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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팬으로서... 그저 엠스플과 기자들이 밉습니다
게시물ID : baseball_10106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미카엘대공
추천 : 1
조회수 : 623회
댓글수 : 11개
등록시간 : 2015/08/13 15:12:19

어제 경기 최진행 등장 장면을 TV 너머로 전부 보았습니다.

들어오자마자 1루와 3루쪽에 각각 고개숙이고 정중하게 사과. 그리고 투런포. 

홈런을 쳤지만 특별히 방방 뛰거나 하는 기색 없이 조용히 돌아서 조용히 덕아웃으로 들어왔고.

3타수째에 교체 (이건 구설수에 선수가 휘둘리지 않게 하려는 감독의 배려인 것 같습니다)된 뒤, 경기장을 빠져나갔고

경기 이후 코멘트에서도 다른 말은 일절 없이 "팬에게 죄송하다"라는 사죄의 말만을 남겼습니다.



최진행이 잘했다는 건 아닙니다.

약물이라는 건 승부조작과 함께 스포츠의 근간을 뒤흔드는 행위이고, 30경기 출전정지 따위로도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중징계이지요.

사건이 터진 뒤 "모르고 먹었다"라고 한 변명 역시 얼척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소한, 진짜 최소한 당일 경기에서만큼은 최진행의 대처에 문제는 없었습니다.

"저지른 뒤"라는 전제 하에서는,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이고 절제된 행동을 보여준 겁니다.

솔직히 이제 와서 잘해봤자 이미 붙은 꼬리표는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새로이 욕을 들어처먹을 행동만큼은 안 해야 합니다.

일부러 타석에서 머리를 숙인다거나, 인터뷰를 피하고 덕아웃에서 묵묵히 있는다거나 하는 행동은 그런 점에서는 괜찮았습니다. 실제로 동정심을 표한 한화팬분들도 많았지요.



그런데... 왜 그걸 굳이 "속죄포"니 뭐니 하는 단어로 포장해야만 했을까요?

물론 드라마틱하죠. 스스로의 잘못으로 한동안 근신하고 있던 선수가 복귀하자마자 첫 타석에서 홈런을 쏘아올린다. 시청률도 잘 나오겠네요.

근데 약물복용이라는 행위는 음주운전, 간통 이런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물론 후자들도 무거운 죄이죠. 행위 자체만 따지고보면 더 무거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것들은 "야구 외적"인 사건입니다. 즉 저런 걸로 인해 "프로야구 전체"나 "타팀 팬들" 이 피해를 입지는 않는다는 소리입니다.

다만 선수가 소속되어있는 팀은 이미지에 타격을 받을 것이고, 그 팀의 팬들도 끝없는 놀림거리로 전락하겠죠. 김X주 시절 두산이 그랬던것처럼요.

이런 경우엔 속죄포라는 단어가 의미를 갖습니다. 자신이 실추시킨 팀의 명예를 실력으로 되돌려놓겠다- 있을 수 있는 장면입니다.



하지만 약물은요?

약물사건이 터지면 피해입는 건 그 팀뿐만이 아닙니다. 메이저의 스테로이드 시절은 지금까지도 큰 얼룩으로 남아있죠.

그들이 약을 빰으로써 피해입은 사람들은 다름아닌 상대 팀의 투수들과 그 팬들, 그리고 메이저리그라는 프로야구판 전체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속죄포? 어이없는 단어사용입니다. 피해자를 두드려패는 걸 대체 누가 속죄라고 한답니까?



이번 사건으로 인해 오유, 엠팍, 한화갤 등등에서 많은 의견을 보았습니다.

징계가 끝났으니 상관없지 않냐는 의견, 자체징계를 주지 않은 한화구단이 이해가 안 간다는 의견, 약쟁이는 타협 없이 퇴출시켜야 한다는 의견...

여러가지 시선들이 교차했고 숱한 추천과 비공이 오갔지만, 저는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않았습니다. 

머리로는 무엇이 옳은지 알아도, 차마 말로써 꺼내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약물을 한 선수는 라인업에 없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선수조차도 부족해서 1할타자를 대타로 돌려쓰는 팀의 팬으로서 그런 말은 절대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한화팀이 자체적으로 더 징계를 때려야 했을 겁니다. 하지만 3년 연속 꼴찌라는 굴욕을 당했던 팀에게 처음으로 가을야구의 가능성이 보이는 상황에서, 팀과 감독에게 정해진 것 이상으로 철저한 도덕적/윤리적 엄격함을 강요하기란 어렵습니다. 말마따나 어쨌든 징계는 치뤘으니까요.

암흑기를 버틴다는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딱히 이해해주시길 바라진 않겠습니다만...



그렇기에 팬으로서는 바라는 겁니다.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더라도, 오늘 이 시기만큼은 조용히 야구하다 갔으면 좋겠다고.

지금처럼 가만히만 있으면, 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몰래 응원을 보낼 용의가 있습니다. 원래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니까요. 빌어먹을 팬이라서 어쩔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도저히 그를 가만히 두지를 않네요. 알아서 웅크리겠다는 선수를 일부러 끌어내려 화젯거리로 삼고 포장을 합니다.

어제는 2타석 치고 대타로 교체된 그를, 그 교체의 저의가 뭔지 뻔히 알면서도 중간에 당당히 인터뷰 예고를 하더군요. 뭐하자는 겁니까 진짜? 인터뷰에서 정현석처럼 감동의 눈물이라도 흘리길 바라는건가?



제발 가만히 냅뒀으면 합니다.

비판은 피하지 않을 겁니다. 그냥 모든 욕 감수하겠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판을 키우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닙니까?

빠가 까를 만든다는게 딱 이 짝입니다. 엠스플을 포함한 야구판은 지금 절대 옹호해선 안될 것을 옹호해서 오히려 비판여론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 모든 미화의 끝이 어떻게 귀결될지 알기에, 값비싼 미사여구조차 무척 불편하게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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