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등신백일장] 여름에 울다
게시물ID : readers_2131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피카.
추천 : 2
조회수 : 25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8/14 15:51:01
옵션
  • 본인삭제금지
  • 외부펌금지
담배 두갑이면 책이 한 권!

책장이 채워지는 모습은 어느때보다 아름답습니다.


-

여름에 울다


 조롱하듯 들려오는 매미울음 소리 덕분에 또 기억이 닿고야 말았다. 차라리 잊어버렸으면 좋겠건만, 여러 사람입으로 들었던 거절의 말이 또 하나 둘 씩 떠오른다. 애틋하게 차올랐던 그때의 마음이나, 변함 없이 비웃듯 말라버린 모습에 절망하던 내 모습은 늘 같았다. 구멍난 가슴, 젖은 베갯잇으로 매꾸던 밤도 늘 찾아왔다. 서툴게 시작도 못했던 기억들은 이제 아픔마저 희미해져 가끔 쓴 웃음을 짓게할 뿐이다.

 평범한 사람이라 생각했던 나는, 그렇지 않았다. 그 사람 눈에 내가 어떻게 비춰지는지 아는 방법을 몰랐다. 아니, 아는 게 없었다. 늘 자연스럽게 내 눈에 보이는 그 사람만 생각했고, 그게 당연한 건줄만 알았다. 
그래서인지 말을 하기도 전에 느낌이 항상 왔었다. 그 느낌은 빗나간적이 없어, 마치 예언과도 같았다.
 너무 무거워 쌓아놓질 못하고 내뱉은 말들은 늘 후회만 남겼다. 그 사람도 무거워했으면 실례라 여겼겠건만, 너무도 가벼이 들어 버리는 모습에 자괴감마저 들었다.

꽃잎이 아닌, 가치없는 잎에 앉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한 벌들의 마음이 이러할까. 이젠 날갯짓에 지쳐 땅에서 죽기만 바라는 신세다. 이렇다보니 늘 마음에 자신이 없다. 두 번, 세 번, 그러다 수 십 번 생각하고 나서야 깨닫는다. 
이번에도 다르길 바랐지만 그 사람 눈에 슬쩍 보인 감정들은 나에게 웃어주질 않았다. 아, 이번에도 아니구나.

1년이 넘게 고민해왔던 문제는 순식간에 해결되었다. 좋아했었고, 지금도 그렇다는 내 말에 그 사람은 알고있었다고, 나는 아니라고 답했다.
머리를 부여 잡고 있는 와중에도 티가 났나보다. 다 같이 보는 건 언제나 좋다고 했고, 둘은 꺼려하는 게 눈에 선했다.
나보고 잘해보라던 친구와는 영화를 아주 잘 보더라. 너무도 잘 아는 친구기에 그 사람만 일방적으로 닿았다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처음에 당했던 친구였던 놈의 배신 덕분에 민감해진 감각은 이것을 자신할 수 있게 만들었다.
다가오길 바라는 꽃과, 쳐다도 안보는 벌의 모습에 울고 웃었다.
 
그렇게 조금의 기회도 받지 못한 체 가혹했던 7월이 끝났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단순히 인연이 아니라 넘긴 적은 없었다. 남을 탓하지 않았다. 하늘을 원망하며 침이라도 뱉어봐도 떨어지는 곳은 내 얼굴 위였다. 내가 웃게하질 못해서, 잘못해서, 못나서. 항상 내 탓만 하다 끝났고, 이번에도 그랬다.
떠넘겨버리고 싶었던 짐은 이제 차곡차곡 쌓여 포기의 양분이 된 듯하다. 그때부터 꼬리를 물고 이어진 잡념들은 일상마저 지저분하게 물들이고 말았다. 여름의 더위에 널부러진 게 아니라, 마음이 너무도 갈증나 사는 힘마저 사라져간다.

 만들어진 가면 위에서 춤을 추다 집에 들어오면 머리가 찡 하게 울리며 기억을 토해낸다. 배출하고픈 욕구를 겨우 눌러 채우다 매미의 구애짓거리에 넘쳐 흘러버렸다. 겉으로보면 쉽게도 만나고 쉽게도 헤어지는 그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평생을 걸어  한 번도 만나지 못하였는데, 어찌 이리도 잘들 만나는지.

노랫말을 안주삼아 마시는 소주의 맛이 너무도 익숙해져버렸다. 주량이 늘어나도 갑갑한 마음 토해놓는 술버릇은 변하질 않는다. 협곡에 오신 걸 환영한다는 인사말이 달콤한 애인의 속삭임처럼 들릴 지경이다. 

힘 없이 고개를 처박고, 젖은 베갯잇을 만들어 아직 메우지 못한 구멍을 떔질하다 잠들겠지.

간질거리며 방해하는 여름이, 난 너무도 싫다.


-

우리는 세월호를 아직 잊지 않았습니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