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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택시기사 아저씨 이야기
게시물ID : humorstory_43995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DDMK
추천 : 2
조회수 : 53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8/20 00:5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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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룸메이트가 집에 가야 했기 때문에 급히 택시를 탔다.
 
  시간은 대략 3시 즈음. 해가 쨍했다.
 
  버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터미널도 가까워서 걱정 없이 가고 있었다.
 
 
 
 
  집 근처에는 편도 3차선인 도로가 있다. 차가 많이 다니는 편이다.
 
  어느정도 다니냐면, 운전면허는 땄어도 가끔 연습하러 시골길이나 달리던 나한텐 좀 버거울 정도다.
 
  평균 시속은 50킬로 나올 거 같고, 밀리면 더 낮아지기도 하는데
 
  터미널에 가려면 그 길을 꼭 지나가야 하기 때문에 택시기사 아저씨는 당연히 그 길로 달리셨는데,
 
  괜히 택시기사가 아닌 건지 차도 많고 복잡한 그 길을 60킬로 이상으로 달리고 있었다.
 
  새삼 기사 아저씨의 스킬에 놀라 생존본능으로 문 손잡이를 꼭 붙잡고 있었는데 이상한 장면이 보였다.
 
  그 이상한 장면은, 때마침 신호에 걸려 계속 지켜보기도 좋았다.
 
 
 
 
 
  나: 머지? 사고 났나? (친구)야 저기 봐봐. 저 차 왜 가만히 서 있지?
 
  친구: 그러게.
 
 
 
 
 
  3차선의 버스 한 대가 길이 비어있는데도 출발을 못하고 있었다.
 
  원인은 앞의 승용차 때문이었다. 거기서 내린 사람이 버스기사 아저씨에게 항의를 하고 있었다.
 
  도로에까지 나와서 시비를 거는 바람에 괜히 2차선도 피해를 보는 상황이었다. 
 
 
 
 
  나: ?? 머지? 부딪혔나?
 
  기사아저씨: 저 차가 후진을 했어. 살짝 박은 거 같네.
 
  친구: 어머어머!
 
 
 
 
  면허취득 1년 차, 이제는 '당황하면 후진해요'가 어지간해선 얼마나 일어나기 힘든 일인지 알고 있었다(기어 바꿔야 하니까).
 
  그래서 '후진? 이런 큰길에서 후진을 했다고? 근데 태도는 완전 피해자 급인데?' 라고 생각했다.
 
 
 
 
  기사아저씨: 승용차가 잠깐 멈춰 있었는데 출발을 안 했어. 그래서 버스가 오다가 코앞에서 멈췄는데 차가 후진했지. 
 
  나: 헣? 그런데 왜 멈춰 있었을까여? 거기다 왜 후진을 했을까여? 기어 혼동했나?
 
       아무튼 버스기사 아저씨도 안타깝고 저기 탄 사람들도 안타깝네여. 괜히 이상한 사람한테 걸려서;;
 
  기사아저씨: 저게 다 면허 따기가 쉬워져서 그래. 면허를 아무나 따니까 저런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사고를 일으키고 그러지.
 
  친구: 세상에세상에!
 
 
 
 
 
  그 시내버스는 터미널로 가는 버스였기 때문에 만약 우리가 좀 더 부지런을 떨었다면 탈 수도 있었다.
 
  저 버스를 탔으면 꼼짝없이 시외버스 시간에 늦었겠군- 하고 있었을 즈음 다시 신호가 돌아와서 우리는 그대로 출발했다.
 
  시내버스는 출발하지 못했다.
 
  저런 어이없는 경우가 다 있나 하면서 계속 지켜보는데, 기사아저씨가 계속 말씀하셨다.
 
 
 
 
 
  기사아저씨: 택시 몰면서 많이 봤어. 괜히 사고나서 값도 제대로 못 받은 사람들(같은 기사 아저씨들을 말한 것 같았다)도 봤고.
 
                   이게 다 이명박이 면허 따는 걸 쉽게 해서 그래.
 
  나: (제가 그 수혜자긴 한데) 그래서 저도 운전하는 게 무서워서 큰 길로 못가여 ㄷㄷ
 
  친구: 저는 제가 무서워서 아예 면허를 안 땄어여(자랑).
 
  나: 그게 자랑이냐ㅋㅋㅋ
 
  친구: 나같은 사람은 면허 따면 안 됨 ㅇㅇ
 
  나: 아무튼 저 면허 딸 때 즈음에 바뀐다고는 했는데, 그때까지 외국인들도 우리나라로 면허를 따러 온다고 하더라구요.
 
  친구: 맞아맞아!
 
  기사아저씨: 허. 면허를 어렵게 바꿔야 하는데.
 
  나: 이제 다시 어렵게 바꾼다고 들었어요.
 
  기사아저씨: 이명박을 제대로 처벌했어야 했어. 그 놈이 면허따기를 쉽게 만들어놔서…….  
 
 
 
   
 
  아저씨는 50대 중년이셨고, 나는 아저씨의 의외의 말에 관심을 가졌다.
 
  왜냐하면 어지간한 아저씨들은 정치에서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직업과 관련된 문제라 그런가 싶기도 했다.
 
  그래서 한 번 떠보기로 했다.
 
 
 
 
 
  나: 맞아여! 조사 제대로 해야돼여! 전에 BBK 터진 것도 흐지부지 넘어갔잖아여.
 
  기사아저씨: 그래 맞아. 그것도 흐지부지 넘어갔지.
 
  나: 그거 말고도 더 있어여. 사대강이라고 해서 몇십 조를 강에 때려박았대여. 그런데 강에 녹조만 둥둥 떠다닌대요.
 
  기사아저씨: 아주 죽일 놈이야.
 
 
 
 
  기사아저씨 반응이 생각보다 격렬했다.
 
  여기서 결정타가 필요할 거 같았다.
 
 
 
 
 
  나: 그게 다 박근혜를 뽑아서 그래요.박근혜가 뽑히니까 이명박 조사를 안 하잖아요.
 
 
 
 
 
  볼드모ㅌ…… 아니 그분의 이름을 부정적으로 말했으니
 
  기사아저씨에게서 긍정적인 반응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냥 '그래도 말해야겠다' 생각하고 말한 것 뿐이었다.
 
  그런데 기사아저씨 반응이 조금 달랐다.
 
 
 
 
 
 
  기사아저씨: 맞아. 박근혜가 뽑혀서 이명박이 처벌을 안 받았어.
 
 
 
 
 
 
  나는 그냥 수다떠는 척 했지만, 기사아저씨의 말에 내심 놀랐다. 저 말이 어른들에게서 흔하게 들을 수 있던 말이었나?
 
  당장 내 친척들만 봐도 박근혜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듣긴 어려웠다.
 
  좀 더 나이가 많으시긴 하지만, 아무튼 비슷한 연배의 어르신들께서 친척 결혼식장에 가기 위해 버스를 빌린 적이 있었는데 
 
  버스의 TV에서 박근혜가 나오자 어른들 모두 '그래도 박정희 딸이니까 정치를 잘 할 거야' 같은 얘기만 하고 있었다.
 
  아버지하고는 종종 정치 얘기를 하지만 그 윗급으로 넘어가면 모두 박근혜 옹호 뿐이기 때문에
 
  늘 나는  ㅎㅎ 웃으면서 '아무것도 모르오' 하고 넘기던 때가 대부분이었는데
 
  비슷한 나이의 어른이, 그것도 라디오 뉴스 같은 것도 엄청 접할 것 같은 기사 아저씨가
 
  박근혜를 부정적으로 여긴다는 게 정말 놀라웠다.
 
  그래서 호들갑을 떨면서 박근혜 이야기를 계속했다.
 
 
 
 
 
  나: 맞아요 맞아요. 그리고 지금도 하는 게 아무 것도 없어요.
 
  기사아저씨: 그래서 내가 미안하게 생각해. 우리 세대가 박근혜를 뽑지 말았어야 했는데 대부분은 박근혜를 뽑았거든.
 
                   우리 나이 대의 사람들이 좀 깨어 있어야 하는데 다들 박정희 생각하고 그래.
 
  나: 저희 할머니께서도 그러세요; 그거 지금은 아무 쓸모도 없는데 말이에요.
 
  기사아저씨: 그래서 지금 나라가 이 꼴이 났지……. 학생들도 투표를 잘 해야 돼.
 
  나: 근데 전 박근혜 안 뽑았는데요ㅠㅠ
 
  친구: 저도요ㅠㅠ
 
  기사아저씨: 내가 뽑았어. 그래서 미안하게 생각해(시무룩).
 
   
 
 
 
  기사아저씨의 반전에 빵 터졌지만 안타깝게도 터미널에 도착해서 더 얘기를 할 순 없었다.
 
 
 
 
 
  나: 왜 뽑았어요ㅋㅋㅋㅋ
 
  기사아저씨: 그땐 잘 몰랐지(시무룩).
 
 
 
  계산을 마치고 나와 친구는 아저씨께 "다음에 잘 뽑으면 돼죠." 라고 말한 뒤 내렸다.
 
  물론 아저씨께서 그러겠노라고 하신 건 말할 필요도 없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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