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삼별초 - 1. 군인이란
게시물ID : history_2232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Lemonade
추천 : 13
조회수 : 1210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5/08/03 14:52:39
옵션
  • 펌글
"군인은 집 지키는 개다"
모 의원님의 말씀입니다만, 딱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군인은 외부의 침략을 막기 위해 존재합니다. 죽을 길에 스스로 뛰어 들어가야 되는 그들에게 절대 복종이 없으면 안 되죠. 개라는 말이 듣기 싫을 뿐, 군인은 집 지키는 개의 위치에 있을 때 그 존재 의의가 있습니다.

문제는 군인이 충성하는 "주인" 혹은 군인이 지켜야 될 "집"이죠. 왕조국가에서 그들의 주인은 곧 왕입니다. 그리고 외부의 적보다 무서운 건 내부의 적이죠. 때문에 나라가 혼란스러울 때 그들이 든 총칼은 집 안을 향할 때가 많았습니다. 지금이야 경찰이 상당부분 그걸 가져갔지만, 군인이 내부의 적에게 투입이 안 되는 건 아니죠. 혹은 왕이 아닌 어떤 유력자를 지킬 때도 많았죠. 아예 그들이 사병을 양성해서 누가 국군이고 누가 사병인지 헷갈릴 때도 있었습니다. 아주 간혹 가다 대다수 국민들의 편을 들 때도 있긴 했지만, 정말 소수였죠. 이런 상황에서도 그들은 일단 자기가 모시는 이에게 개처럼 충성해야 했습니다.

군인은 집 지키는 개다. 평시 상황 때나 침략에 국론이 통일돼서 함께 싸울 때는 이보다 더 좋은 의미가 있을 수 없지만, 나라가 혼란스러울 때는 이보다 더 한 욕이 없습니다. 나라의 왕, 혹은 그들이 모시는 힘 있는 자의 뜻이 국민 대다수의 뜻과 어긋날수록 말이죠. 그렇다면, 자기가 지켜야 될 국민을 향해 총칼을 돌린 경우에도 그들보다는 그들이 지켜야 될 "집"과 "주인"을 혼란스럽게 한 윗사람들을 탓 해야 될 겁니다.

+) 그래놓고 평시 때는 무시당하는 게 또 군인이죠 -_-

대몽항쟁 기간 동안에는 많은 군인이 등장합니다. 문관 출신도 있었고 무관 출신도 있었죠. 그들은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김취려와 조충은 나라가 막장이 된 가운데서도 싸웠고, 별다른 불평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싸웠고, 그렇게 죽었죠. 이제현의 말대로 최씨 정권을 엎을 가장 좋은 기회는 그들이 병력을 이끌고 개선할 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김경손은 최우의 최측근으로 박서, 최춘명이 몽고의 뜻에 의해 하야해야 했을 때도 여전히 높은 위치에 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 어떤 막장짓을 해도 당연하다 생각해도 될 건데, 그는 대몽항쟁 최고의 영웅이었습니다. 도망가지 않고 몽고군에 맞서 싸워서 귀주성의 업적을 이뤘으며, 나주의 반란에 홀로 파견돼서도 불평 없이 잘 싸웠죠. 최항의 반대파에 있었으면서도 그의 집권에 큰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최항 집권 후 숙청당했고, 바다에 빠졌죠. 그 때도 그가 반항했다거나 하는 얘기는 없습니다.

이자성은 동선역 전투의 승리를 이끌었고, 반란을 토벌할 때도 늘 출전했습니다. 성품은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그는 나름 잘 싸운 편입니다. 문제는 동선역 전투를 제외하면 그가 칼을 빼든 상대가 같은 고려인이었다는 것이죠.

김방경은 장수로서의 능력보다는 내정이나 외교에서 돋보였습니다. 위도로 백성들을 데리고 가 자급자족할 시스템을 만든 것도 그였고, 원종이 쫓겨났을 때 그걸 해명하려고 선택된 것도 그였고, 서경의 반란에 대처하기 위해 파견된 것도 그였습니다. 그에게 명령을 내리는 게 원종이든 임연이든 그는 따랐습니다. 

+) 다만 원종 폐위 때 굳이 그가 파견됐고, 이후 그가 고려군 총사령관으로 활동한 것을 보면 그가 근왕파(?)이긴 했을 겁니다. 

"아 그래 최씨가 니들의 주인이란 말이지?"라고 따지고 싶긴 하지만, 이들은 정치의 혼란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군인의 길을 갔습니다. 

최씨의 사병 집단인 도방 병력은 대몽항쟁 거의 전 기간 동안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최의가 죽은 이후 그들은 김준, 임연이 통솔하다가 임유무가 죽은 후 없어집니다. 무신정권을 이끄는 축이었던 그들은 무신정권이 없어지자 같이 없어질 운명이었죠.

하지만,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삼별초는 조금 달랐습니다.

------------------------------------------------------------------

별초別抄는 지금 말로 번역하면 특수부대 정도 될 겁니다. 하지만 그게 곧 정예병을 뜻 하는 건 아닌 듯 합니다. 귀주성 전투에서 보듯 한 장수가 이끄는 소수의 사병이나 부사관 급의 병력을 일컫기도 했고, 충주성에서 양반별초, 노군(노비)별초가 있었듯 예비군을 뜻 하기도 했죠. 무신정권에 의해 정규군 편제가 문란해진 이 때, 그냥 정규군에 포함되지 않은 병력을 모두 별초라는 이름에 묶은 듯 합니다.

그 중에 최우가 만든 야夜별초가 있었습니다. 밤에 치안을 담당하는 병력이라 하지만, 그냥 도둑이나 잡으라고 만들었겠습니까. 반란을 막으려고 만들었겠죠. 

대몽항쟁 기간 동안 이들의 수는 크게 늘어나고, 편제도 좌우로 나눠집니다. 여기에 최우 자신을 호위하는 마별초도 만들어졌죠. 임용한 교수는 이에 대해 수가 늘어난 것보다는 입김이 커지면서 좌우로 나눠 서로 견제하게 한 거라고 평가합니다.

이들은 서남해안의 섬들에 기지를 두고 각 지역에서 나오는 세금을 운반하는데 투입됩니다. 아마 대몽항쟁 전 기간 동안 그랬을 겁니다. 하지만 이들은 도방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강화도 천도 때 지유 김세충은 자기 목소리를 냈다가 죽었고, 3차 전쟁 때는 보다 못 해 자원해서 육지로 가기도 했죠. 그 수는 소수였지만 약간의 전과는 냈습니다. 6차 전쟁 때는 그들이 대규모로 투입됐고, 꽤나 많은 전공을 얻어 냈습니다. 이들은 몽고가 바다를 건너는 것 자체를 막았고, 전라도부터 북쪽 끝 의주까지 다양하게 투입됐습니다. 8차 전쟁 때는 각 성에 파견돼 싸웠구요. 금강산 근처의 금강성 전투에서는 3000명이 파견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밤도둑질 막는 경찰 느낌으로 만들어졌던 삼별초는 몽고를 상대하는 정예병이 돼 갔습니다. 여기에 몽고에 붙잡혔다가 탈출한 이들로 신의군神義軍이 만들어지니, 사람들은 이를 기존의 야별초와 합쳐 삼별초라 불렀습니다. 좌우별초+신의군이라는 게 정설입니다만, 이제현의 경우 야별초+신의군+마별초라 정의하기도 했습니다. 정확한 명칭이라기보다는 통칭이라고 봐야겠죠. 

사병이라고 하기도, 정규군이라고 하기도 힘든 이들은 점차 정치군인화 돼 갔습니다. 몽고를 막기 위해 커졌다는 것 이외에는 이들을 확실히 정의할 수가 없었습니다. 때문에 이들은 자기의 주인을 찾아다녀야 했습니다. 

최우가 죽었을 때, 이들의 일부는 고종의 친정 쪽으로 기울었지만, 역시 삼별초를 이끌던 김준 등이 최항을 지지하면서 그들의 주인은 최항이 됐습니다. 하지만, 최의가 집권하자 김준은 그들을 이용해 최의를 죽입니다.

이는 후에도 계속됐습니다. 임연이 김준을 죽일 때도 동원된 게 삼별초였고, 임연이 원종을 폐위할 때 동원된 것도 삼별초였으며, 원종이 임유무를 죽일 때 동원된 것도 삼별초였습니다. 

때문에 임유무가 죽은 후 이들의 위치는 더 혼란스러워졌습니다. 도방처럼 무신정권만 따르는 개였으면 같이 죽이면 그만입니다. 애초에 그들이 정규군이었으면 그냥 왕의 부하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최씨만 무작정 따르는 것도 아니었고, 김준, 임유무를 죽이는 등 원종에게도 충분히 도움이 됐으며, 어쨌든 강화도에서 목숨을 보존한 자들은 이 삼별초에 빚을 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그냥 둘 수도 없었습니다. 어쨌든 이들은 원종 자기에게도 이빨을 드러낸 적이 있으며, 아무리 임유무를 죽였다 하나 무신정권의 잔재였기 때문이죠. 일부를 포섭할 수는 있었습니다. 삼별초 출신임에도 이미 관직에 올라 이들을 피해 개경으로 간 자도 있었고, 임유무를 죽일 때 삼별초를 동원한 홍문계와 송송례는 원종을 따라 개경으로 갔다가 삼별초를 토벌하는데 투입됩니다.

문제는 여전히 삼별초에 남은 이들이죠. 대장급이야 포섭할 수 있었겠지만 수천에 달하는 이들을 아무 문제 없이 편입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충성 서약을 한들 이미 주인을 몇 차례 바꾸고 원래 주인에게 이빨을 들이댄 이들을 받아들이는 것도 원종에게는 무리였습니다.

삼별초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만약 그들이 대몽항쟁을 계속 할 생각이 있었다면 진작에 일어났거나, 최소한 임연과 임유무가 전쟁을 준비할 때 적극 협력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원종을 도와 임유무를 죽였죠. 그들 역시 몽고에 더 이상 싸울 수 없음을 알고 있었고, 세상이 바뀐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 역시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 했습니다. 임유무가 죽은 이상 원종이 개경으로 환도할 것은 자명했습니다. 거기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게 그들이었죠. 그럼에도 그들은 개경 환도를 반대합니다. 

먼저 일을 벌인 게 원종이었을지 삼별초였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일단 고려사에서는 삼별초가 먼저라고 돼 있지만요. 그렇다면 그들은 자기가 판 무덤에 자기도 들어가야 된다는 걸 정말 뒤늦게 알았을 겁니다.

혹은 임유무가 죽은 직후 원종이 삼별초의 상층부를 포섭한 후 먼저 일을 벌이려 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에 대한 저항으로 삼별초가 움직인 것일 수도 있죠. 그런 가능성은 접어 두고, 고려사의 서술을 따라가자면 먼저 볼 수 있는 것은 불안감입니다.

강화도에 있은 지 수십 년, 몽고와의 항전을 포기한다고는 했지만, 그렇게 오래 싸워 왔다는 자신감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특히 신의군의 경우 몽고에 대한 적개심이 여전했겠죠. 그런 상황에서 강화도를 떠난다는 것은 심리적 부담이 컸을 겁니다.

그들은 최씨 정권의 잔재였지만 동시에 대몽항쟁의 주역이었습니다. 본토에 남아 있던 백성들 앞에서야 아니겠지만, 최소한 강화도에 있던 왕과 대신들 앞에서는 당당히 말할 수 있었죠. 그들이 강화도에서 편히 있는 동안 그들을 지켜준 것은 분명 삼별초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런 의의가 무시되고 있습니다. 대몽항쟁의 주역이 아닌 최씨 정권의 잔재로 청소돼야 될 대상일 뿐이라는 것이었죠.

20070819135310.611.0.jpg

이들도 분명 국가를 위해 빨갱이를 진압한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렇게 믿었을 것입니다.

어떤 전쟁이 끝난 후, 참전 용사들은 그 전쟁의 가치를 높게 평가합니다. 그래야 자신들이 벌인 살인 등이 범죄가 아닌 국가를 위해 한 옳은 일이 되니까요. 단지 그것 뿐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전쟁이 길수록, 참혹할수록 그 전쟁이 그릇된 것이었다면 그들은 그른 일을 하며 목숨을 바친 게 됩니다. 단순히 전쟁이 옳았다 글렀다를 떠나서 그들 자신의 존재 이유가 위협받는 거니까요. 현대에도 이런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죠. 

삼별초가 한 것은 떳떳하게 내세울 수 있는 대몽항쟁, 하지만 그들의 자부심이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거기다 최씨의 잔당이라 하나 분명 그들을 몰아내는 데 큰 공을 세운 것도 분명 그들이었죠.

다운로드.jpg

배중손은 삼별초의 높은 장군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유 노영희가 제일 높은 수준이었죠. 무신정권이 끝난 후, 고려 조정에 흡수된 상층부 몇을 제외한, 아예 고려 중앙군에 편입되거나 제대(?)했을 이들을 제외한 남은 이들이 일으킨 것이 바로 삼별초입니다.

이들은 개경으로 환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창고를 텁니다. (무장한 것 같진 않고 재물을 가져간 거 같네요) 국가에 반하는 움직임이긴 했지만, 이건 그 전에 자기들의 존재감을 어필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하지만, 원종은 그들의 명단을 가지고 간 후, 해산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배중손 등은 원종이 그 명단을 몽고에 넘기려는 게 아닐까 두려워했죠.

실업자가 된다는 두려움도 컸을 겁니다. 하지만 그 전에 이렇게 자신들의 존재 이유가 무시되고 있었습니다. 분명 여기에는 먹고사니즘이 있었고, 명분은 이 먹고사니즘을 포장하기 위한 가식으로 평가됩니다. 하지만 이런 명분 역시 빼 놓을 수 없습니다. 가식이니 자랑이니 하지만 남이 자기를 알아주길 바라는 건 기본적인 욕구죠.

몽고에 맞서려는 임유무를 죽인 이상, 그들이 단지 대몽항쟁을 이으려 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다른 부분, 먹고사니즘과 그들의 자존심이 부정되는 부분에서 그들의 반란 이유를 찾아보려 합니다. 

왕을 위해 싸우거나 명령을 내리는 자가 누구든 위의 명령에 복종하는 자는 왕 곁에 남았고, 최씨를 위해 싸우는 자는 죽었습니다. 삼별초는 최씨를 위해 싸우고 몽고와 싸우는 두 가지 부분에 한 발씩을 걸치고 있었습니다. 무신정권이 망한 지금, 둘 중 하나는 부정돼야 했죠. 원종은 몽고와 싸웠다는 쪽을 잘라 버렸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기들의 자존심을 다시 외쳤습니다. 그들은 대몽항쟁을 계속 하자는 명분으로 일어납니다. 

애초에 국론이 통일돼 몽고와 싸운 것이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원종은 외세의 힘으로 국론을 통일했고, 그 외세와 맞서 싸웠던 자들은 존재 가치를 잃었습니다. 원종은 주인을 계속 바꾼 개를 삶으려 했고, 집을 지켰다는 존재 이유를 잃은 개는 다른 자를 주인으로 세우고 이빨을 들이댑니다. 

대체 누가 더 잘 했고 잘 못 했다고 하기 어려운 상황, 이럴수록 군인의 길은 힘든 것이겠죠. 

이 얘기를 진행하면서 삼별초가 잘 했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이렇게 된 원인은 바로 그 윗놈들에게 있었습니다.


출처 pgr21의 눈시 bb님의 글입니다, 만 이미지 복구가 어렵네요;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