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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프라이 먹고 싶다고 떼라도 쓸 걸 그랬어요.
게시물ID : cook_16035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ㅂㅎ한
추천 : 17
조회수 : 1418회
댓글수 : 30개
등록시간 : 2015/08/09 23:00:22
간만에 집에 내려갔다. 광주에 내려가는 동안 마음이 무척 먹먹했다. 어머니의 어색한 표정과 아버지의 지친 어깨가 계속 아른거렸다. 부모님이 모두 일터로 나가신, 오후 한 시에 집에 도착했다.

사실, 부모님이 이 시간엔 안계실 거라는 걸 알고나서 기차표를 예매했다. 도착했다는 문자 하나를 보내고 나서 바로 내가 지내던 방의 침대에 누워서 잤다. 십 분 뒤, 갑자기 집 문이 열렸다. 어머니가 오셨다.

어머니는 일을 하시다가 받은 문자 한 통에, 나보다 어린 팀장에게 고개를 몇 번 숙여 가며 집으로 돌아오셨댄다. 나는 그 일자리에서 월급이나 받으신 적 있으시냐 물었다. 없댄다. 3개월 교육 기간 동안은 원래 안받는 거랜다.

중학교 겨우 졸업한 우리 어머니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이 뭐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근로기준법이고 최저임금이고 뭐고 이 동네에선 안통한다. 우리같은 것들은 고양이만도 관심을 받지 못하는 동네다. 그냥 용돈 삼아 15만 원 받은 돈이 있다는 어머니 말에, '취미생활로는 좋겠다' 싶어서 '그러세요? 잘됐네요'했다.

집에 온지 20분도 안돼, 숨 쉬기가 힘들어졌다. 어머니는 '점심 먹었어?'했고 나는 '먹었어요'했다. 어머니는 '먹고 싶은 거 있어?'했고 나는 또 '점심 먹었어요'했다. 그러다 어제 잠을 못잤다며 그 방에 들어가 누웠다. 실은 먹은 것도 없었다. 배고픈 것보다는 숨쉬는 게 더 절실했다.

방에서 자는 척하던 동안, 가슴팍에 쌀가마니가 얹혀진 것 같았다.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시고, 난 잠에서 깬 척 하면서 방에서 나왔다. 다행히 아버지는 몇 주 전 생사 고비를 넘기신 사람치고는 안색이 퍽 좋아보이셨다. 아버지 저녁상을 차려드렸다. 어머니께선 몇 주 전 수술 받은 다리가 아파 안방에서 나오기 힘들어하셨다. 아버지는 나보고 '같이 먹을까?'하셨고 나는 '먹었어요'했다.

다음날 아침, 서울행 기차를 탔다. 말도 안되는 변명을 하면서 반드시 내일 학교에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니 어머니께서 그러셨다. 

'고생해서 내려온 애, 맛있는 거 좋은 거 하나 못먹이고 보내니까 엄마 맘이 참 슬프다.' 

죄송해요. 고생해서 버신 쌀 한 톨 축내는 것이 너무 죄송스러웠어요. 그리고 '먹었어요' 거짓말 한 어절이 당신들 가슴에 쌀가마니가 될 거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어요. 계란프라이 먹고 싶다고 떼라도 쓸 걸.. 올라오면서 그런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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