것이다’란 뉘앙스가 느껴지도록 해서 일단은 그를 안심시키고 싶었다. 가슴이 쿵쿵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어쨌든 나는 달아야 한다. 그리고 이제 신경전이 시작된 것이다. 나는 H차장에게 되도록 이런 나를 감추려 애쓰면서 무척이나 미안했다. 
함께 일하면서도 서로 다른 위치에 있다는 것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을 그어야 한다는 것은 누가 만들어 놓은 비극적 상황인가. 그는 나의 조금은 이상한 대답에 같이 웃고 넘어갔지만 뭔가 짚이는 구석이 있었을 것이다. 오분쯤 후에 그는 다시 물어왔다. “어떡할 거야? 오늘 안 달지?” 그의 말투에는 아까와는 다른 긴장감이 묻어 있었다. “글쎄요. 낮에도 달았는데 저도 달아야 되지 않겠어요?” 나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선 정색을 하기보다 웃는게 편했다. 별 일 아니란 듯이.... 그러나 H차장은 내 대답에서 심상찮은 낌새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뭐? 농담이지? 아홉시는 문제가 커져. 난리 날 거라구.” 그는 이제 완전히 정색을 하고 있었다. 뉴스시간은 십분을 남겨놓고 있었다. 나는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는 정면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떨리는 손으로 리본을 꺼내 양복 깃에 달았다. 나 역시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전 오늘 답니다.” 
 나는 그날 한 번의 실수도 없이 방송을 끝냈다. 그러나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 방송을 끝낸 후의 후일담을 여기에 적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일일 것이다. 다만 H차장은 그 후 어려운 입장이었으면서도 나를 옹호해 주어서 나는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한다.  

손석희 『풀종다리의 노래』 (역사비평사, 1993) 中 “세상에서 가장 무거웠던 리본”
출처 http://m.humoruniv.com/board/read.html?table=pdswait&number=3655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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