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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를 이어폰] 3. 고마워 고마워
게시물ID : readers_2082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목덜미페티쉬
추천 : 0
조회수 : 29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7/20 22: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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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본 소설은 라디(Ra.D)의 미니앨범 '작은 이야기' 수록곡 '고마워 고마워'를 모티브로 하여 창작되었음을 앞서 밝힙니다.

*

-신축년(세종3년) 전라 고흥 김웅의 부인 홍씨가 맏언니에게 보낸 편지 中

 (전략) 다시금 생각해도 아버지는 참 너무하시지요. 아무리 약조를 했기로서니 이리도 갑작스럽게 혼인을 시키신답니까. 혼기가 찬 사내라면 말도 않지요. 열여섯 나이인 제게, 망건 하나도 혼자 못 쓸 아홉 살짜리를 맺어주시니 제가 색시로 온 건지 유모로 온 건지 모르겠습니다.
 (중략) 첫날밤이라고 별 거 있었겠어요. 서방은 상 우에 대추만 몇 개 집어먹다가 질렸는지 드러눕습디다. 심통이 나서 부끄럼이고 뭐고 혼자 옷고름 풀고 눕는데, 서방이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더니 ‘누이가 오늘부터 내 색시요?’하고 물어보는 거예요. 그냥 무시하고 잘까 하다가 시부모께 이를까 싶어 ‘네, 혼인을 했으니 이제 제가 서방님의 색시지요’라고 대답해 줬지요. 그러자 활짝 웃으면서 ‘이렇게 예쁜 색시를 얻어서 나는 참으로 좋소’ 하더니 내 품 안에 안기더이다. 예쁘다는 말이 좋아서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주니 서방은 금세 잠이 들고, 그것도 사내의 숨결이라고 가슴에 따스한 콧김이 느껴지니 싱숭생숭해져 그날 밤은 꼴딱 새고 말았지요. (후략)

-정미년(세종9년) 홍씨가 아랫누이에게 보낸 편지 中  

(전략) 며칠 전에 내가 시아버님 다 드신 진지상을 이고 가다가 실수로 그만 넘어져 버린 적이 있었지. 무릎 까진 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할머님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라 사색이 되어서 깨진 조각만 연신 줍고 있는데, 때마침 서당에서 서방이 돌아오는 거야. 곧이어 측간에서 나온 할머님이 마당 꼴을 보더니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지는 걸, 나는 오늘 경치는 날이구나 싶어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지. 
 그런데 갑자기 서방이 나에게 ‘미안하오, 괜찮소?’ 하고 묻는 거 아니겠니. 나는 무슨 말인가 싶어 멍한 얼굴로 서방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서방이 할머님께 고개를 숙이고는 ‘서당에 막 다녀오던 참인데, 각시 뒷모습이 보이기에 반가워서 무얼 들고 있는 줄도 모르고 끌어안았더니 그만 이리 되고 말았습니다. 할머니, 죄송하옵니다.’ 이리 말하는 거야. 얌전한 성격에 평소 장난이라고는 칠 줄 모르는 손자이니 거짓말임을 모를 리는 없었겠지만, 이제 혼인을 했으니 몸가짐을 중히 하라며 할머님은 서방을 혼내시더라구. 한참을 혼난 서방은 방으로 물러가고, 나는 죄지은 표정으로 깨진 조각들을 담고 일어서는데 언제 나오셨는지, 아버님께서 ‘그래도 서방이라고 제 색시는 챙기는구나’하며 껄껄거리며 웃으시더라. 할머님은 아무 말씀도 않으시고.
 그리고 그날 저녁 잠들려는데 어디서 구해온 건지 붕대랑 약초 으깬 것을 가져와서는 다리를 걷어보라고 하지 않겠니. 사실 상처가 그리 심한 것은 아니었거든, 조금 생채기만 난 정도였어. 그런데 서방은 내 다리를 보더니 눈이 촉촉이 젖어서는 ‘얼마나 아팠겠소, 아이고.....’ 이렇게 탄식을 하는데 그 마음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서방님을 와락 끌어안았단다. 그런데 어느새 서방님이 훌쩍 커버려서 내가 안긴 형국이더라구. 
 안기고 보니 쑥스러워서 나는 가만히 있고, 서방님 가슴에서 심장 뛰는 소리가 둔탁하게 쿵,쿵 울리는데 새삼스레 나도 가슴이 뛰는 거야. 나는 그 소리가 들릴까봐서 황급히 몸을 뗐지만 나는 서방님 팔에 붙들리고 말았단다. 그리고 갑자기 내 입술 위로 서방님의 입술이 겹쳐졌지. 단순히 입술을 맞대는 것뿐인데도 머리가 하얘지고 온몸이 뜨거워지는 것이,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어.
 그리고 있잖니, 그날 밤에 있잖니, 나는 깨달았단다. 우리 서방님이 벌써 남자가 다 되셨다는 걸 말이야.(후략)
 
-경술년(세종12년) 김웅의 책 사이에 보관되어져 있던 편지  中

(전략) 과거가 얼마 남지 않아 속이 답답하여 문을 열었더니 달이 참 밝구려. 한양에 온 이후로 달을 볼 때면 얼굴이 하얗던 부인 생각에 가슴이 사무쳤다오. 부인과 함께 연을 맺은 지가 열 해 가까이 되었는데 어째서 혼자 있는 몇 달의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지는지 알 수가 없소. 
 부인도 가끔 첫날밤이 생각나시오. 어린 눈에도 다소곳이 앉아 있던 부인은 참 예뻤고, 나는 어쩔 줄 몰라 상 위에 안주만 연신 집어먹고 있었지. 사실, 아홉 살짜리가 뭘 알았겠소. 나는 색시라는 게 단지 같이 사는 누이로만 알고 있었다오. 낳아주신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할머님은 쌀쌀맞으셔서 외로웠던 차에 예쁜 누이가 생긴 것이 얼마나 좋았던지. 그래서 들뜬 마음에 정말 그대가 내 색시가 되었는지 물었지. 그대도 코흘리개에게 시집와서 심통이 나 있을텐데, 참 속없는 질문이었소. 하지만 그런 내 물음에도 부인은 또렷한 목소리로 내 색시가 된다고 말해주었소. 너무 좋아서 나는 부인 품에 파고들었고, 그런 나를 어머니처럼 쓰다듬어주는 것이 너무 좋았지. 그때 혼곤한 잠에 빠져들며 나는 생각했소, 색시를 행복하게 해주겠노라고.
 당시로서는 심각한 생각이 아니었을지 모르나, 나이가 차면서 부인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인지 진심으로 알게 되었소. 어린 나이에 만나 남매처럼 살아왔지만 나는 부인만 생각하면 여전히 가슴이 떨리오. 그리고 늘 미안했소. 마음에도 없는 사내와 혼인하여 비참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만약 부인도 나와 같은 마음이길 바란다면 그것은 욕심이겠소?
 혹여나 아직 내가 부인의 마음에 차지 않는다면, 내가 그리 되도록 노력하겠소. 부인은 조신하여 한 번도 맘속의 말을 하는 적이 없으니 평생이 가도 그 마음 알 수 없을지 모르겠으나, 어떤 상황에서건 그대를 지켜주기로 나는 마음을 먹었소.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큰 인물이 되어야 했고, 그래서 아직 학문이 미흡하지만 과거를 서둘 수밖에 없었소. 고향을 떠나던 날, 슬퍼 보이던 그대의 눈에 부끄럽지 않게 웃으며 돌아가리다. 조금만 기다리시오. (후략)

-신해년(세종14년) 전라 고흥현 현감 김웅의 아버지 김응현의 일기 中

 건강한 손자가 태어났다. 이름은 빛날 환자를 써 김환이라고 지어주었다. 체통을 지키려 아무리 노력해도 웃음이 비져나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그러니 웅이는 어떻겠는가. 평소에도 제 부인에게 애정표현이 과하여 왕은을 입은 관리로서 자각을 하라고 야단을 쳐보았지만 효과가 없어 나도 그만 포기할 정도이니. 아마 오늘은 방안에서 절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내일 일에 지장이 있을지 모르나, 하루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다.
 어미를 잃고 외로움에 낯빛이 어두워지는 것이 보여 처음 혼인을 시킬 때는 걱정도 많이 했으나 혼인한 이후 웅이가 활기가 넘쳐지고 학업에 더욱 매진하여 생각지도 못한 나이에 장원급제까지 하니 기쁘기 이를 데가 없다. 며늘아기 또한 한 번도 엇나간 적 없이 올바른 모습만 보이고 드디어 후대를 이어주니 진정 이 집의 복덩어리가 아닐까 싶다. 
 생각해보면 아들은 며늘아기에게 고맙다는 말을 참 많이 했다. 아까는 울면서 몇 번이고 고맙다고 말하는 것이 차마 보기 민망하였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문득 사별한 아내가 웅이를 낳았을 때가 떠올랐다.
 가뜩이나 몸이 약한 아내가 하루 가까이 그 진통을 견뎌가며 웅이를 낳아주었지만, 나는 지친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해주지 않았다. 게다가 출산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어머니께 시달려 집안일을 했었지. 그리고 아내가 죽는 순간까지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나는 아내가 참으로 힘들었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고생했다는, 고맙다는 그 한 마디를 하지 못했을고. 
 참으로 어리석었구나. 양반이 무엇이고, 사내가 무엇이라고 그리도 속내를 감추어야 했는지. 사실은 나도 누구보다 아내를 사랑했고, 아내가 죽었을 때 홍수처럼 울었거늘. 왜 생전에 표현을 그리 하지 못하여 이리 한이 되게 하였는가.
 만약 나도 웅이 같았다면 지금쯤 이토록 후회스럽지는 않겠지. 내일은 혼자 아내의 묘소라도 갔다 와 보아야겠다. 우리 웅이가 얼마나 자랑스럽게 컸는지, 그리고 며늘아기는 얼마나 기특하고 손자는 얼마나 예쁜지. 너무도 아내에게 들려주고 싶구나.
 아직 생이 많이 남았으니 못난 아비처럼 후회하지 않고 살기를, 아들 내외와 손자의 앞날에 행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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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당신과 나를 이어폰'의 김고든(필명)입니다.

'당신과 나를 이어폰'은 현재 네이버웹소설챌린지리그에서 연재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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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314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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